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문화의 전당, 매화 향기가 은은한 곳!

시민기자 문청야

발행일 2021.03.11. 12:00

수정일 2021.03.11. 16:32

조회 1,808

서울에 매화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종로구 삼일대로에 있는 왕실문화의 전당 운현궁을 찾았다. 운현궁은 조선왕조 마지막 왕실의 생활공간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곳으로, 고종은 이곳에서 태어나 12세까지 머물렀다.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고 고종과 혼례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운현궁의 공간은 남녀가 구분되고, 각종 행사를 치르는 곳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크게 노안당(사랑채), 노락당(안채), 이로당(별채), 수직사, 유물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은 조선 말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공간이다. 운형궁 모형, 왕과 왕비가 가례를 올릴 때 착용한 예복, 운현궁의 각종 생활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운현궁 유물전시관에 있는 유물은 복제품이고, 실제 유물은 서울역사박문관에 보관·전시되어 있다. 

운현궁 노안당 뜰에는 매화 한그루가 꽃을 피워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휴일 아침 느긋하게 운현궁을 산책했다. 운현궁의 건물들과 전시관을 둘러보며 조선말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흥선대원군의 발자취와 조선 말엽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운현궁은 무료 입장이다ⓒ문청야
흥선대원군의 발자취와 조선 말엽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운현궁은 무료 입장이다ⓒ문청야
운현궁(雲峴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저택이다ⓒ문청야
운현궁(雲峴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저택이다ⓒ문청야
본래의 운현궁은 창덕궁과도 이어져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규모가 크게 줄었다ⓒ문청야
본래의 운현궁은 창덕궁과도 이어져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규모가 크게 줄었다ⓒ문청야
19세기 말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건립한 고종의 사가이자 대원군의 사택 앞마당에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다ⓒ문청야
19세기 말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건립한 고종의 사가이자 대원군의 사택 앞마당에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다ⓒ문청야
조선 말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유물전시관ⓒ문청야
조선 말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유물전시관ⓒ문청야
조선 말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문청야
조선 말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문청야
이른 아침 노안당 건물에 햇살이 비추어져 한옥의 운치가 더하다ⓒ문청야
이른 아침 노안당 건물에 햇살이 비추어져 한옥의 운치가 더하다ⓒ문청야
노락당으로 들어가는 문,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정원이 멋스럽다ⓒ문청야
노락당으로 들어가는 문,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정원이 멋스럽다ⓒ문청야
운현궁 정문 현판ⓒ문청야
운현궁 정문 현판ⓒ문청야
노안당 서행각에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침구류가 전시되어 있다ⓒ문청야
노안당 서행각에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침구류가 전시되어 있다ⓒ문청야
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은 조선시대 천문일을 보던 서운관(書雲觀) 앞의 고개에 자리 잡아 붙여진 이름이다ⓒ문청야
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은 조선시대 천문일을 보던 서운관(書雲觀) 앞의 고개에 자리 잡아 붙여진 이름이다ⓒ문청야
노안당, 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만년에 임종한 곳이다ⓒ문청야
노안당, 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만년에 임종한 곳이다ⓒ문청야
병풍이 놓인 방 안의 모습, 흥선대원군은 서화에 능통한 예술가였다. 난초를 잘 그리는 것으로 손에 꼽혔고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붓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다.ⓒ문청야
병풍이 놓인 방 안의 모습, 흥선대원군은 서화에 능통한 예술가였다. 난초를 잘 그리는 것으로 손에 꼽혔고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붓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다.ⓒ문청야
노안당 마루 앞 토방 (土房)에 서서 매화꽃을 바라보았다ⓒ문청야
노안당 마루 앞 토방 (土房)에 서서 매화꽃을 바라보았다ⓒ문청야
햇살이 스며든 한옥의 마루가 따스하게 느껴진다ⓒ문청야
햇살이 스며든 한옥의 마루가 따스하게 느껴진다ⓒ문청야
노안당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책을 논의한 곳이다ⓒ문청야
노안당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책을 논의한 곳이다ⓒ문청야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흥선군의 부인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이다ⓒ문청야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흥선군의 부인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이다ⓒ문청야
곳곳에서 한옥의 푸근함이 느껴졌다ⓒ문청야
곳곳에서 한옥의 푸근함이 느껴졌다ⓒ문청야
노락당과 이노당 사이에 있는 협문이다. 작지만 예술적으로 지어졌다ⓒ문청야
노락당과 이노당 사이에 있는 협문이다. 작지만 예술적으로 지어졌다ⓒ문청야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문청야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문청야
한옥에서는 겹겹이 겹친 프레임 사진을 찍기에 좋다ⓒ문청야
한옥에서는 겹겹이 겹친 프레임 사진을 찍기에 좋다ⓒ문청야
이로당 동행각은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후원과 이어져 있다ⓒ문청야
이로당 동행각은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후원과 이어져 있다ⓒ문청야
노락당 동편 뒤 뜰 ⓒ문청야
노락당 동편 뒤 뜰 ⓒ문청야
제1전시실 내부, 유물전시관에는 운형궁 모형, 왕과 왕비가 가례를 올릴 때 착용한 예복, 운현궁의 각종 생활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문청야
제1전시실 내부, 유물전시관에는 운형궁 모형, 왕과 왕비가 가례를 올릴 때 착용한 예복, 운현궁의 각종 생활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문청야
흥선대원군의 적색 조복과 부대부인의 녹색 원삼 ⓒ문청야
흥선대원군의 적색 조복과 부대부인의 녹색 원삼 ⓒ문청야
고종의 제레복과 명성황후의 홍색 적의ⓒ문청야
고종의 제레복과 명성황후의 홍색 적의ⓒ문청야
흥선대원군이 사용하던 집기들ⓒ문청야
흥선대원군이 사용하던 집기들ⓒ문청야
제2전시실 내부ⓒ문청야
제2전시실 내부ⓒ문청야
상궁의 청녹색 당의, 명성 황후의 홍색 노의ⓒ문청야
상궁의 청녹색 당의, 명성 황후의 홍색 노의ⓒ문청야

시민기자 문청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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