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아이디어의 고수들, 정체를 밝히다

admin

발행일 2010.06.09. 00:00

수정일 2010.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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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는 시민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제안 공간이 있다. '천만상상 오아시스(千萬想像 Oasis, http://oasis.seoul.go.kr/)'가 바로 그곳으로, 인터넷을 통해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 누구나가 참여해 시정에 대해서 토론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줄임말 '천상오'가 이제는 애칭처럼 되어버린 '천만상상 오아시스'는 시민들의 끊임없는 상상 영양분으로 자리잡으면서, 서울을 더욱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고 있다. 아이디어의 고수라 자부하는 수많은 제안자들 사이에서 얼마 전 서울창의상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주인공 2인방을 만났다.

일상의 작은 배려, 소중한 아이디어가 되다

"작년 여름 지하철을 탈 일이 있었는데, 자동발매기에 한글과 영어밖에 없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많은 외국인이 일본, 중국인인데 그들의 언어로 된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서울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박우진(40) 씨는 작년 6월 지하철 승차권 자동발매기가 새로 도입되었을 때 한참을 신나게 둘러보다가 우리말과 영어 안내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있으면 놀러올 일본인 친구를 떠올렸다. 그는 서울 관광객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인과 중국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제안을 했다.

"천상오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 제안했는데, 솔직히 제일 소박하다고 여기던 것이 상을 받았습니다. 좀 어리둥절했죠." 그는 제안을 하면서도 아이디어가 선택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단다. 단지 대여섯 줄 안팎으로 불편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개선해달라고 요청하는 정도였기 때문. 더구나 천상오에 올라오는 많은 제안들이 참신하고 완성도가 높았기에 기대를 안했었다고 한다. 그의 지나친 겸손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는 채택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영예의 서울창의상 우수상까지 받게 되었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는 '아이디어'

"저는 '아이디어 뱅크'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필요한 것들이 보이고, 그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떠오른 것뿐입니다. 채택해 주신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예요." 박우진 씨는 거대하고 화려한 것만이 최고의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수상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다만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표현을 했다는 차이는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좋은 의견은 정책에 반영되는 걸 보면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 흐뭇함을 느낍니다.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평가절하하여 그냥 넘기지 말고 꼭 제안을 등록해 보세요! 작아보이던 상상이 커다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가 천상오에 자주 들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들 중에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도 있고, 정책에 반영되었으면 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들도 많다. 그에게 천상오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고, 댓글을 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느끼게 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가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서는 지독한 방관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서울시 어린이 기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졌고 어느덧 저도 자극을 받았죠."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박우진 씨 역시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서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살고 있는 곳, 또는 일을 하고 있는 곳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일상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장소일 뿐인 서울이, 아들에게는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고향'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달라졌다. 경쟁 아닌 경쟁이 붙어서 아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이서울뉴스 시민기자도 되고, 천상오에 제안도 하게 되었다 한다.

"이런 시도는 결국은 저의 영역을 좀 더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회사경영에만 관심을 쏟았다면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서울 시정을 바라보면서 회사 경영 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무역업은 물론,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상사중재인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서울이란 고향에서 '기부천사' 된 아버지

"네, 덕분에 상금도 받았죠. 아이들이 '아버지는 기부천사'라고 외치는 통에 전액 기부하기로 하고, 어떤 분야에 힘을 보탤까 살펴보고 있습니다." 박우진 씨는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상금을 받게 된다면,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모두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200만원의 거금이 통장에 찍힌 것을 보고는 솔직히 조금은 욕심이 났다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망설임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들이 와서 '아빠 상금 들어왔어요?'라고 물었다. 아이는 '아빠 저번에 그거 기부한다고 했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빠는 기부천사'라고 외치면서 만세를 부르던 아들과 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박우진 씨는 잠시나마 욕심이 났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서울시에서 받은 상금인 만큼 조금이나마 서울시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고 궁리 중이다. 현재는 좀 멀긴 하지만 서울시가 함께 하는 동절기 불우이웃돕기 행사인 '따뜻한 겨울 보내기 사업'에 전액을 기부할 계획이다. 채택과 수상이라는 명예만으로도 과분한데 아이들로부터 김장훈 씨 취급까지 받았으니 충분히 행복하다고.

"서울은 제게 애향심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이제까지 애향심은 지방 출신자들만의 전유물이었는지 모르지만 서울은 그에게 한없이 애향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되었다며 웃는다. 서울에 대한 관심이 한때는 그의 눈에 회색으로 비치던 서울을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물론 이는 서울 시민 어느 누구라도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물일 것이라고.


