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징성이 큰 고궁 '운현궁'
발행일 2021.06.07. 09:20
궁궐인 듯, 대저택인 듯 아름다운 운현궁 ⓒ김세민
운현궁은 서울 5대 궁궐(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에 포함되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엄연히 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곳은 '대원군 가(家)'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역이 확장, 축소됐다. 현재의 모습은 고종이 즉위한 후 대대적으로 재정비가 이루어진 이후의 건물들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흥선대원군 시절의 1/5 크기만이 남아 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왕실 집권을 실현시킨 곳으로,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이기에 역사적 상징성이 큰 곳이다.
이와 함께, 고종의 조상이 모셔진 사당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양관은 현재 운현궁의 영역이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어온 의친왕의 둘째 아들 이우공이 나가사키 원자폭탄에 희생되고 그의 후손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며 운현궁의 양관을 덕성여대에 매도하게 되었다.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수직사 앞이나 노락당에서 양관을 바라보면 슬픈 역사만을 떠올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고민하면서 정치를 해야 했던 고종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부국강병을 실시하며 개화정책을 펼쳤다면 조선의 미래가 어떻게 변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운현궁은 다른 고궁들과 달리 점심시간만 피하면 한적하고 조용하게 관람을 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산책 나온 주변 직장인들이 많다.
이곳은 '대원군 가(家)'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역이 확장, 축소됐다. 현재의 모습은 고종이 즉위한 후 대대적으로 재정비가 이루어진 이후의 건물들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흥선대원군 시절의 1/5 크기만이 남아 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왕실 집권을 실현시킨 곳으로,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이기에 역사적 상징성이 큰 곳이다.
이와 함께, 고종의 조상이 모셔진 사당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양관은 현재 운현궁의 영역이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어온 의친왕의 둘째 아들 이우공이 나가사키 원자폭탄에 희생되고 그의 후손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며 운현궁의 양관을 덕성여대에 매도하게 되었다.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수직사 앞이나 노락당에서 양관을 바라보면 슬픈 역사만을 떠올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고민하면서 정치를 해야 했던 고종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부국강병을 실시하며 개화정책을 펼쳤다면 조선의 미래가 어떻게 변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운현궁은 다른 고궁들과 달리 점심시간만 피하면 한적하고 조용하게 관람을 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산책 나온 주변 직장인들이 많다.
■ 운현궁
○ 위치 :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64
○ 운영시간 : 매일 09:00 ~ 18: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 02-766-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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