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역사 품은 '남산 예장자락'을 걷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2.04. 15:20

수정일 2021.02.08. 10:26

조회 2,501

아픈 역사의 현장 녹지공원으로 조성, 1월 시민들에게 개방

남산 예장자락에 녹지공원이 조성되었다. 2017년부터 예장자락 원형 복원과 도심공원 재생사업을 이어온 지 5년 여 만의 일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훈련장 '예장'이 있던 곳이었지만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설을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차단돼왔다.  

서울시는 5년 여에 걸쳐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을 진행했고 드디어 지난 1월 시민들에게 일부 개방했다. 5월엔 완전한  개방을 앞두고 있다. 새롭게 탄생한 예장자락을 걸어보았다. 켜켜이 쌓여있는 역사를 뒤로 하고 봄이 오는 듯 햇살 좋은 날이었다.
명동역에서 ‘기억의 터’로 올라가는 길에 예장자락 공원이 조성되었다.
명동역에서 ‘기억의 터’로 올라가는 길에 예장자락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선미

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충무로역 사이에 있는 예장자락으로 가기 위해 명동역에서 내려 ‘기억의 터’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는 못한 듯 보였다. 

‘메모리얼 광장’에 들어선 빨간 우체통 모양의 건물 '메모리얼 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 지하에는 군사독재 시절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옛 중앙정보부 고문실을 재현하고 지상은 전시실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3월 정식 운영에 들어간다. 
잊지 말아야 할 과거를 상기시키는 메모리얼 광장이 들어섰다.
잊지 말아야 할 과거를 상기시키는 메모리얼 광장이 들어섰다.ⓒ이선미

조선시대에 무예훈련장(예장)이 있었던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고립되었다. 일제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머물러 성을 쌓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왜성대 공원을 조성하고, 남산 전역에 통감부 등 각 기관과 조선신사 등을 지어 조선인의 정신마저 지배하고자 했다. 
발굴 과정에서 나온 조선총독부 관사 터 기초 일부를 보존해 놓았다.
발굴 과정에서 나온 조선총독부 관사 터 기초 일부를 보존해 놓았다.ⓒ이선미

광복 후 일제가 떠난 뒤에는 군사독재 정권이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공포의 장소이기도 했다.  과거 5.16 쿠데타 직후 설치한 ‘중앙정보부 6국’이 있었다. ‘중앙정보부 6국’은 학원 사찰과 수사를 담당했는데, 중앙정보부 내에서도 혹독한 고문과 취조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이 자유로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예장자락은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불편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사, 광복 뒤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사, 광복 뒤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 ⓒ이선미

입구에 만들어진 ‘예장숲’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교목 18종과 사철나무 등 관목 31종 6만 여  주를 식재했다. 우리 나무와 우리 꽃들의 이름표가 많이 보였다.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해지면 제법 운치 있는 길이 될 것 같다. 길을 걷는 동안 특히 소나무가 많이 보였다. 예장숲 어딘가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있다고 했는데 표지가 없어서 어떤 나무인지는 찾지 못했다.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며 3개의 후보목 가운데 전북 고창에 있던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한다. 
소나무  길을 걸으며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생각했다.
소나무 길을 걸으며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생각했다.ⓒ이선미

'샛자락쉼터'라는 이름의 인공 실개천도 조성되었다. 졸졸졸 물이 흐르면 여름날에도 나름대로 정취가 있을 것 같았다. 시민들이 오가며 휴식을 취하고 남산을 즐길 수 있도록 넓지 않은 공간을 오밀조밀 꾸며 놓았다.
실개천도 흐르는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실개천도 흐르는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이선미

공원에서는 보행다리를 통해 남산공원, 한옥마을까지 걸을 수 있다. 한 가족이 산책을 나섰는지 연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시민들이 보행다리를 걷고 있다.
시민들이 보행다리를 걷고 있다. ⓒ이선미

도로 너머가 바로 ‘기억의 터’였다. 1910년 일제와 대한제국의 강제합병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 현장이 2016년에 일본인 ‘위안부’를 기리는 공간으로 가꿔졌다.
옛 통감관저 터에 자리한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기억의 터’
옛 통감관저 터에 자리한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기억의 터’ ⓒ이선미

공원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5월에는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여섯 형제를 비롯한 일가족 모두가 만주로 망명해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우리 역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을 예장자락에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 여섯 형제 가운데 다섯이 옥사하거나 아사했다. 이회영 선생 역시 고문 끝에 옥사했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이시영만이 광복 후 귀국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명동 ‘이회영, 이시영 6형제 집터’에 있는 이회영 선생 상
명동 ‘이회영, 이시영 6형제 집터’에 있는 이회영 선생 상ⓒ이선미

한편 공원 아래쪽 지하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서울시 녹색순환버스 주차장이자 환승 장소로 운용된다. 앞으로는 관광버스를 이곳 주차장에 주차하고 바로 녹색순환버스로 환승해 남산공원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녹색순환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녹색순환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이선미

서울 도심 녹색교통지역 내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주요 관광지와 지하철역, 상업지역과 업무지구 들을 순환 운행하고 있는 녹색순환버스는 현재 총 4개 노선에 27대가 운행되고 있다. 
‘기억의 터’에서 내려가며 한눈에 보이는 예장자락 공원
‘기억의 터’에서 내려가며 한눈에 보이는 예장자락 공원 ⓒ이선미

오랫동안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어져 도심의 섬처럼 고립되었던 예장자락이 시민들의 삶과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치욕과 아픔도, 고마움과 자랑스러움도 있는 그대로 기억하며 미래를 향해 걸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는 길이다.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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