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4대 적은 물, 불, 벌레 그리고 `인간`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7.25. 00:00
흰 좀벌레 한 마리가 나의 <이소경(離騷經)>에서 '추국(秋菊), 목란(木蘭), 강리(江籬), 게거(揭車)' 등의 글자를 갉아먹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서 잡아 죽이려 했는데 조금 지나자 그 벌레가 향기로운 풀만 갉아먹은 것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특이한 향내가 그 벌레의 머리와 수염에 넘쳐나는지를 조사하고 싶어서 아이를 사서 반나절동안 집안을 대대적으로 수색하게 했다. 갑자기 좀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이 보여 손으로 잡으려 했는데 빠르기가 흐르는 물과 같아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 그저 은빛가루만 번쩍이며 종이에 떨어뜨릴 뿐, 좀벌레는 끝내 나를 저버렸다.
--이덕무 |
[서울톡톡] 글이 너무 아름다워, 황홀감에 젖은 채 한참을 멍했다. 친구들에게서 간서치(看書癡), 즉 책만 읽는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이덕무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게 그려진다.
조선 영조 때 불운한 서자로 태어난 이덕무에게 책은 보물이었다. 하루도 손에서 놓은 날이 없었으며, 책을 사랑하다 못해 책에 미쳐버렸다. 이미 그 자신이 '책벌레'가 되어버린 이덕무가 책을 갉아먹은 좀벌레를 잡겠다고 날뛴다. 그것도 굴원의 《초사(楚詞)》 중 대표작으로 '경전(經)'의 차원으로까지 숭앙되었던 <이소>를 갉아버렸으니 벌레라도 용서치 못할 터이다.
그런데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꽃을 씹는다'는 대목으로 유명한 <이소> 중에서도 벌레는 용케 향기로운 뜻을 품은 글자들만 갉아먹었다. 신통타! 이제 그는 분노 대신 요 책 좀 읽을 줄 아는 벌레를 잡아다 살펴보고 싶다. 더듬이부터 꽁지까지 모조리 향기로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 아이까지 사서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하지만 가까스로 잡는 순간 벌레는 은빛가루만 남긴 채 어디론가 달아나고, 그는 허망해진다. 글의 향기가 아무리 진진해도 남은 것은 흩뿌려진 가루뿐이다. 책을 모두 씹어 삼켜도 그 책이 되어 살 수는 없다!
책의 4대 적(敵)은 물, 불, 벌레 그리고 인간이라고 일컬어진다.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물에 젖어 찢어진 책, 화재에 불타 사라진 책, 벌레가 슬어 바스러져버린 책......책들은 그렇게 시간 속으로 사라져간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적은 다른 적들과 적이 다르다. 물과 불과 벌레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해라면 인간은 고스란히 의도된, 그래서 더욱 악독한 적이다. 시인 하이네는 "책을 불태운 자리에서 마침내는 사람을 불태울 것이다"라고 했던가. 분서(焚書), 그리고 금서(禁書)의 시도는 단순히 책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학문, 지식, 자유, 상상력......인간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불태우거나 금지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책을 외면하는 시절이다. 책 속의 향기로운 지혜 따윈 벌레에게나 줘버리고, 검색으로 당장에 찾아낸 얄팍한 지식에 꺼둘린다. 하지만 지식은 결코 지혜처럼 사랑옵지 않다. 그 터럭 끝까지 뻗힌 향기를 찾기 위해 몸을 낮추고 바닥을 두리번거릴 리 없기 때문이다. 경조부박하기가 깃털 같은 시대, 선인의 도저한 책 사랑만이 은빛가루처럼 번쩍인다. 책이라는 귀물(貴物) 혹은 귀물(鬼物)은 결국 우리를 저버리고야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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