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길 가꾸며 암 이겨냈어요"
발행일 2011.07.28. 00:00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가진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자는 저에게 이 길을 아름답게 가꿔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아왔을 때 감동하고 기뻐하고,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게 하신 게 아닐까요? 요즘은 이것이 제 사명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지난 7월 22일, 서울의 환경을 맑고 푸르게 조성한데 기여한 공이 큰 개인과 단체, 기업에게 주는 서울시 환경상에서 푸른마을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영산 씨를 찾아갔을 때 그가 한 말이다. 다른 많은 수상자들 가운데 특별하게 그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개인’의 의지로 18년 동안 강북구 오동근린공원에 500여 미터에 이르는 꽃길을 조성해 지역주민들에게 사랑 받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 돌을 박아 만든 아름다운 길
시상식 다음날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강북구 번2동을 찾았다. 강북구민운동장을 경유해 오동근린공원을 올라가도 되지만 그는 강북마을버스 6번을 타고 번2동 주택가 금강슈퍼에서 내릴 것을 권했다. 그곳은 그가 살고 있는 집 근처였고 그의 안내에 따라 주택가 사이로 난 작은 길로 접어드니 바로 오동근린공원의 중턱이 나왔다. “이곳에서부터 시작 했어요.” 그의 설명이 시작된 주택가 뒤편엔 그야말로 지천이 야생화 밭이었다. 꽃밭 사이사이의 작은 길엔 자잘한 돌을 바닥에 깔아 꽃밭과 길을 구분해 놓았다. 오밀조밀 만들어진 그 작은 꽃밭들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그가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꽃샘길’이 나타났다. 꽃샘길 500여 미터의 감동은 그의 어깨 너머 저편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주택가에서 꽃샘길로 이어지는 초입엔 18년이나 자란 근사한 칡넝쿨이 출입문인 듯 큰 아치모양으로 자라고 있었고 향기로운 칡꽃 향기도 진동했다. 잘 자라도록 지지대를 만들어 준 것도 물론 그였다. “처음 이곳에 꽃밭을 만들기 시작할 무렵 칡뿌리 세 개를 땅에 심었는데 이렇게 자랐습니다.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죠. 어떻습니까, 향기 좋죠?” 칡꽃도 처음이요, 칡꽃 향기도 처음인지라 그저 감탄사만 연발될 뿐이었다. 하지만 감동하기엔 일렀다. 칡꽃 향에 취하기를 잠시, 넓은 산 중턱이 나타나면서 정말로 잘 조성된 꽃밭과 통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긴 길이 산등성이를 향해 서너 갈래로 뻗어 있었다.
길바닥과 나무 주변과 꽃밭 주변엔 크기를 달리하는 돌들이 촘촘하게 박혀 예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꽃샘길엔 키가 큰 나무와 키가 작은 나무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80여 가지가 넘는다는 꽃들이 각양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꽃샘길’로 명명된 이 작은 꽃동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영산 씨가 정성스레 흙길 바닥에 크고 작은 돌들을 박아 만든 돌길이었다. 돌이 평평하고 가지런히 박혀있는 길 중간 중간에는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물이 빠질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만든 배수로도 있었다. 보통 공을 들여 만든 것이 아님이 느껴졌다.
“연구를 많이 했죠. 돌을 다른 곳으로부터 주워와 평평한 면이 윗부분으로 나오게끔 각도를 잘 맞춰 흙 속에 박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그는 흙길에 돌을 박아 비가 많이 오거나 사람들이 많이 다녀도 길이 파이지 않도록 했다.
그는 1994년 봄 이곳 번2동 주택가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와 바로 몇 걸음만 옮기면 갈 수 있는 뒷산에 갔는데 인근 주택가에서 버린 생활쓰레기가 가득한 광경에 큰 실망을 하게 됐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었는데 김영산 씨는 자비를 들여 트럭 한 대 분량의 쓰레기를 치웠다. 이 후 그의 쓰레기 제거 작업은 계속됐다. 하지만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된 1995년엔 생활쓰레기를 종량제봉투에 넣어버리지 않고 몰래 뒷산에 버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계속되는 주민들의 쓰레기 무단투기에 그는 비장의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치워진 자리에 꽃씨를 뿌리고 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돌들을 주어와 꽃밭 가장자리를 장식했고 꽃밭 중간으로는 예쁜 돌길을 만들었다. 돌길을 만들기 위해 그는 주변에서 크고 작은 돌을 옮겨 길을 만들어나갔다. 꽃밭은 차츰 넓어졌고 주민들은 더 이상 집 뒤편 산에 생활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됐다.
