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옛길, 구천면로를 기억하다!

시민기자 최정환

발행일 2021.04.14. 11:00

수정일 2021.04.14. 18:01

조회 407

구민들이 직접 기록한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

추억은 개인의 것이고, 역사는 국가의 것이다. 이런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근래에는 고정관념에 불과해졌다. 국가, 지역을 주름잡던 권력자들의 역사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 그저 마을에 난 길을 걷기만 해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작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추억이, 그 속의 마을과 도시의 모습이 기록되고 또 모여서 크진 않아도 현장감 넘치는 역사가 된다. 바로 도시 아카이빙이다.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길, 구천면로의 기억이 도시 아카이빙의 대상이 되었다. 오래된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기억이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카메라에 담겼다. 강동문화재단의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 ‘구천면로를 기억하다’를 살펴보자.
‘구천면로를 기억하다’는 강동문화재단의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구천면로를 기억하다’는 강동문화재단의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강동문화재단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길, 구천면로

구천면로는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다. 아직 서울이 아니던 시절 강동구 지역의 이름이던 구천면에서 이름을 따왔고, 조선시대에도 한양과 하남 이남을 잇는 교통로였다. 오늘날에는 서북쪽으로 천호 옆 광진교에 이어지고 동쪽으로 상일동의 고덕 아파트 단지까지 이어지며 강동구 중서부를 관통하고 있다. 서울의 확장을 같이한 길인 것이다.

오래된 길인 만큼 구천면로는 다른 길들이 굵고 직선인 것과 다르게 구불거리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길목마다 골목길이 깊게 나 있기도 하다. 그 구불거리는 귀퉁이마다, 깊이 들어간 골목마다 어떤 기억이 어떻게 잠들어 있을지는 무궁무진하다. 광진교 앞 넓게 펼쳐진 대로와 상가부터 골목 안쪽에 숨어있는 오랜 구멍가게까지 구천면로의 기억은 곳곳에 숨어있다.

강동구민들이 펜과 카메라로 담아낸 과거와 현재

이 프로젝트는 지역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 경 강동문화재단 주도로 시작됐다. 강동문화재단은 강동아트센터와 5개 도서관을 통합해 만들어진 지역 문화예술의 핵심기관이다. 강동문화재단의 추진력과 주민들의 협력에 힘입어 올해 3월 그 결과물을 내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가 있기까지, 즉 기억을 찾아내고 기록해서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완성해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그 기억을 품은, 그리고 풀어낸 사람들일 것이다. ‘구천면로를 기억하다’는 강동구민 출신, 즉 이 구천면로를 직접 걸었던 주민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지역 주민 출신의 여러 기록작가들이 구천면로 곳곳에 녹아있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펜과 카메라로 담아낸 것이다.

구천면로를 훑은 작가들의 성과는 글과 사진, 영상으로 남았다. 구천면로의 그리움을 기록한 <그리움에 글이음>, 역사를 담은 나무들을 기록한 <이야기를 품은 나무들>, 옛 발자취와 앞으로의 발걸음을 기록한 <구천면로의 시작, 광진교에 관한 이야기>, 구천면로 골목 ‘기억의 향기’를 찾은 미니인터뷰 <강동헌책방 기이도 어르신>과 <천호 컴퓨터세탁> 아닌 <천호 ㅓ퓨ㅓㅅ>, 골목길에서 발견한 삶의 흔적을 기록한 <반갑다……구천면로 30!>, 구천면로 한켠을 차지한 건물을 기록한 <구천면로에 살다>, 마지막으로 구천면로의 사진을 기록한 구천면로 기록물까지 성과는 무척 다양하다.
강동문화재단 유튜브 캡쳐. 영상이 큰 호응을 끌진 못했지만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도시 아카이빙의 목적과 가치는 충분하다.
강동문화재단 유튜브 캡쳐. 영상이 큰 호응을 끌진 못했지만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도시 아카이빙의 목적과 가치는 충분하다. ⓒ강동문화재단

각각의 작품은 영상으로 만들어져 강동문화재단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 된 상태다. 큰 반향을 끌진 못했지만 분명 의미있는 기록 작품이다. 더욱이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야기도 별도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올라온 도시 아카이빙 작품, 한 번 쯤 확인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광진교부터 상일동까지, 기억의 장소를 찾아가다

실제로 한손에 영상을 틀어놓고 눈으로는 영상에서 설명하는 ‘구천면로의 기억’인 장소를 직접 찾아 살펴봤다. 물론 기억의 당사자가 나 자신은 아니다. 그러나 영상 속, 그 안의 기억 속에서 묘사되는 구천면로와 2021년의 구천면로를 함께 두고 보면 이 길의 옛날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지는 듯해 신비한 감정이 들었다.
광진교 북단의 구천면로 표지판. 표지판을 따라 광진교를 건너면 죽 구천면로가 이어진다.
광진교 북단의 구천면로 표지판. 표지판을 따라 광진교를 건너면 죽 구천면로가 이어진다. ⓒ최정환

특히 기억으로만 남지 않은 공간은 더더욱 흥미로웠다. 만약 길 자체만을 말했다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 서울의 번화함 때문에 그 과거의 기억, 역사는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헌책방 등이 오랜 기억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특히 강동 헌책방의 책장에는 오래된 옛 책과 얼마 전 들어온 최근 책이 함께 꽂혀있어 책방의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듯했다.
강동 헌책방. 구천면로의 골목에는 이런 작고 오래된, 그래서 잊혀져 가지만 분명 기억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 숨어있다.
강동 헌책방. 구천면로의 골목에는 이런 작고 오래된, 그래서 잊혀져 가지만 분명 기억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 숨어있다. ⓒ최정환

비록 ‘구천면로를 기억하다’에서 말하는 옛 구천면로를 거의 알지 못하는 소위 ‘요즘 애들’이지만, 이런 오랜 공간에 영상 속 기억의 진술까지 더해지면 그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진 역사의 의미도 약간은 이해가 간다.

도로의 이름은 비단 도로명 주소를 쉽게 찾기 위해 있는 것만이 아니다. 이름이 붙여진 길은 사람들에게 기억을 남기고, 사람들은 그 길의 역사를 만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던 길의 역사를, 여러 사람들이 모여 기억을 짜맞춘 도시 아카이빙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 강동문화재단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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