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손길을 거쳐야 되는 혼의 산물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신성덕

발행일 2011.04.21. 00:00

수정일 2011.04.21. 00:00

조회 4,549

모든 것이 광속으로 바뀌고 있는 이 시대에 300여년 간 가업을 이어 가고 있는 고집쟁이들이 있다. 권무석 궁장과 그의 아들 권오정 궁장이수자이다. 이들은 안동권씨 추밀공파 34세손(권무석 궁장), 35세손(권오정 궁장이수자)으로 12~13대에 걸쳐 활을 만들고 있다.

활과의 인연은 아마 운명일 것이다. 전통 활의 명산지인 경북 예천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활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에는 가업을 잇고 있는 형 권영호 씨에게 활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현재 권무석 궁장은 서울무형문화재 23호이며 아들 권오정은 궁장이수자이다. 이들은 소 뿔을 재료로 한 각궁(角弓)을 만든다. 우리나라 전통 활은 정보화 시대와 양궁에 밀려 서서히 잊히고 있지만 권무석 궁장과 그 아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종로구 재동에 있는 무형문화재 교육장에서 이들을 만났다.

-활을 만들게 된 동기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또 증조할아버지도 모두 활을 만드셨으니 어린시절 활을 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21살 때 군에 가기 전까지 형 권영호의 공방에서 1년에 50개 정도를 제작했다. 제대 후에는 버스 운전기사와 공무원생활을 하며 활과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날 형이 “내 대에서 이제 활은 끝나는가보다”라고 탄식했고 그 소리가 좀처럼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조카들이 모두 각자의 길을 찾아 갔고 결국 내가 형의 뒤를 잇게 되었다.

-활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전통 활 각궁(角弓)을 만드는데는 물소 뿔, 소 힘줄, 대나무, 뽕나무, 자작나무 껍질, 민어부레풀 등 7가지 재료가 사용된다. 실제 작업 기간은 최소 2개월 정도 걸린다. 재료 준비와 가공 시간까지 하면 1년은 소요된다. 습도가 높으면 풀이 붙지 않아서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 해 중 4개월만 작업 할 수 있다.

-지금 까지 활을 몇 개나 만들었나?
▲1년에 평균 50∼70개 정도이고 이 중 20% 정도는 파기해야 한다. 30여년 간 만들었으니 몇 개인지 한번 헤아려보시라. 활 하나 만들려면 손이 1000번 이상 간다. 손만 대는 것이 아니라 온 정신과 혼을 불어넣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각궁이 된다.

-우리의 활이 '웰빙스포츠' 라고 하던데...
▲육군사관학교와 경찰대학교, 그리고 황학정 등에서 국궁 지도강사를 했다. 교육생들을 살펴보니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기초교육만 받았는데 눈이 좋아지거나 위장병, 비만, 고혈압 등을 고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전신운동이기 때문이다. 한 주에 2~3회 교육으로도 그런 효과가 난다. 황학정에서는 60~70세에 활을 잡은 사람들이 90세가 넘도록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국궁은 '웰빙스포츠'이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나?
▲한번은 해외언론에서 활 만드는 전 과정을 취재하겠다고 하더라. 전 과정은 2년 걸린다고 하니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 고유의 기술을 고스란히 해외에 알려줄 순 없어서 거절했다.

-서울의 활터는 몇 곳 남아 있나?
▲전국에 370곳이 있다. 서울에는 8곳이 남아 있다. 황학정, 석호정, 관악정, 영학정, 공항정, 살곶이정, 수락정, 화랑정이다.

- 우리 활의 우수성을 설명해 준다면?
▲우리는 워낙 활을 짤 쏘는 민족이다. 활 자체를 비교해봐도 우리 것이 월등하다. 미국에 가서 서양의 활들과 겨루어 보았다. 서양의 활 크기는 2m가 넘어도 화살이 겨우 100m 정도밖에 날아가지 못 한다. 그러나 우리 각궁은 크기는 작지만 보통 사람이 쏘아도 화살을 250m는 날려 보낸다. 우리 선수들이 양궁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각궁으로 다져진 민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권오정 이수자의 교육 사진

한편, 요즘 젊은사람 답지 않게 가업을 잇기로 결정한 권오정 이수자는 “아버지의 기술을 모두 전수 받기는 많이 힘들다. 활을 만드는 과정, 활 쏘기 등의 기능은 더욱 연마해야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각궁을 더욱 알리는데 힘을 보테고싶다. 대학에서 교양체육 시간에 골프, 수영 등 서양 운동만 가르칠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전통 국궁을 선택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권무석 궁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활 쏘기 시범을 보여준다. 곧게 서서 과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놓자 화살이 힘차게 날아가 과녁을 정확하게 뚫는다. 그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正心正己(정심정기)’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활터에 가면 볼 수 있는 이 글귀의 뜻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라이다. 바른 몸과 마음에서 나온 정기가 그가 만든 활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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