조선시대 의정부 유적 발굴 현장…시간의 결을 느끼다

시민기자 문청야

발행일 2021.06.25. 09:17

수정일 2021.06.25. 09:17

조회 2,987

6월 22일 오전 10시 15분에 교보빌딩과 디타워 사이 벤치에서 '의정부 유적지 발굴현장' 공개 참관에 허락된 신청자들이 모였다. 명단 확인과 체온 측정을 마치고 기념품을 제공받은 후 궁궐전문가 홍순민 명지대 교수의 안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10시 30분이 되자, 홍교수가 해설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의정부 유적지 탐방에 앞서 육조거리 주변 문화유적지부터 살펴봤다. 첫 번째 역사적인 장소는 세종대로와 새문안로의 교차지점 가까이에 위치한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전이었다. 홍교수는 칭경기념비전 앞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라고 했다. 육조거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칭한 도로명이라, ‘광화문 앞길’, ‘광화문 전로’라고 부르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또 경복궁 뒤로 보이는 산이 무슨 산인지 묻고, 누군가 북악산이라고 답하자 백악산이라고 부르라고 하며, 백악 뒤로 보이는 보현봉도 함께 알아두라고 했다. 또한 백악을 뒤로 둔 광화문의 위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했다.

운종가는 조선 시대 한양 도성에 있었던 거리 이름으로 지금의 종로 신문로를 합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운종가의 뜻은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종로 일대는 시전 설치, 육의전을 비롯한 많은 점포가 집중적으로 발달돼 있어 사람이 모여들었으므로 운종가라 불리었다고 했다.
  
육조대로는 의정부 이외도 삼군부, 육조를 비롯한 조선시대에 주요 관청이 늘어섰던 곳이다. 지금도 종로구청 주변은 관청가이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육조 관청 터는 대형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광화문 네거리의 풍경은 물론 그 밑의 유구들을 발굴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의정부 터는 1865년 중건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경기도청 등이 들어섰지만, 지하·중층 건물 등의 신축이 거의 없이 지하 유구 보존상태가 양호할 것으로 판단된다. 홍교수는 땅속에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이렇게 시간의 켜가 되어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의정부 이조 자리에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의정부터가 제일 잘 보인다고 했다. 홍교수는 서울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 올라가 강의를 이어갔다. 경복궁을 둘러싼 주변 요소들을 배경으로 의정부 조성부터 소멸까지(1400~1907년)의 전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했다. 경복궁의 좌측 백악산과 휴암(鵂岩) 사이에서 흘러내린 삼청동천과 오른쪽의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흘러내린 백운동천이 흘러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물길 이야기를 하며 산과 물의 관계를 잘 읽으면 지형이 보인다면서 지형을 존중하면서 자연조건을 고려해 도시를 살리자는 말씀을 덧붙였다. 

