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을 부르는 '창경궁'의 계절 풍경

시민기자 양인억

발행일 2021.04.16. 11:50

수정일 2021.04.21. 11:45

조회 3,236

봄의 창경궁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복원을 위해 가려진 명정문이 모습을 드러냈고,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봄꽃의 향연을 운 좋게 만끽했다. 이번 해 창경궁을 찾아 만난 계절의 풍경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년 다시 찾아 올 창경궁의 봄은 관람객으로 가득차도 좋으니 부디 마스크 없이 눈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달콤한 향기로, 후각도 행복한 시간이길 기대해 본다.

창경궁은 궁궐의 도시 서울에서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3번째로 건립된 이른바 효의 궁궐이다. 창경궁은 1484년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이 창덕궁 옆 수강궁을 확장하여 세 대비(세조비 정희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예종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하여 창건한 것이다. 이는 성종실록 15년 9월 30일자 기사에 “창경궁은 나(성종)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양전(안순왕후, 소혜왕후)을 위해 지은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효의 궁궐로 시작된 창경궁은 정전(명정전)이 동쪽을 향하고, 정전에 이르는 문 하나가 적은 특징이 있다. 이러한 건립 배경과 인접한 창덕궁 덕분에 당시에는 창경궁을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렀다. 동궐은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궐이란 뜻이며 법궁과 이궁의 양궐 체제를 지속한 것이다.

