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팝니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3.10. 11:50

수정일 2021.03.11. 18:06

조회 4,087

‘필(必)환경’ 시대에 꼭 필요한 제로웨이스트 운동, 알맹상점에 가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개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커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하고 최소한의 소비로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바로 '제로웨이스트'다.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 입구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 입구 ⓒ이선미

최근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속속 생기고 있는데, 그 가운데 지난해 문을 연 망원동의 '알맹상점'을 찾아가 보았다.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시구의 알맹이, 바로 '알맹상점'이다. 진짜로 모든 껍데기, 즉 포장을 버리고 알맹이만 파는 곳이다.

길가에 있지만 크지 않은 입구여서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좁은 계단 아래엔 나눠 쓰자고 내놓은 물품들이 있다.  ‘함께 쓰는 커뮤니티 공유센터’다.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필요한 누군가가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하고 가져다 쓴다. 
알맹상점은 ‘함께 쓰는 커뮤니티 공유센터’이기도 하다.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다 쓴다.
알맹상점은 ‘함께 쓰는 커뮤니티 공유센터’이기도 하다.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다 쓴다. ⓒ이선미

국내 최초의 리필 가게

계단을 올라가면서 좀 놀랐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25평 정도 되는 가게가 그득 찬 느낌이었다. 일반 매장과는 다른 풍경이 신기하고 새롭다. 화장품과 액체세제류를 담은 벌크 용기가 즐비한 것도 그랬다. 각각의 통에는 샴푸와 린스, 액상 세탁세제부터 섬유유연제, 주방세제, 토너와 에센스 등 화장품까지 다양한 제품이 담겨 있다.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양만큼 담아 구입할 수 있는 알맹상점은 국내 최초의 리필 가게다. 
국내 최초의 리필 가게인 알맹상점에서는 벌크 용기에 담긴 제품을 원하는 만큼 덜어 살 수 있다.
국내 최초의 리필 가게인 알맹상점에서는 벌크 용기에 담긴 제품을 원하는 만큼 덜어 살 수 있다. ⓒ이선미

화장품의 경우, 과대포장도 문제지만 그 예쁜 용기들이 재사용되지 않는 ‘쓰레기’라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 알맹상점에 의하면, 올해 들어 두 달 동안 판매한 화장품 양은 약 400리터로, 플라스틱 100ml 용기 4,000개 분량이었다고 한다. 화장품 업계가 리필을 제도화한다면 그만큼 쓰레기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알맹상점은 화장품 회사에 대용량 제품 공급과 리필 제품 다양화 등을 통해 재사용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 시민이 화장품을 용기에 담아 무게를 재고 있다.
한 시민이 화장품을 용기에 담아 무게를 재고 있다. ⓒ이선미
천연 세제인 소프넛을 처음으로 써보겠다는 시민이 종이봉투에 담고 있다.
천연 세제인 소프넛을 처음으로 써보겠다는 시민이 종이봉투에 담고 있다. ⓒ이선미

알맹상점에서는 아로마티카, 티오피라, 파밀리아랩, 팜앤코 등의 제품을 리필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소량을 납품 받기 어려운 대기업의 구조 때문에 발품을 많이 팔았는데 다행히 공감대가 형성된 업체들이 있어서 리필이 가능해졌다. 비치된 견본을 써보고 토너와 크림 등 기초화장품부터 바디 용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섬유유연제와 주방세제 등도 리필이 가능하다.
섬유유연제와 주방세제 등도 리필이 가능하다. ⓒ이선미

리필 제품에는 올리브기름과 발사믹소스도 있다. 다만 기름과 발사믹에는 ‘단가가 높으므로 조금만 담으세요’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올리브기름과 발사믹소스에는 단가가 높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올리브기름과 발사믹소스에는 단가가 높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이선미

매장의 깊숙한 창가에는 여러 가지 허브티와 계피가루, 히말라야 소금 등이 준비돼 있었다. 마침 수정과를 만들고 싶은 참에 계피가, 그것도 제일 좋다는 베트남산이 있어서 구매를 시도해봤다. 처음 해보려니 약간 망설여졌는데 직원이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용기를 가져온 경우는 저울에 용기를 올려 무게를 확인한다. 원하는 제품을 용기에 담고 다시 무게를 재면 용기를 뺀 무게로 산출 금액이 표시된다. 내역을 출력해 용기에 붙이고 계산대로 가면 끝!
허브티도 소량으로 살 수 있다. 먼저 용기 무게를 달고 원하는 제품을 담아 다시 저울에 올리면 금액이 출력된다.
허브티도 소량으로 살 수 있다. 먼저 용기 무게를 달고 원하는 제품을 담아 다시 저울에 올리면 금액이 출력된다. ⓒ이선미

