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겨울왕국 되던 날

시민기자 양인억

발행일 2021.01.25. 09:42

수정일 2021.01.25. 09:42

조회 2,297

간밤에 함박눈이 내려 눈 속의 고궁을 찾아 아침 일찍 창덕궁으로 향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햇살은 눈을 녹이기에 충분함을 한 번 경험했기에 조금 서둘렀다.

이번에는 관람 시작 시간에 맞춰 입장했다. 눈 덮인 궐내각사의 다양한 건물과 인정전 그리고 선정전을 살펴보고 대조전 권역에 들어섰을 때 이미 대조전의 남사면 지붕은 눈이 다 녹아 없어 아쉬웠다. 다음에 또 찾아야 할 이유라 합리화하면서 창덕궁의 겨울 풍경을 계속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희정당 권역도 보수 공사 중이라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으니 다시 찾아올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창덕궁은 600년 전인 1405(태종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됐다. 임진왜란 때 다른 모든 궁궐과 함께 창덕궁도 불타 버린다. 전란이 끝나고 법궁인 경복궁의 터가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았고 당시 이궁이었던 창덕궁이 1610(광해군2)년 먼저 복구된다. 이후 1865(고종2)년 경복궁이 재건되기까지 270여년간 창덕궁은 조선후기 법궁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화재로 인한 소실, 증축 및 재건, 특히 일제 강점기 계획적 훼손으로 궁궐의 왕실문화는 사라져 간다.