필자도 할머니와 함께 창경궁 벚꽃놀이를 다녀 온 기억이 있을 정도로 창경궁은 다른 어떤 궁궐보다 많은 서울시민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비록 창경원 시절의 기억은 영원히 추억으로만 남겠지만 본래의 창경궁으로 복원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반갑다. 이는 시민들에게 부족한 녹색공간이자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잊힌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앞은 왕과 백성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영조가 균역법 시행전 백성의 의견을 직접 들은 곳이 홍화문이다. 정조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수원 화성에서 치르고 한양으로 돌아와 홍화문에서 백성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으며 그 장면이 <홍화문사미도>란 그림으로 남아있다 ⓒ양인억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앞은 왕과 백성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영조가 균역법 시행전 백성의 의견을 직접 들은 곳이 홍화문이다. 정조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수원 화성에서 치르고 한양으로 돌아와 홍화문에서 백성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으며 그 장면이 <홍화문사미도>란 그림으로 남아있다 ⓒ양인억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에 흐르는 금천은 궁궐의 경계 역할을 한다. 궁궐 문을 들어서면 물리적으로 궁에 들어온 것이지만 본격적인 궁궐의 내부는 금천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신성한 영역에 들어가기 전 속세의 악한 기운을 씻고 들어가라는 의미의 금천은 궁궐과 왕릉의 기본 구성요소다.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이며 금천 좌우로 매화, 자두, 살구, 앵도(앵두) 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양인억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에 흐르는 금천은 궁궐의 경계 역할을 한다. 궁궐 문을 들어서면 물리적으로 궁에 들어온 것이지만 본격적인 궁궐의 내부는 금천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신성한 영역에 들어가기 전 속세의 악한 기운을 씻고 들어가라는 의미의 금천은 궁궐과 왕릉의 기본 구성요소다.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이며 금천 좌우로 매화, 자두, 살구, 앵도(앵두) 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양인억
홍화문과 인접한 창경궁로 때문에 홍화문은 창경궁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창경궁 앞 서울대학병원의 현대식 건물을 배경으로 어도와 연결된 홍화문 자태가 대조적이다 ⓒ양인억
홍화문과 인접한 창경궁로 때문에 홍화문은 창경궁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창경궁 앞 서울대학병원의 현대식 건물을 배경으로 어도와 연결된 홍화문 자태가 대조적이다 ⓒ양인억
창경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정전인 명정전에 이르는 문이 하나 적다. 옥천교를 건너면 바로 정전에 이르는 명정문이 있으며, 단청을 마무리하지 않은 명정문은 최근 복원공사의 흔적이다 ⓒ양인억
창경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정전인 명정전에 이르는 문이 하나 적다. 옥천교를 건너면 바로 정전에 이르는 명정문이 있으며, 단청을 마무리하지 않은 명정문은 최근 복원공사의 흔적이다 ⓒ양인억
우리의 궁궐은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한복을 입고 명정문 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관람객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양인억
우리의 궁궐은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한복을 입고 명정문 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관람객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양인억
'왕은 남면한다’는 원칙과 달리 창경궁 외전의 정전인 명정전은 지세 및 터의 크기로 동향을 하고 있다. 봄을 맞아 산책 나온 부부 관람객이 왕도인 어도를 따라 명정전을 향하고 있다 ⓒ양인억
'왕은 남면한다’는 원칙과 달리 창경궁 외전의 정전인 명정전은 지세 및 터의 크기로 동향을 하고 있다. 봄을 맞아 산책 나온 부부 관람객이 왕도인 어도를 따라 명정전을 향하고 있다 ⓒ양인억
명정전은 단층 건물로 작고 소박하지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중건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국보 제226호인 명정전의 단청은 다른 정전과 달리 화려하지 않지만 400년의 연륜으로 고색창연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양인억
명정전은 단층 건물로 작고 소박하지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중건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국보 제226호인 명정전의 단청은 다른 정전과 달리 화려하지 않지만 400년의 연륜으로 고색창연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양인억
명정전 행각에는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주둔했다. 명정전 남쪽 행각 사이로 봄을 맞은 궐내각사 터의 신록이 봄의 신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양인억
명정전 행각에는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주둔했다. 명정전 남쪽 행각 사이로 봄을 맞은 궐내각사 터의 신록이 봄의 신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양인억
임금이 정사를 살피는 편전인 문정전은 명정전과 달리 남향을 하고 있다. 이곳 문정전은 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들(사도세자)이 죽임을 당한 임오화변이 시작된 슬픈 장소이다 ⓒ양인억
임금이 정사를 살피는 편전인 문정전은 명정전과 달리 남향을 하고 있다. 이곳 문정전은 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들(사도세자)이 죽임을 당한 임오화변이 시작된 슬픈 장소이다 ⓒ양인억
숭문당은 왕이 독서를 하거나 신하와 국사를 논하는 곳으로 숭문당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다 ⓒ양인억