“쓰레기가 가득했던 이곳을 꽃동산으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사명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침 5시에 뒷산에 나와 1~2시간 땅을 고르고 돌을 나르고 돌길을 만들고 난 후 8시 경 집에 돌아와 출근했다가 오후 9시경 퇴근해 밤 10시까지 또 1시간 가량 매일 꽃길과 돌길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사진촬영을 하는 생업 이외의 시간을 오롯이 이곳에서 보냈다.
암 투병 중에도 꽃샘길 가꾸다
그러던 중 그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신앙심 두터웠던 그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힘든 과정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꽃샘길이었다. 그는 다시 그곳에서 쓰레기를 줍고 꽃길 가꾸는 일을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그러기를 올해로 18년째다. 그가 병마와 싸워 이기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꽃샘길을 가꾸는 일에 더 애착을 가지게 됐고 이것은 그에게 아주 오래된 ‘습관’이 됐다. 늘 이곳에 와서 쓰레기를 치우고 흙길에 돌을 박아가며 평평하게 잘 조성하고, 자비를 들여 큰 나무와 작은 나무 밑 공간에 꽃씨를 뿌려 꽃밭을 만들었다.
이런 그의 무한한 노력 덕에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 남달라졌고 자치구의 지원도 생겼다. 그동안은 낙엽을 모아 퇴비로 사용했는데 퇴비와 봉사 인력을 지원해 주는가 하면 그가 만든 꽃샘길 이외에 분수대와 음용수대를 만들고 주민들이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넉넉하게 의자도 만들어 놓았다. 그가 만든 꽃샘길 인근으로 추가적인 조경사업도 이뤄져 더욱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꽃샘길을 만드는데 쓰이는 호미, 삽, 곡괭이 등 다양한 연장을 보관하는 자그마한 창고도 생겼다.
“예전에는 돌을 나르고 길을 만드는 나를 보고 좋은 일 한다며 여러 곳에 알리겠다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봉사하는 마음일 뿐’이라며 모두 사양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꽃샘길이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이 알려지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흔쾌히 제가 한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지하철에서 신문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거나 길거리의 쓰레기를 보면 언제든 먼저 줍습니다. 제가 꽃샘길 만들면서 더 힘들고 지저분한 것들도 다 치웠는데 뭘 못하랴 싶어요. 꽃샘길에서 배운 것이요, 제 몸에 새긴 습관들입니다.”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꽃밭을 만들고, 산 중턱까지 무거운 돌을 부지기수로 날라 와 돌길을 만든 김영산씨의 손등엔 영광의 굳은살이 박혀있다. 일 년이 멀다 않고 호미가 다 닳아버릴 만큼 산길을 고르고 흙길에 돌을 심으면서 생긴 두꺼운 손등 굳은살. 그는 늘 그것을 보면 병마와 싸우고 꽃샘길을 만들면서 희망을 얻고 인내하는 삶을 살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개인들이 많은데 저는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제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온다 해도 ‘아, 나는 참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람 있게 살고자 노력했고, 떳떳하게 살았으니까요.”
김영산 씨를 만나 꽃샘길을 돌아보는 내내 그는 쉴 사이 없이 쓰레기를 줍고 길가의 잡초를 뽑았다. 그는 이제 찾는 사람도 많아졌고 공간도 넓어져 혼자서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며 자치구나 시에서 관리하는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이런 애정 덕에 많은 주민들은 오동근린공원 안에 조성된 또 하나의 멋진 꽃동산인 ‘꽃샘길’의 감동을 늘 향유하고 있다. 울창한 여름이 지나고, 9~10월이면 이곳 ‘꽃샘길’이 더 멋있다며 꼭 한 번 다시 오라는 그의 초대가 마냥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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