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견문은 어디에?
발행일 2021.04.23. 10:40
문화재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북한산 순수비
필자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국보의 역사에 관한 책에 진흥왕(540-576) 순수비가 북한산에 있다는 내용이 읽은 기억이 있다. 지인들과 함께 북한산에 간혹 갔는데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맑은 하늘이 예상되어 국보에 대한 식견을 넓히려 길을 나섰다.
문화재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북한산 순수비는 예상보다 거친 곳에 있다. 북한산 비봉능선의 향로봉과 사모바위 사이에 위치해있다. 높이 약 560m의 봉우리다. ‘비봉(碑峯)’이라는 이름은 봉우리 정상에 신라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데서 유래한다. 진품 순수비(북한산비(555))는 국보 제3호다. 비석 상단은 두 동강 났고, 하단 모서리 한 귀퉁이는 크게 떨어져 나갔다. 보존을 위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겼다. 지금은 복제비가 세워져(2006년) 있다. 순수비가 있던 자리는 사적 제228호로 지정됐다.
순수비(巡狩碑)는 임금이 돌아본 곳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영토를 넓히고 국경 지역을 돌아보며 기념비를 세운 진흥왕과 백성들의 수고로움이 보인다. 지금까지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 4개는 모두 높고 가파른 산이자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세워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상남도 낙동강 유역의 화왕산에 있는 창녕비(561)를 세우고, 북쪽으로 올라가 한강 하류에는 북한산비(555)를, 함경남도 장진군에 황초령비(568)와 함경남도 이원군에 마운령비(568)를 세웠다.
역사 배경지식과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좀 더 의미 있는 문화재 답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화도, 등산 스틱도 없이 봉우리 정상에 순수비를 세우고 방문한 조상들의 의지와 자긍심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문화재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북한산 순수비는 예상보다 거친 곳에 있다. 북한산 비봉능선의 향로봉과 사모바위 사이에 위치해있다. 높이 약 560m의 봉우리다. ‘비봉(碑峯)’이라는 이름은 봉우리 정상에 신라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데서 유래한다. 진품 순수비(북한산비(555))는 국보 제3호다. 비석 상단은 두 동강 났고, 하단 모서리 한 귀퉁이는 크게 떨어져 나갔다. 보존을 위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겼다. 지금은 복제비가 세워져(2006년) 있다. 순수비가 있던 자리는 사적 제228호로 지정됐다.
순수비(巡狩碑)는 임금이 돌아본 곳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영토를 넓히고 국경 지역을 돌아보며 기념비를 세운 진흥왕과 백성들의 수고로움이 보인다. 지금까지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 4개는 모두 높고 가파른 산이자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세워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상남도 낙동강 유역의 화왕산에 있는 창녕비(561)를 세우고, 북쪽으로 올라가 한강 하류에는 북한산비(555)를, 함경남도 장진군에 황초령비(568)와 함경남도 이원군에 마운령비(568)를 세웠다.
역사 배경지식과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좀 더 의미 있는 문화재 답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화도, 등산 스틱도 없이 봉우리 정상에 순수비를 세우고 방문한 조상들의 의지와 자긍심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북한산 비봉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555)는 높이가 약 168cm, 너비 76cm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바위 위에 2단의 층을 만들어 세웠다. 순수비가 있던 자리는 사적 제228호로 지정됐다. 비석 뒤편(사진 오른편)이 향로봉 방향이다 Ⓒ김인수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와 이곳에서 바라본 남산 방향의 서울 풍경. 사진 왼쪽에 남산 타워가 보인다.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漢山)의 북쪽을 일컫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김인수

향로봉에서 본 비봉과 진흥왕 순수비. 등산객 한 명이 비석 옆에 서있다. 2006년 원래 자리에 복제품을 설치해 놓았다. 진품은 1962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되었다 Ⓒ김인수

부서지고 훼손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실학자 서유구가 10여자를 판독해 신라25대 진흥왕의 순수 비석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이후 추사 김정희가 1817년(순조 17년) 추가로 68자를 해독하면서 비석의 가치가 세상에 드러났다. 진흥왕이 친히 북한산을 방문했고, 왕을 수행한 신하들의 이름, 관등명 정도가 기록되어 있다. 김정희 선생은 비의 측면에 자신이 비석을 찾아 방문하였음을 알리는 글귀를 새겨두었다 Ⓒ김인수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