해방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이어가던 창덕궁은 지금도 지속적인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세계적 정원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와 코로나19 상황도 녹록지않은 가운데 부지런한 출사객과 겨울왕국에서 인증사진을 담으려는 관람객이 창덕궁을 찾았다. 올 겨울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눈 덮인 창덕궁을 기대하며 잠시 겨울왕국이 되어 버린 창덕궁을 소개한다.
천연기념물 472호로 지정된 회화나무는 학자수(Scholar Tree)라 불린다. 궁궐 안에 회화나무를 심는 것은 ‘주례’에도 나와있는 궁궐 조원양식이다. 흰 눈을 덮고 있는 회화나무가 궁궐 담장 너머로 보인다.
학자수(Scholar Tree)라 불리는 회화나무가 돈화문 뒤로 보인다 ⓒ양인억
돈화문을 지나 우측으로 금천교를 건너면 창덕궁의 2번째 문, 진선문이 있다. 금천교 복원 과정에서 다리를 개울(금천)과 직각으로 복구하는 바람에 진선문과 일직선을 이루지 못하고 비스듬히 연결되고 말았다.
금천교 너머로 보이는 진선문 ⓒ양인억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돈화문의 월대 앞 공간이 제법 넓어졌다. 월대는 공식적인 행사의 장이자 왕과 신하가 백성들과 소통하는 마당이다. 월대 위에 우뚝 솟은 돈화문과 문 사이로 보이는 창덕궁에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싸여있다. 돈화문 2층 문루에는 종과 북이 걸려있어 매일 정오에 울렸다. 밤 10시에는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을 28번 울리고(인정) 새벽 4시엔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북을 33번 쳤다(파루)고 한다.
월대 위의 돈화문 ⓒ양인억
진선문 좌측에는 궁궐 내에서 업무를 보는 관리들의 작은 관청(궐내각사)이 복원되어 있다. 궐내각사의 작은 지붕들 위로 웅장한 창덕궁의 정전(인정전) 지붕이 도드라져 보인다.
궐내각사 지붕 사이로 보이는 인정전 ⓒ양인억
왕과 왕실의 진료를 담당하는 약방(내의원) 뒤, 눈 쌓인 담장과 단청을 한 지붕 사이로 영의사 마당에 있는 느티나무가 살짝 보인다.
내의원 지붕과 담장 사이로 보이는 하늘 ⓒ양인억
금천교 교각위에는 어떤 동물도 마주치기만 하면 도망치고 만다는 전설 속 백수의 왕, 산예 4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무서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염격한 격식이 요구되는 궁궐에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조각한 석공의 해학이 돋보인다. 산예는 간밤에 내린 폭설에도 불구하고 궁궐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천교 교각 위에서 궁궐을 지키고 있는 산예 ⓒ양인억
선원전은 역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좌측에 눈 꽃을 피운 나무는 측백나무로 주로 무덤가에 심었다고 하니, 어진을 모신 선원전에 잘 어울린다.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 ⓒ양인억
영의사는 선원전의 부속건물로 남쪽 행각 너머에 있으며 편액이 없다. 약방 담장 너머로 소복이 쌓인 눈을 덮은 모습이 정겹다.
소복이 싸인 담장 너머로 보이는 영의사 ⓒ양인억
영의사 앞 마당에서 궐내각사의 지붕 사이로 인정전이 우뚝 솟아 있다.
겨울왕국으로 변한 창덕궁 ⓒ양인억
임금이 선원전에서 재를 올리기 전에 머물던 어재실, 양지당 앞 마당에서 담장 너머로 본 인정전의 옆모습.
소복이 싸인 하얀 눈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인정전의 화려한 단청 ⓒ양인억
인정전 서쪽 행각에 있는 숭법문을 통하면 궐내각사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숭법문을 통해 본 눈 내린 궐내각사 모습이 아름답다.
숭법문을 통해 본 궐내각사의 겨울 풍경 ⓒ양인억
조정은 인정전 마당을 말한다. 조정에 깔려 있는 박석은 눈 속에 사라졌고, 역시 눈을 이고 있는 서쪽 행각 지붕 위로 한양의 주산인 백악(북악)이 살짝 보인다.
눈 덮인 인정전의 조정과 서쪽 행각 지붕 ⓒ양인억
간밤의 눈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한 겨울의 인정전.
겨울왕국으로 변한 인정전 ⓒ양인억
인정문 앞에서 바라본 창덕궁 최고의 공간인 인정전. 눈이 치워진 길은 삼도로 가운데 살짝 높은 곳이 왕이 다니는 어도이다. 어도 좌・우측(서쪽은 무반, 동쪽은 문반)은 신하가 다니는 길이다.
삼도로 이어진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양인억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당한 고종을 대신해서 순종이 즉위하고 순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한다. 이때 인정전을 서양식으로 개조하면서 전통 궁궐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즉, 흑색 전돌 대신 쪽마루, 전등 설치, 유리창 및 커튼을 설치하여 다른 궁궐의 정전과 차이를 보인다.
인정전 내부 전경 ⓒ양인억
겨울나기를 위해 잎을 떨군 참나무가 영하의 날씨에도 인정전 뒤편에서 호위하듯 서 있다.
궁궐 나무의 겨울나기 ⓒ양인억
왕의 집무공간인 선정전은 선정문과 선정전을 연결하는 행랑(복도각)이 있는데 이를 ‘천랑’이라고 한다. 이는 선정전이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음을 말해 준다.
선정전에서 선평문을 통해 본 모습 ⓒ양인억
선정전의 천랑(복도각, 행랑) 기둥 사이, 선정전 내 행각 너머로 보이는 인정전 2층 지붕.
선정정 행각 너머로 보이는 인정전 ⓒ양인억
선정전을 나와 대조전으로 가는 길에 촤측으로 바라본 모습. 선정전 담장과 인정전 지붕 사이 가로로 길게 보이는 지붕이 선정전의 천랑(복도각)이다.
선정전 담장, 천랑 그리고 인정전 ⓒ양인억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은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겹겹이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조전 입구는 높은 계단 위에 대문을 단 선평문이다.
선평문 사이로 보이는 대조전 ⓒ양인억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의 대조전은 월대가 있고 그 위에는 방화수를 담은 육중한 무쇠 드므 4개가 화마를 경계하고 있다. 마당과 동쪽 행각 지붕에 싸여 있는 눈과 달리 남향을 하고 있는 대조전 지붕에는 잔설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사면 모두 행각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대조전 ⓒ양인억
왕실 가족과 임금의 휴식을 위한 경훈각은 대조전과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훈각은 2층 건물이었으나, 1917년 화재 이후 재건하면서 단층 건물이 되었다.
대조전과 복도각으로 연결된 경훈각 ⓒ양인억
조선의 24대왕 헌종은 문인 학자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이에 문인들의 사랑채를 본 뜬 낙선재를 짓고 단청도 하지 못하게 했다. 상량문에는 “채색한 서까래를 걸치지 않은 것은 질박함을 앞세우는 뜻을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햇살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낙선재 서쪽 지붕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싸여 있다. 단청이 없어 화려하지 않지만 소복이 싸인 눈과 함께 고즈넉한 정경을 연출한다.
한 겨울의 낙선재 ⓒ양인억
아기자기한 장식과 다양한 화목으로 치장한 궁궐의 일반적인 화계와 달리 높은 화강암 석축에 소나무만 심어져 있는 낙선재 화계. 상록수인 소나무의 푸른 잎과 붉은 수피가 남아있는 잔설로 겨울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낙선재 소나무 화계 ⓒ양인억
낙선재 화계의 소나무 사이로 승화루가 보인다. 승화루는 정조6년(1782)에 서화 수장고로 지은 것으로 규장각의 주합루에 비견하여 소주합루라고도 불렀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승화루 현판 ⓒ양인억

■ 창덕궁

○ 위치 :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 운영시간 : 매일 09:00 ~ 18:00
홈페이지 : http://www.cdg.go.kr/default.jsp

시민기자 양인억

경복궁지킴이로서 궁궐을 비롯한 서울시 문화와 역사 현장을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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