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 속 안창남 이야기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21.06.01. 14:02

수정일 2023.03.10. 17:52

조회 3,095

우리나라 최초 비행사 안창남과 비행기로 꾸며진 이색 명소

한때 여의도에 공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해방 후 광복군 이범석, 노능서, 장준하, 김준엽 등 대한광복군이 미군의 인솔 아래 C-47기를 타고 환국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 비행장이었던 여의도 공항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의도 공원에는 C-47 수송기와 비행기 전시관이 있다.
한때 비행장이었던 여의도 공원 ⓒ김진흥
한때 비행장이었던 여의도 공원 ⓒ김진흥

일제강점기 때도 여의도는 공항 역할을 수행한 장소였다. 이를 알게 해주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한강공원과 여의도공원을 잇는 유일한 보행터널,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이다. 이 터널은 서울시가 여의도의 역사를 담아 지난 2010년 4월 여의도 나들목에 재단장한 곳이다. 터널 안에는 여의도 비행장에 관한 역사와 하늘을 날아다녔던 조선인 ‘안창남’ 비행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의도공원과 여의도한강공원을 잇는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 ⓒ김진흥
여의도공원과 여의도한강공원을 잇는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 ⓒ김진흥

여의도 비행장은 1916년 일제에 의해 간이 비행장으로 건설됐다. 일제는 민간항로 개설이라는 명분으로 비행장을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여의도에 건설한 것이었다.

완공 당시 여의도 비행장은 한산했다. 활주로와 격납고만 존재했고 나머지 시설들은 없었다. 이때, 조선인들은 비행기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컸다. 1913년 용산 연병장에서 일본이 개최한 순회 공개 비행대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비행기를 접한 이후로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 여의도에 눈길이 모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는 이곳이 비행장이었다. ⓒ김진흥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는 이곳이 비행장이었다. ⓒ김진흥

1917년 5월, 많은 시민들이 여의도 비행장에 모였다. 세계적인 곡예 비행사 미국인 아트 스미스가 곡예 비행을 선보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시민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이리저리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 많은 시민들이 감탄했다. 이어 5년 후에는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의 곡예 비행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24년, 여의도 비행장은 정식 승인을 받고 군과 민간이 공동으로 사용 가능한 공항으로 운영됐다.

여의도 비행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4월 26일, 여의도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항했다. 그렇지만 여름마다 홍수로 마비가 돼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1961년 여의도 공항은 김포로 이전했고 군 공항 기능은 성남으로 옮기면서 여의도 비행 시대가 막을 내렸다. 1971년 2월 여의도 공항은 완전 폐쇄됐다.
안창남 비행사를 소개하는 패널 ⓒ김진흥
안창남 비행사를 소개하는 패널 ⓒ김진흥

한편 1917년 아트 스미스 곡예 비행을 보며 조종사를 향한 꿈을 키운 소년 안창남은 1919년 8월, 도쿄 아키바네 비행기 제작소 기계부에서 비행 기술을 배워 1년 후에 도쿄 오쿠리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3달 만에 졸업했다.
안창남 비행사가 여의도 비행장에서 탔던 비행기들이 터널 속에 있다. ⓒ김진흥
안창남 비행사가 여의도 비행장에서 탔던 비행기들이 터널 속에 있다. ⓒ김진흥

안창남이 조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졸업 후 천도교 기관지 ‘개벽’지에 안창남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서였다. 당시 비행기를 조정하는 새로운 기술을 가진 조선인 청년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얻으며 기뻐했다.

1922년 5월,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은 여의도 비행장에서 시범 비행을 펼쳤다. 안창남은 한반도 모양을 그려 넣은 금강호를 타고 비행하며 애국심을 드러냈다. 이때 안창남의 비행을 보기 위해 당시 서울 시민 30만 명 중 5만 명이 여의도 비행장을 찾아 환호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라는 노래 가사가 있을 정도로 안창남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당시 안창남 비행사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기사 ⓒ김진흥
당시 안창남 비행사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기사 ⓒ김진흥

안창남은 1924년 조국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여운형의 소개로 산시성 군벌 옌시산의 군대에 항공중장으로 근무했고 대한독립공명단이라는 비밀 항일조직을 결성해 한국인 비행사를 양성했다.

그러나 1930년 4월, 산시비행학교에서 비행 교육을 하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최초로 우리나라 하늘을 날아다녔던 안창남 비행사 ⓒ김진흥
최초로 우리나라 하늘을 날아다녔던 안창남 비행사 ⓒ김진흥

여의도 한강공원에 자주 놀러 온다는 20대 대학생은 “여기 터널 이름은 잘 몰라요. 그치만 비행기가 있는 건 기억해요”라면서 “왜 이곳에 비행기가 있는지 처음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함께 온 한 20대 시민은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다는 건 들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이 터널이 여의도 비행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 ⓒ김진흥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 ⓒ김진흥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을 지나친 시민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터널의 이름 또는 이 터널이 여의도의 비행 역사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여의도 비행장의 역사와 비행사 안창남의 이야기를 접한 이후라면 이 터널이 단순한 보도가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길로 보이지 않을까. 여의도공원이나 여의도 한강공원을 방문한다면 꼭 한 번 들러보길 바란다.

시민기자 김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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