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바친 50년의 세월
admin
발행일 2010.08.04. 00:00
- 석공이라는 직함이 참 낯선데 언제 어떻게 이 일을 배우게 되었는가? 60년대 초, 6.25 이후 보리밥 먹기도 어려운 시절,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먹고 살기 위해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때는 하루하루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정말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는데, 어언 50년이 돼버렸다. - 문화재 기능자격 보유자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것인지, 언제 어떤 경위로 문화재 기능자격 보유자가 됐는지 궁금하다. 국가공인자격인 문화재기능 자격을 따야 허드렛일에서 벗어나 문화재 관련 일 같은 국가적인 복원이나 보수공사에 참여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익혀서 1968년도에 취득했다. 제297호 문화재기능 자격증이 재산목록 1호다. - 서울성곽 업무는 언제부터 하게 됐는가? 75년도에 서울성곽 복원을 시작했는데, 1차로 시작한 북악산부터 지금 현재까지 빠짐 없이 다 참여했다. 사람 몸은 장난감처럼 금방 부서지고 망가질 것 같지만, 이 작은 한 몸으로 참 많은 일을 해온 것 같다. 그 전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문화재 복원사업에 참여하여 집을 떠나있기 일쑤였다. - 집을 떠나 객지에서 보냈다는 얘기를 듣는 동안, 중학교 때 읽은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에 등장하는 석공 ‘아사달’이 생각났다. 아산 현충사, 부산 금정산성, 공주 공산성, 전주 박물관 등 지방 문화재 복원사업은 평균 3개월에서 6개월이고, 지금처럼 봉급을 통장으로 넣어줄 수 있는 여건도 아니어서, 일이 다 끝나면 직접 일당을 받아서 집에 가져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집사람과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가장으로서 미안하다. - 혹시 아들이 아버지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렇게 힘든 일을 하라고 하겠는가? 저기 일하고 있는 청년이 아들(강석주, 40)이다!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학교 다닐 때 가끔 아르바이트를 시켰더니, 그것이 계기가 돼 지금 10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를 닮아서인지 돌을 잘 다루고, 보다시피 체격도 건장하다. - 서울성곽 개축공사 당시 872명이 목숨을 잃었고, 공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중에도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혹시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만큼의 어려운 공사나 사고는 없었는지? 69년도에 남한산성 남문 보수공사를 하던 중 지렛대를 잘못 사용해 돌 파편 때문에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높은 산을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체력도 따라줘야 한다. - 혹시 지나치게 재촉받는 일들도 있었는지? 이 자리에 마침 이성호 감독과 김선욱 현장소장도 있는데(웃음)……. 계획한 일정 안에 일을 마치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선 날씨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장마철이나 동절기에는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한파로 돌이 얼었을 때 만지려다 동상이라도 걸리면 난감하게 된다. 행여 작업인부들의 건강이 나빠져 일을 하지 못할까봐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무조건 쉰다. 그러다 보니 자주 독촉도 받는다. 그렇다고 우리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국가적인 중요사업이기 때문에 서로 힘을 모아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 적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성을 반듯하게, 거의 직선으로 쌓는다는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돌의 모양과 색깔이 다른 이유가 ‘태조 5년에는 비교적 작은 석재를 이용해 돌을 쌓았고, 세종 4년에는 모가 둥글게 된 넓적하고 평평한 돌로 개축했고, 숙종 30년부터는 정방형으로 다듬은 석재로 벽돌 쌓듯이 빈틈없이 축조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지금 작업 중인 21세기 성곽에 쓰인 석재와 그 방법은 어떠한가? 지금 쌓고 있는 석재들은 포천에서 가져왔다. 건설현장에서는 수입석들을 많이 쓰고 있지만, 성곽만큼은 100% 국산이다. 아마 그 당시에는 적을 막기 위한 위급한 상황이어서 석재들을 외국에서 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문화재 복원 차원이기 때문에 주로 경기도에서 채석을 한다. 문화재청에서 요구하는 원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정교한 작업을 한다. 고향 시골집에서 울타리만 새로 둘러놓아도 골목이 훤했고 집도 돋보였다. 복원된 성곽길을 오르내리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예술은 솜씨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혼으로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일을 배우고 있는 아들에게도 장인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말한다.
- 며칠 전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뉴스를 들었는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국내외 전문가와 학자들을 초청해 '서울의 문화유산에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라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 적도 있는데, 서울성곽도 그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것 같은데, 반면에 자부심도 대단할 것 같다. 안 그래도 그 뉴스를 보고, 서울성곽도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가족들과 얘기 나눴다. 그렇게 된다면 20대부터 평생 몸을 던져 일해 온 보람이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아들과 같이 일하다 보니까, 그런 욕심이 더 생긴다. 기왕 시작한 일, 아들도 요즘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그런 3D 업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혼신을 다해 줬으면 좋겠다. - 지금 걷고 있는 이 성곽길 정말 멋스럽다. 주변에 피어있는 노란 달맞이꽃, 하얀 개망초, 하늘거리는 강아지풀까지도 다 특별하게 와 닿는다. 어린 아까시 나무도 참 많다. 요즘 여러 경로로 성곽답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심도 대단한 것 같은데 답사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성곽 복원공사가 하루속히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참 많다. 그러나 성곽 쌓기의 생명은 성벽이 안 무너지고 튼튼히 버티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졸속으로 서두르면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약간씩 들여쌓기도 하고 위치마다 성 쌓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급경사의 경우는 축대 쌓기처럼 내탁(內托)을 또 쌓아주기도 한다. 아까시 나무는 향기 좋은 꽃으로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성곽에는 아주 해롭다. 종로구청에서 매년 작업을 해주지만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버려 볼 때마다 안타깝다. 지금 작업 중인 인왕산 4단계 성곽 쌓기 공사현장은 일반인들 출입이 안 되는 곳이다. 가끔 새로 쌓은 성곽 옥개석(屋蓋石: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 위를 밟고 작업장에 들이닥친 사람들도 있어서 위험하고 황당하다. 금지구역을 침범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내년에 마지막 가장 난공사인 5단계를 마무리하면 2012년에는 개방이 된다. 그 때까지 성곽 답사자들이 참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곽길을 일반 공원 산책이나 산행 하듯이 그냥 가볍게 지나지 않고, 역사와 우리 같은 석공들의 숨결도 느껴줬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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