미처 용기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바로 옆에 있는 진열대에서 원하는 병을 구할 수도 있다. 열탕소독을 마친 깨끗한 통들이 있는데, 플라스틱통은 무료, 유리병은 500원을 내고 쓸 수 있다. 
열탕소독을 마친 통들이 준비되어 있다. 용기가 필요하면 이 통들을 사용하면 된다.
열탕소독을 마친 통들이 준비되어 있다. 용기가 필요하면 이 통들을 사용하면 된다. ⓒ이선미

재활용되지 않는 물건을 모아 재활용하는,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그 옆으로는 ‘회수센터’가 있다. 재활용도 어려운 자원을 모아 또 다른 제품으로 만드는 일은 알맹상점의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다. 잠시 머문 그 짧은 시간에도 여러 시민이 회수센터를 찾았다. 
바리바리 재활용 물품을 가져온 시민들이 여럿 있었다.
바리바리 재활용 물품을 가져온 시민들이 여럿 있었다. ⓒ이선미

유리병이나 플라스틱병, 병뚜껑, 우유팩 등을 가져오면 스탬프를 찍어 나중에 플라스틱프리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회수된 자원은 플라스틱 방앗간으로 보내 새로운 물건으로 재탄생된다. 커피 찌꺼기로 화분과 연필을 만들고, 우유팩으로는 화장지가 나온다. 플라스틱은 치약짜개 같은 새로운 물건으로 재생된다. 

알맹상점에서는 원하는 경우에만 영수증을 발행한다. 영수증 종이 역시 폐기물인데다 인체에 유해한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비스페놀A’(BPA)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알맹상점에서는 원하는 경우에만 영수증을 발행한다.
알맹상점에서는 원하는 경우에만 영수증을 발행한다. ⓒ이선미

“우유팩은 씻어서 펼쳐 말리고, 커피가루는 2, 3일 바짝 말려 가져와야 해요. 병뚜껑 안쪽에 실리콘 재질이 있는 경우는 재활용이 안 됩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고금숙 알맹상점 공동대표가 시민들에게 회수센터에 대한 안내를 하곤 했다. 고 대표는 망원시장에서 플라스틱프리 캠페인 등을 하던 동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알맹상점까지 열게 되었다. 
알맹상점은 세 명의 공동대표가 있다. 고금숙 대표가 회수센터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알맹상점은 세 명의 공동대표가 있다. 고금숙 대표가 회수센터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이선미

알맹상점 제품들은 예쁘기도 하다. 흔히 재활용이나 친환경 제품들이 투박하거나 가격이 고가라는 선입견도 깨지는 듯했다. 대나무 칫솔과 친환경 수세미, 행주 같은 주방용품부터, 여러 가지 빨대들, 삼베로 만든 마스크와 밀랍초까지, 구경만 해도 즐거워지는 가게였다. 살림에 꼭 필요한 제품들도 많아서 다음엔 용기도 챙겨와 천천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활용이나 친환경 제품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수세미, 비누, 밀랍초 등은 그 자체로도 구매욕구를 충동했다.
재활용이나 친환경 제품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수세미, 비누, 밀랍초 등은 그 자체로도 구매욕구를 충동했다. ⓒ이선미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텐·유리·실리콘 빨대들. ⓒ이선미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텐·유리·실리콘 빨대들. ⓒ이선미

사실 필자는 알맹상점에서 일말의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그 공간에서 진지하게 구매하거나 재사용 가능한 물품을 챙겨와 회수센터에 맡기는 이들이 대부분 2, 30대로 보였다.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부한 지금, 작은 것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 일행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단순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젊은 시민들이 참 보기에 좋았다. 아무래도 SNS에서 정보를 얻고 더 흥미를 느끼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순발력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제로 알맹상점 이용자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고 한다. 점점 모든 시민이 찾게 되는 제로웨이스트 샵이 되면 좋겠다.
실제로 알맹상점 이용자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고 한다. 점점 모든 시민이 찾게 되는 제로웨이스트 샵이 되면 좋겠다. ⓒ이선미

완벽하게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제로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한 사람이 한 가지씩은 실행할 수 있다. 필자는 제로웨이스트를 위해 이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만났다. 내가 시작하면 쓰레기 하나가 줄어든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면 그만큼 효과가 커진다. 필(必)환경시대에 제로웨이스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절박한 요청이다.

번거로운 것들을 없애고 줄이면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조금은 더 관대해지지 않을까… 제로웨이스트 샵, 알맹상점에서 만난 젊은 시민들은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 제로웨이스트 샵 '알맹상점'

○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49, 2층
○ 가는법: 망원역 2번 출구에서 도보 5분, 합정역 도보 10분
○ 운영시간: 화~일요일 14:00~20:00
○ 휴무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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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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