의정부 발굴 현장으로 내려가 현장에서 4년간의 발굴조사를 이끌어왔던 학예연구사의 발굴이야기와 문화재 보존처리 및 약품과 재료, 조사기구 등 보존처리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번 의정부 터 탐방은 의정부 뿐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중학천, 청진동, 육조거리 등을 탐방하며 도심 속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고, 도심과 역사유적이 공존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의정부 유적 현장 공개 프로그램 진행은 궁궐전문가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맡았다 ⓒ문청야
의정부 유적 현장 공개 프로그램 진행은 궁궐전문가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맡았다 ⓒ문청야
 첫 번째 역사적인 장소는 세종대로와 새문안로의 교차지점 가까이에 위치한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전이었다. 칭경기념비전 앞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라고 하며 육조거리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문청야
첫 번째 역사적인 장소는 세종대로와 새문안로의 교차지점 가까이에 위치한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전이었다. 칭경기념비전 앞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라고 하며 육조거리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문청야
백악산과 백악 뒤로 보이는 보현봉도 함께 알아두라고 했다. 또한 백악을 뒤로 둔 광화문의 위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했다 ⓒ문청야
백악산과 백악 뒤로 보이는 보현봉도 함께 알아두라고 했다. 또한 백악을 뒤로 둔 광화문의 위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했다 ⓒ문청야
삼청동천이 흐르는 것을 보며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물길 이야기를 했다. 산과 물의 관계를 잘 읽으면 지형이 보인다고 했다 ⓒ문청야
삼청동천이 흐르는 것을 보며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물길 이야기를 했다. 산과 물의 관계를 잘 읽으면 지형이 보인다고 했다 ⓒ문청야
사복시(司僕寺) 터,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의 터. 궁중에는 내사복시, 도성에는 외사복시, 지방에는 목장을 두었다. 여기에 있던 외사복시는 1907년에 폐지되었다 ⓒ문청야
사복시(司僕寺) 터,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의 터. 궁중에는 내사복시, 도성에는 외사복시, 지방에는 목장을 두었다. 여기에 있던 외사복시는 1907년에 폐지되었다 ⓒ문청야
의정부(議政府)는 조선시대의 행정관청으로 정승을 비롯한 재상들로 구성된 최고 의결 또는 심의기관이다 ⓒ문청야
의정부(議政府)는 조선시대의 행정관청으로 정승을 비롯한 재상들로 구성된 최고 의결 또는 심의기관이다 ⓒ문청야
가림막에 적혀있던 말은 의정부의 기능을 이해하는 핵심어였다. 홍교수는 ‘총백관, 평서정, 리음양, 경방국’이란 말로 설명했다 ⓒ문청야
가림막에 적혀있던 말은 의정부의 기능을 이해하는 핵심어였다. 홍교수는 ‘총백관, 평서정, 리음양, 경방국’이란 말로 설명했다 ⓒ문청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의정부지’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고 주변 입지와 중학천, 청진동, 육조거리 등 도심 속 역사의 흔적들의 설명을 이어갔다 ⓒ문청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의정부지’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고 주변 입지와 중학천, 청진동, 육조거리 등 도심 속 역사의 흔적들의 설명을 이어갔다 ⓒ문청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본 의정부 터 발굴현장  ⓒ문청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본 의정부 터 발굴현장 ⓒ문청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경복궁 일대 ⓒ문청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경복궁 일대 ⓒ문청야
가림막 안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청야
가림막 안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청야
전조후시(前朝後市), 동문서무(東文西武) 이념에 따라 경복궁 앞길에 관청가, 종로 일대에는 시전이 조성되었다. 광화문 앞길 좌측에는 도평의사사(의정부의 전신)이, 우측에는 군사업무를 총괄하였던 의흥삼군부 청사가 있었다 ⓒ문청야
전조후시(前朝後市), 동문서무(東文西武) 이념에 따라 경복궁 앞길에 관청가, 종로 일대에는 시전이 조성되었다. 광화문 앞길 좌측에는 도평의사사(의정부의 전신)이, 우측에는 군사업무를 총괄하였던 의흥삼군부 청사가 있었다 ⓒ문청야
발굴조사 개요부터 의정부 터의 변화 과정, 정본당 건물 잔존 유구 추정 모식도, 문화재 보존처리 과정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청야
발굴조사 개요부터 의정부 터의 변화 과정, 정본당 건물 잔존 유구 추정 모식도, 문화재 보존처리 과정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청야
의정부지 발굴조사 개요 ⓒ문청야
의정부지 발굴조사 개요 ⓒ문청야
의정부 유적 발굴조사 현장 ⓒ문청야
의정부 유적 발굴조사 현장 ⓒ문청야
의정부지에서 확인된 건물 ⓒ문청야
의정부지에서 확인된 건물 ⓒ문청야
연지와 정자, 의정부의 정자는 장충단 공원으로 이전했다 ⓒ문청야
연지와 정자, 의정부의 정자는 장충단 공원으로 이전했다 ⓒ문청야
의정부 터에서 기와 조각과 청자 등 도자기 관련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1910년 일제가 의정부 자리에 세웠던 건물은 경기도청사이다 ⓒ문청야
의정부 터에서 기와 조각과 청자 등 도자기 관련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1910년 일제가 의정부 자리에 세웠던 건물은 경기도청사이다 ⓒ문청야
이것이 기단이므로 지금 우리는 땅 속에 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청야
이것이 기단이므로 지금 우리는 땅 속에 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청야
현장서 발굴된 우물 ⓒ문청야
현장서 발굴된 우물 ⓒ문청야
문화재 보존처리 약품들, 문화재 보존처리는 그 원형을 보존하면서 본래의 상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리하고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문청야
문화재 보존처리 약품들, 문화재 보존처리는 그 원형을 보존하면서 본래의 상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리하고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문청야
문화재 보존처리에 필요한 초음파 도구 등 ⓒ문청야
문화재 보존처리에 필요한 초음파 도구 등 ⓒ문청야
발굴된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유규가 무너지지 않도록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하여 유구를 지지한다 ⓒ문청야
발굴된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유규가 무너지지 않도록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하여 유구를 지지한다 ⓒ문청야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문화재 보존처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청야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문화재 보존처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청야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초음파 기계 사용법을 시연을 하고 있다 ⓒ문청야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초음파 기계 사용법을 시연을 하고 있다 ⓒ문청야
의정부 터 발굴조사를 통해 경복궁 중건(1865년)과 함께 재건된 의정부 중심건물(삼정승의 근무처인 정본당, 재상들의 회의장소인 석획당 등), 부속건물, 후원(연못과 정자)의 기초부를 확인했다 ⓒ문청야
의정부 터 발굴조사를 통해 경복궁 중건(1865년)과 함께 재건된 의정부 중심건물(삼정승의 근무처인 정본당, 재상들의 회의장소인 석획당 등), 부속건물, 후원(연못과 정자)의 기초부를 확인했다 ⓒ문청야
의정부지 유적 공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청야
의정부지 유적 공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청야

시민기자 문청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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