숭문당은 왕이 독서를 하거나 신하와 국사를 논하는 곳으로 숭문당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다 ⓒ양인억
터가 좁기 때문인지 창경궁 외전의 핵심공간은 복잡하게 모여 있다. 명정전, 문정전 그리고 숭문당이 복도각으로 연결된 덕분에 멋진 한옥의 지붕선을 연출한다 ⓒ양인억
터가 좁기 때문인지 창경궁 외전의 핵심공간은 복잡하게 모여 있다. 명정전, 문정전 그리고 숭문당이 복도각으로 연결된 덕분에 멋진 한옥의 지붕선을 연출한다 ⓒ양인억
명정전 뒤, 기둥과 지붕으로만 되어 있는 복도각은 외전에서 내전 영역으로 연결하며 창경궁 최고의 포토 스팟 중 하나다 ⓒ양인억
명정전 뒤, 기둥과 지붕으로만 되어 있는 복도각은 외전에서 내전 영역으로 연결하며 창경궁 최고의 포토 스팟 중 하나다 ⓒ양인억
명정전 뒤 복도각에서 빈양문을 통해 본 창경궁 화계의 봄꽃이 화려한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양인억
명정전 뒤 복도각에서 빈양문을 통해 본 창경궁 화계의 봄꽃이 화려한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양인억
함인정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인양전이 있던 자리에 광해군이 지은 인경궁의 함인당을 옮겨 온 것이다. 함인정 앞 넓은 마당은 임금과 신하가 접견하거나 과거에 합격한 유생을 만나 경연하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양인억
함인정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인양전이 있던 자리에 광해군이 지은 인경궁의 함인당을 옮겨 온 것이다. 함인정 앞 넓은 마당은 임금과 신하가 접견하거나 과거에 합격한 유생을 만나 경연하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양인억
낙선재 담장 아래에 조성된 창경궁 화계는 파스텔 톤의 예쁜 봄꽃으로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양인억
낙선재 담장 아래에 조성된 창경궁 화계는 파스텔 톤의 예쁜 봄꽃으로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양인억
함인정 위에서 바라본 창경궁 화계. 함인정의 가운데는 임금의 자리로 주변보다 한 단 높게 되어 있다. 임금의 자리를 제외한 함인정은 관람객에게 잠시 쉬어가는 자리를 허락한다 ⓒ양인억
함인정 위에서 바라본 창경궁 화계. 함인정의 가운데는 임금의 자리로 주변보다 한 단 높게 되어 있다. 임금의 자리를 제외한 함인정은 관람객에게 잠시 쉬어가는 자리를 허락한다 ⓒ양인억
창경궁 화계는 경춘전 뒤까지 이어진다. 경춘전은 소혜왕후(성종의 어머니), 인현왕후(숙종의 계비),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비)가 사용한 건물로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다 ⓒ양인억
창경궁 화계는 경춘전 뒤까지 이어진다. 경춘전은 소혜왕후(성종의 어머니), 인현왕후(숙종의 계비),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비)가 사용한 건물로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다 ⓒ양인억
멋진 소나무와 살구나무가 서 있는 환경전 뒤. 환경전은 병자호란으로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올봄 덕수궁 석어당 앞의 살구나무 꽃 장관은 놓쳤으나 창경궁의 살구나무 꽃으로 위로해 본다 ⓒ양인억
멋진 소나무와 살구나무가 서 있는 환경전 뒤. 환경전은 병자호란으로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올봄 덕수궁 석어당 앞의 살구나무 꽃 장관은 놓쳤으나 창경궁의 살구나무 꽃으로 위로해 본다 ⓒ양인억
창경궁의 중궁전인 통명전이 넓은 월대 위에 있다. 경복궁의 교태전이나 창덕궁의 대조전과 마찬가지로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건물인 통명전은 월대 앞 공간에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이 있어 왕비와 대비를 위한 공식행사가 열린 곳이다 ⓒ양인억
창경궁의 중궁전인 통명전이 넓은 월대 위에 있다. 경복궁의 교태전이나 창덕궁의 대조전과 마찬가지로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건물인 통명전은 월대 앞 공간에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이 있어 왕비와 대비를 위한 공식행사가 열린 곳이다 ⓒ양인억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린 창경궁도 자연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건물을 지었다. 통명전 뒤로는 언덕이 있어 높은 곳에서 통명전의 독특한 무량각 지붕을 감상할 수 있다 ⓒ양인억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린 창경궁도 자연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건물을 지었다. 통명전 뒤로는 언덕이 있어 높은 곳에서 통명전의 독특한 무량각 지붕을 감상할 수 있다 ⓒ양인억
언덕 위에서 바라본 창경궁 전경. 서울 도심의 빌딩 속에 역사 공간이자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는 녹지 공간으로 남아있는 창경궁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양인억
언덕 위에서 바라본 창경궁 전경. 서울 도심의 빌딩 속에 역사 공간이자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는 녹지 공간으로 남아있는 창경궁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양인억
상대적으로 작은 궁궐인 창경궁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내전 영역(집복헌과 영춘헌)의 지붕으로부터, 외전 영역의 명정문과 행각 그리고 정문인 홍화문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담한 궁이다 ⓒ양인억
상대적으로 작은 궁궐인 창경궁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내전 영역(집복헌과 영춘헌)의 지붕으로부터, 외전 영역의 명정문과 행각 그리고 정문인 홍화문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담한 궁이다 ⓒ양인억

■ 창경궁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번지
○ 운영시간
- 관람시간 : 09:00~21:00
- 입장시간 : 09:00~20:00
○ 입장료 : 1,000원 (대인기준)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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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양인억

역사 문화의 도시 서울, 그 속의 아름다운 국가유산을 소개하는 시민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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