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면 다시 깨끗해지는 빨래처럼

admin

발행일 2010.06.16. 00:00

수정일 2010.06.16. 00:00

조회 2,878

바쁜 일상 속에서 너무도 당연해진 ‘서울살이’. 그러나 모두 잠시 잊고 있을 뿐, ‘서울’은 모든 사람들에겐 여전히 빛나는 ‘꿈’이고 ‘희망’의 공간이다. 그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또 시골에서 올라온 처자나 먼 이국에서 온 청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다양한 인간군상의 서울살이를 담아낸 뮤지컬이 있다. 바로 얼마 전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극본상과 작사작곡상을 당당히 수상한 작품 '빨래'다. 다민족 사회라는 무거운 이슈를 예술성은 물론 대중성과 잘 버무려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해외 뮤지컬 관계자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경사가 겹친 '빨래'의 추민주 연출가를 만났다.

빨래, 그리고 서울살이

“99년 처음 서울에 살면서 ‘서울살이’의 어려움에 대해서 느끼기 시작했어요.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차이가 많았죠.” 연출가 추민주는 1999년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연극공부를 위해서 상경했다.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봉천동이었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좋지 못했지만, 서울에 올라온 얼마간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당장에라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그녀는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알게 된다.

“친구와 둘이서 자취를 했는데, 서울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서울생활은 늘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하루 동안의 관찰을 친구와 공유했다. ‘사당에서 잠시 한 눈을 팔면 과천으로 간다는 것’, ‘서울사람들은 영어를 많이 쓰는데, 병따개를 오프너라고 한다는 것’,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서울사람이 되었다고.

“어느 날 우연히 건너편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게 작품의 결정적인 모티브가 됐죠.” 그들은 몽골 사람들로 서너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서울살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녀 역시 지방에서 올라와 비슷한 처지라 그들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힘든 서울 생활이지만, 빨면 다시 깨끗해지는 빨래처럼 매일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서울은 말 그대로 특별한 곳이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오고, 그 꿈들이 이뤄질 수 있는 곳. 그런데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언젠가부터 자꾸 마주치게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이 바로 그들이죠. 뮤지컬 ‘빨래’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강원도에서 온 ‘나영이’, 몽고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 장애아를 키우는 ‘할머니’, 기구한 인생의 ‘나영엄마’ 등이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극을 돋보이게 한다. 그녀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서울이 ‘특별’한 것은 아닌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올리기도 쉽지 않았지만, 관객과 만나기가 더 힘들었던 작품

“원래는 2003년 12월 졸업작품으로 처음 올렸어요. 기존 뮤지컬과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죠.” 추민주 연출가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랑 같은 주제를 가지고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녀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이주노동자라는 우리 시대의 껄끄러운 소재를 사용하기에 사회적인 연극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선배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오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공연 자체를 올리기가 힘들었고, 다음에는 관객들과 소통이 쉽지 않았어요. 수없이 대본을 고치고, 음악도 새로 만들었죠.” 그녀는 이듬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 작품을 올렸다. 필요한 비용은 참가한 사람들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공동 조달했다. 그 사이 우여곡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다행히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입소문을 통해서 관객이 모여들었다. 여기에 힘입어 2005년에는 국립극장에서 공연했고, 2006년부터는 상설공연을 진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과 꾸준히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일까. 다행히 2008년에는 후원자를 만나 중간에 끊기지 않고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몽골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간 적도 있고,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어요.” 올해로 4년 정도 공연을 하는 동안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한 번은 극중의 주인공인 ‘솔롱고’와 같은 몽고 사람들이 단체관람을 한 적도 있다. 중간에 구타를 당하는 장면 때문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한 번은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라면서 ‘자신의 소원도 어머니보다 빨리 죽는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때로는 배우들 때문에 난감한 적도 있었다. 멜로디가 전체적으로 비슷하다보니,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엉뚱한 노래를 불러서 배우는 물론 모두를 당황하게 한 적도 있고, 배경이 많이 바뀌다보니 겨울인데 여름 러닝셔츠 바람에 겨울모자만을 쓰고 무대에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공연이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방공연을 갈 때면 배우 10여 명에 40여 명이 스탭이에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만들어내는 예술인 거죠.” 추민주 연출가는 공연을 할 때마다 고마운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그건 연극, 뮤지컬이라는 것이 절대 혼자만 할 수 없는 예술분야이기 때문이다. 연극에 나오는 배우는 더블캐스팅을 포함해 10명 안팎이지만, 그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40명이 넘는다. 연출, 조연출은 물론이고, 무대장치, 조명, 음악 등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게 바로 연극의 매력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창작 뮤지컬 활성화 필요

“사실 뮤지컬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그건 대부분의 작품이 비싼 라이센스 비용을 물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더욱 ‘빨래’와 같은 창작뮤지컬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뮤지컬을 한 편 보려면 높은 가격에 고개가 저어지게 마련이다. 그에 반해서 ‘빨래’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가격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소극장 공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창작뮤지컬인 이유가 크다. 국내에서 공연되는 많은 뮤지컬 공연은 비싼 라이선스를 물고 수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기획사에서는 인기 연예인을 내세운 스타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없고, 수익성 저하로 인해서 관객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킬 수밖에 없다. 거기에 우리나라 공연문화의 한계가 그대로 숨어 있다.

“청소년들이나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프리 티켓'을 발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뮤지컬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객층을 두텁게 할 필요가 있다. 젊은 층의 수요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청소년들이나 어르신들이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하철 패스처럼 '프리 티켓'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무조건적인 단체관람보다는 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 부담 없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스스로 감수성을 키워나가고, 다시 그들이 문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현재 그녀는 뮤지컬 ‘빨래’ 외에도 내년쯤 선보일 2~3편의 연극 대본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실내 축구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축구’를 소재로 한 뮤지컬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첫 작품의 성공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더욱 새로워진 내일을 ‘빨래’하고 있는 추민주 연출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해본다.

시민기자/김정상
amorfati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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