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 산림욕장 푸르른 '호암늘솔길' 서울둘레길 산책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2.23. 11:04

수정일 2021.02.23. 11:04

조회 2,109

서울에서 잣나무 산림욕장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 반가워 길을 나서 보았다. ‘호암늘솔길’은서울둘레길 5-2코스의 일부로 필자는 삼성산 성지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고려 말 나옹, 무악, 지공 세 스님이 수도한 곳이어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하고, 그보다 앞서 원효, 의상, 윤필 스님이 암자를 짓고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삼성산 성지에서 호압사까지는 1km 정도의 둘레길이다.
삼성산 성지에서 호압사까지는 1km 정도의 둘레길이다. ⓒ이선미

그런데 지금 ‘삼성산 성지’는 불교가 아니라 천주교의 성지다. 1831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시신이 58년 동안 이곳에 묻혀 있었다. 천주교 박해가 끝나고 1901년 명동성당으로 유해가 옮겨진 후 방치되다가1981년부터 옛 묘역을 정비하기 시작해 1989년에는 명동성당에서 유해 일부를 모셔와 안치했다. 세 순교자가 1984년 천주교 성인이 되었으므로 또 하나의 의미로 ‘삼성산’이 되었다. 
세 성인이 묻혔던 곳에 구상 시인의 헌사가 세워져 있다.
세 성인이 묻혔던 곳에 구상 시인의 헌사가 세워져 있다. ⓒ이선미

삼성산 성지를 지나 아직 겨울 분위기가 남은 산길을 걸었다. 계곡에는 눈이 얼어있고 지난해 낙엽은 을씨년스러웠다. 그리 험한 길이 아니고 이정표도 잘 설치되어 있어서 초행길인데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천천히 걷다보니 저만큼 꼭대기에 소나무 푸른 가지에서 솔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호압사에 닿았다. 호암늘솔길의 시작점이었다. 호암산 폭포까지 이어지는 약 1.2㎞ 구간에 잣나무 산림욕장을 통과한다. 
천천히 길을 올라가다보면 솔바람 불어오는 호압사가 나온다.
천천히 길을 올라가다 보면 솔바람 불어오는 호압사가 나온다. ⓒ이선미

잣나무는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푸르다.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이라는 ‘호암늘솔길’에 소나무의 벗 잣나무 숲이 이어졌다. 

원래 호암산 자락 아래에는 1960년대 말 서울역 주변을 정비할 때 떠밀려온 이주민들이 살았다. 그들의 정착지를 몇 번이나 호암산 산사태가 덮쳤다. 자연재해를 복구하며 주민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잣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30여 년이 지나 오늘의 숲을 이뤘다. 힘든 시간을 극복하며 마음 모아 조성한 숲이어서 주민들의 사랑도 남다르다고들 한다. 
호압사에서 접어들면 잣나무 산림욕장이 시작된다.
호압사에서 접어들면 잣나무 산림욕장이 시작된다. ⓒ이선미

데크를 따라 걸었다. 5만㎡에 이르는 잣나무 숲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푸릇푸릇 생기가 느껴졌다. 걷기 좋게  데크를 잘 조성해 놓았지만, 직접 흙을 밟으며 산길로도 걸을 수 있다. 
무장애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지만 산길로도 다닐 수 있다.
무장애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지만 산길로도 다닐 수 있다. ⓒ이선미

곳곳에 쉼터가 마련되어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잣나무 숲에는 워낙 띄엄띄엄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서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거리두기가 저절로 유지되고 있었다. 
잣나무 숲에는 멀찍이 테이블들이 설치되어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자연히 유지되고 있었다.
잣나무 숲에는 멀찍이 테이블들이 설치되어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자연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선미

무장애 길로 조성된 호암늘솔길은 생태계도 배려하고 있다. 해가 어두워지면 조명이 길을 밝히는데 야생생물들의 생태계 보존을 위해 밤 열 시가 되면 모두 소등한다. 야간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시민들은 소등 10분 전까지 하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호압사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로 약사전이 중심에 있다.
호압사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로 약사전이 중심에 있다. ⓒ이선미

다시 호압사로 돌아와 찬찬히 경내를 돌아보았다. 호압사에는 유독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도 많은데, 그 부산함 속에서도 고요하게 탑돌이를 하고 법당에 머물렀다. 계단을 올라서니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이 아니라 약사전이 보였다. 호압사는 특히 사람들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이다. 
호암산 아래 자리잡은 고찰 호압사의 풍경이 아늑하다.
호암산 아래 자리잡은 고찰 호압사의 풍경이 아늑하다. ⓒ이선미

호압사의 넉넉한 마음씀도 잣나무 숲이 조성되기까지 시민들의 정성도 그 수고 속에 따뜻한 인심이 느껴졌다. 호암늘솔길은 휠체어도 무리없이 사용하도록 무장애길로 조성되어 더 많은 시민들이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요즈음, 가까운 잣나무 숲을 찾아 마음껏 숨을 들이쉬며 봄을 맞이해보면 어떨까.

■ 호암늘솔길(서울둘레길 5-2구간 일부)

○ 코스: 호압사 입구~잣나무 산림욕장~호암산 폭포까지 총 1.2km 구간
○ 서울둘레길 홈페이지
○ 문의: 금천구청 공원녹지과 02-2627-1655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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