창의 행정에 반하다

"전공이 행정학이다 보니 자연스레 서울시의 시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다가 천상오를 알게 됐고 길을 가면서 불편했던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올리기 시작했죠."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있는 라병훈(23) 씨는 애초에 서울시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다. 하지만 단순히 행정학도여서가 아니라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그에게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매일 접속하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은 이제 오랜 습관이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다. 물론 그런 소망은 천상오와 조우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기 시작했다.

"120 다산콜센터는 꽤 유용하지만,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를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에 서울창의상 장려상을 받은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제안은 현재 정책에 반영돼 공항에서 외국인들에게 다산120을 소개하는 홍보물을 비치하고 나눠주는 등의 방법으로 실행되고 있다.

"제 경우 아이디어는 주변 일상생활을 관찰하면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뉴스, 다큐, 신문, 책 등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살피면서 즐거운 상상이 시작되는 거죠." 라병훈 씨는 학생이라서 경험도 적고, 접할 수 있는 부분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각종 대중매체나 책들을 관심 있게 보는 편이고, 이런 것들이 아이디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걸 불편해할까를 생각하다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고. "아이디어는 '필요'라기보다는 '불편'에서 시작해요. 불편한 것을 개선하려고 하다 보면,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것이죠."

천상오에서 만난 기분 좋은 사람들

"하지만 제가 좀 더 열심히 천상오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오프라인 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딱딱한 회의가 아니라 자유롭고 존중받는 듯한 느낌이 좋았어요. 거기에서 만난 공무원 분들도 무척이나 친절해서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상상실현회의에 처음 참가한 때를 잊지 못한다. 책상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이 있었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스포츠를 보는 듯이 아이디어들이 경합을 벌였고, 그것들이 참가한 패널들에 의해서 점수가 매겨졌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과정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는 한동안 이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렸다.

"그리고 매일 아이디어를 올리면서 다시 실현회의에 참석하기를 바랬죠.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최종 심사에 올랐던, 자전거를 쉽게 빌리고 쉽게 반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는 이미 실행준비 중이라서 탈락됐고, 그밖에도 많은 아이디어들도 실행중이거나, 준비 중이어서 선택되지 못했죠." 라병훈 씨는 다시 한번 회의에 참석하고자 매일 하나의 아이디어를 올렸다. 그러나 그건 처음만큼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재작년 서울창의상 우수상에 이어, 올해는 장려상을 받게 됐다. 천상오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유명 인사다.

"'천상오는 공무원들과 일반시민들의 아이디어들이 경쟁하는 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올라오고, 그것들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지고 있죠. 이곳에 와보면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공무원들이 관료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라병훈 씨가 천상오를 자주 찾는 이유는 그곳이 아이디어의 격전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토론을 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들이 생겨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무척이나 가슴 뿌듯한 광경이다. 행정학을 공부하는 라병훈 씨에게는 더욱 그렇다. (참고로 지난 2009년 2월에는 코넬대, 조지아대, 뉴욕주립대, 워싱턴대 등 14개 미국 행정대학원 교수진이 서울을 방문해 천만상상 오아시스 실현회의에 참석했고, 서울시의 창의시정 현장과 성과를 직접 살펴본 뒤 MPA(행정학 석사) 과정에 ‘서울시정 : 케이스 스터디’ 교과목을 개설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했다고 누구도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즐기고 승자가 되는 게임과 같은 것이다. 일단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더욱이 채택되어 시정에 반영되면 당연히 자기만족이 커서 좋다. "그런데 많은 제안을 하면서 느낀 것은 복잡하고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선택되기 힘들다는 겁니다. 일상생활에 닿아있으면서도 실행하기 쉽고, 그 혜택을 많은 사람이 누리는 것이라면 쉽게 선택되는 것 같아요." 라병훈 씨가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제출하다보니 발견한 일정한 패턴이다. 우선은 많은 예산이 들어가면 선택될 확률이 낮아진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동떨어진 내용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더욱 채택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물론 반드시 채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본적인 방법들을 알면 효과적인 제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 하나로 자랑스러운 아들, 멋진 남자친구가 되다

"무엇보다도 좋은 건 어머니가 회의에 참석하는 아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거예요. 시청 가서 회의에 참석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대단하게 보이나 봅니다. 주변에 우리 아들이 시청 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고 말씀하시곤 하죠. 창피하니 그만 하시라고 해두요.(웃음)"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한편으로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고 인정해주는 서울시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앞으로 계획은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시 창의담당관에서 일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웃음).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야겠죠." 라병훈 씨는 앞으로 서울시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 서울시청 남산별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몇 년 후에는 서울시 창의담당관에서 일을 하고 싶다. 그건 전공 때문이기도 하지만, 즐거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의미 있는 작업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시민기자/김정상
amorfati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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