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의 아주 특별한 벤치

시민기자 조수연

발행일 2021.05.10. 13:00

수정일 2021.05.10. 18:22

조회 2,167

생활을 바꾸는 정책, ‘디자인 거버넌스’로 탄생한 휴식충전소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조수연

서울시는 ‘디자인 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문제점을 직접 제안하고, 시민 투표를 통해 사업을 선정한다. 디자인 거버넌스는 중앙정부의 국민디자인단과 비슷한 개념인데, 디자인 개발과 문제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전 과정을 시민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국민디자인단과는 차이가 있다. 이는 정책 수혜자인 시민이 정책을 만들고 디자인을 개발·공급하기에 정책의 결과물이 더 높다.

실제 서울시민이 만든 정책이 어린이대공원에 반영됐다. 대학생 고대호 씨는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가 35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창문도 없는 열악한 휴게실에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청소노동자’의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고 씨는 서울시 디자인 거버넌스를 통해 청소노동자 휴식 쉼터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어린이대공원 청소노동자와 디자인 전문가, 광진구 공무원 등이 참여해 벤치 디자인을 완성했다. 
청소노동자 휴식충전소가 숲 속에 설치됐다.
청소노동자 휴식충전소가 숲 속에 설치됐다. ⓒ조수연

이는 ILO(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살펴봐도 필요한 조치였다. 국제노동기구는 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 제공을 권고하고 있다. 해외 사례에서도 호주는 실외 근로자를 위해 쉼터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용노동부의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45.1%가 ‘휴게공간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또한 ‘청소노동자와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80.8%로 청소노동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린이대공원 정문
어린이대공원 정문 ⓒ조수연

그렇다면, 왜 어린이대공원이었을까? 의문을 가지고 어린이대공원을 직접 방문했다. 디자인 거버넌스 참여자들은 휴게권 보장이 어려운 실외 근로자의 근무환경 개선을 선택했는데, 어린이대공원이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어린이대공원은 매우 넓다. 어린이대공원은 정문에서 후문 거리가 직선으로 따져도 1km가 넓고, 경사진 곳과 함께 식물관, 동물원, 놀이공원, 후문 분수 등 청소할 곳도 많다. 특히, 하루 8시간을 도보로 이동하기에 상당히 지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어린이대공원은 청소구역이 매우 넓다. 사진은 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운동시설.
어린이대공원은 청소구역이 매우 넓다. 사진은 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운동시설. ⓒ조수연

그래서 청소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휴식충전소 벤치’를 시범 설치했다. 도보로 다니던 청소노동자들은 휴게 공간까지 가지 않아도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휴식충전소 벤치는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발 침대와 등받이가 있다. 등받이의 각도는 120°로. 이는 사람이 앉았을 때 가장 편안한 각도라고 한다. 청소노동자가 휴식한다는 곳이기에, 청소도구를 놓을 수 있는 거치대도 마련됐다. 끝으로, 파라솔이 햇빛을 막아준다.
청소노동자 휴식충전소임을 알리는 안내문
청소노동자 휴식충전소임을 알리는 안내문 ⓒ조수연

가장 놀랐던 부분은 청소노동자를 ‘환경매니저’로 표현한 부분이다. 휴식충전소 벤치의 이름도 환경매니저 휴식충전소다. “이 곳은 서울어린이대공원 환경매니저님들의 휴식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벤치”라며 “편안안 휴식을 위해 작은 배려 부탁드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등받이도 편안하다.
등받이도 편안하다. ⓒ조수연

다만, 청소노동자의 휴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부 시선을 차단하고, 청소노동자의 편안한 쉼을 위해 숲으로 가려져 있었다. 실제 외부에서는 휴식충전소 벤치임을 알아볼 수 없었다.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게 배려했다.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게 배려했다. ⓒ조수연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칭찬했다. 이날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은 김재현 씨는 “청소노동자의 휴식 쉼터가 이제 생겼다는 것이 아쉽다”며 “휴식 쉼터로 청소노동자가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필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본 친구는 “좋은 디자인 거버넌스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디자인거버넌스와 비슷한 국민디자인단 경험이 있는데, “청소노동자 휴식쉼터는 서울시 차원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디자인 거버넌스로 탄생한 휴식충전소 모습
디자인 거버넌스로 탄생한 휴식충전소 모습 ⓒ조수연

대학생 고대호 씨의 작은 의견이 디자인 거버넌스를 만나 어린이대공원 청소노동자에게 휴식충전소 벤치를 선물했다. 청소노동자의 쉼을 위한 휴게공간 조성은 우리 모두 관심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권’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의 사소한 의견을 정책으로 발전시킨 디자인 거버넌스, 더 많은 시민의 아이디어로 더 좋은 서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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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조수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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