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놀이가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다면!

admin

발행일 2010.05.10. 00:00

수정일 2010.05.10. 00:00

조회 3,718

노리단은 국내 최초의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이다. 2004년 창단된 이래 내 몸, 자연, 문명의 재활용을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공연 및 워크숍 등을 펼쳐 보임으로써 국내외에서 그 창의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포스코 광고 모델로도 널리 잘 알려졌으며,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로 2010 홍콩 설 축제에 참가하였으며, 최근에는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TV프로그램에서 조권·가인 커플과 함께 홍콩에서 공연해 화제가 되었던 노리단. 이번 주 서울인 인터뷰에서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행하면서, 2009년 일자리 창출 유공자 포상 노동부장관상, 서울시 환경상 자원재활용분야 최우수상, 그리고 2009년 피터 드러커 혁신상 사회적 기업가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을 거둔 (주)노리단의 김종휘 단장을 만났다.

“신도림역 2번 출구로 나와 대림역 방향으로 10여 분쯤 걸어오시다 보면, 지하철 2호선 고가도로 밑에 노란색 컨테이너가 보일 거예요.” ‘오름’이라는 별명을 지닌 홍보담당자의 설명을 따라 걷다보니 ‘과연 이런 곳에 사무실이 있을까?’ 싶은 공간에 거짓말처럼 ‘노리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꿈을 지닌 이들이 하나둘 모여 사회적 일자리와 이윤을 창출해가는 꿈의 제조공간. 그곳에 들어서자 김종휘 단장이 명함을 건네주며 인사를 청해왔다. 명함 역시 공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예사롭지 않다. 어머니의 등에 업힌 어린 시절 흑백사진의 명함이 주는 친밀감이라니…….

[왜 별명으로 부르는지 묻는다면]

“별명으로 불러야 하느냐고요? 아뇨,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시면 돼요. 여기에서는 다들 저를 휘라고 불러요. 호칭이라는 것에는 나이, 성별, 지위, 직책, 고정관념, 경계 그런 것들이 담겨 있잖아요. 노리단에서는 그런 호칭의 문제점을 벗고 서로에게 수평적으로 다가서려고 별명으로 부르는 거죠. 물론 그게 싫은 사람에게 강요는 안 해요. 말씀하신 피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의 사례처럼 저희들만의 용어 사용으로 다른 사람들과 단절을 빚을 필요는 없으니, 밖에 나가면 또 원래 불리던 대로 불리면 되는 거구요.”

[이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아, 사회적 기업이요? 사실 저희가 처음부터 ‘우리는 사회적 기업으로 출발하자’라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사회에 혜택을 제공하면서 건강한 이윤을 생산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막상 우리의 역할모델이 되어줄 만한 선행 사례가 없었던 거죠.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도 지역마다, 국가마다, 그 역사와 기호 그리고 처한 상황 등에 따라 모두 제각각 다르게 적용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청년 실업 문제와 환경에 대한 각성 그리고 문화 예술 보급이라는 이 사회의 문제점을 우리의 사회에 맞는 방식으로 적용해 본 거죠. 그러니까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미션과 경제적 미션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공연하고 교육하고 노동하고 - 노리단의 성공]

“못쓰고 망가진 산업폐자재로 공연을 하는 등 비주류적 요소를 두루 갖춘 노리단의 성공은 드라마틱한 면이 있지요. 노리단은 시작부터 준비된 출발을 한 게 아니었어요. ‘어제 생긴 예술’이라는 노리단의 초창기 명칭도 오래 고민해서 생겨난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죠. 그래서 출발 당시 저희는 [난타]나 [점프]처럼 프로화된 기획을 갖추지도 못했고, 순수예술 단체처럼 탁월한 예술세계를 구현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벤트 집단처럼 시장의 입맛에 맞춰줄 수도 없었던 여러 어려움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리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요. 먼저 내부적인 요인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열정이 분명한 이들이 한데 모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단원들은 배우이면서 교사이자 동시에 장인이죠. 함께 무대에 서고, 워크숍 지도자로서 활동하며, 직접 제작하는 노동의 과정들을 순환함으로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가능성을 엿보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자기 고용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가장 잘하는 사람을 좇으려하지 않고 제각각 자신이 즐기고 있는 모습에서 성취감을 얻고 또 이들이 한데 어울려 각자의 차이를 통해 도리어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 거죠. 상업적인 재미도, 예술적인 완성도도, 이벤트 성격도 강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열정과 조화로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신난다’, ‘재미있다’, ‘창의적이다’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지요.

두 번째 성공요인이라면 뚜렷한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는 거죠.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해봤다’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분야에 다 걸어 보자라는 목표치가 분명했어요. 당장 좀 급하다고 해서 다른 일들과 병행하다가 실패하면 정말 이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저희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 실패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일에만 매진해보자는 공감대가 서로에게 형성되어 있었어요.

외부적 성공 지원 요인이라면 때마침 200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들 수 있겠네요. 산업폐기물 활용이라는 영역에서 친환경적 요인 그리고 대안 놀이 문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관심 등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각국 문화예술 창작 퍼포먼스 그룹들과는]

“초창기 노리단은 호주 생태주의 퍼포먼스 그룹 ‘허법’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허법의 스티브 랑턴은 다양한 전통악기들을 체험할 수 있는 인도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고물 수집하는 것을 보며 자랐고, 이후 호주로 돌아가 숲속에서 생활하며 마오리 원주민들의 소외된 문화를 발굴해주던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지요. 노리단은 그에게서 버려지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Junk Art'를 향유하는 법을 배웠고, 이를 제각각 모양과 용도에 맞게 미학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허법이 스티브 랑턴의 개인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면, 노리단은 공동체적인 공연들을 진행해 나가면서 고객들의 반응과 이에 걸맞는 우리만의 미학적 색채를 추구한다는 점이 다르지요.

이제는 노리단이 글로벌한 영역에서 공연뿐만 아니라 노리단의 교육인프라를 보급하며 각국의 문화예술 창작 퍼포먼스 그룹들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아시아 각국 노리단 창단을 지원하며 노리단의 철학과 정신 그리고 공연 방식들을 전하고 있고, 국내 각 지역 노리단의 현지화 등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상력은 힘이 세다 - 노리단의 성공 그리고 제 2의 도약]

“현재 노리단의 성공이 현실세계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하는 노리단의 고정화를 불러올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저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받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어요. 한 예로 한 달 전 이곳으로 이사 온 것도 자극요소 중 하나인 셈이지요. 이곳 신도림 지하철 교각 아래 공간은 하루에 471회나 기차가 지나가 몹시 시끄럽고, 전자파도 흐르는 버려진 터전이지만, 이 공간 하나하나를 우리 단원들이 뚝딱뚝딱 함께 작업해서 꾸며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꽃피우고 있지요. 이곳에서 구로지역과 주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 사업인 '구로는 예술대학'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금년 상반기까지 조직 내부 개혁을 통해 노리단의 교육과 디자인 사업 분야의 새 브랜드인 ‘달록 dalog'를 탄생시킨 것도 또 하나의 자극요소이구요. 노리단은 늘 이렇게 새로운 자극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예술 교육의 가능성 그리고]

저희 노리단은 전문가들의 드림팀이 아닙니다. 저희는 신입단원이라도 최대한 빨리 무대에 세웁니다. 그 후 제 무대를 모니터링하며 자신이 그저 잘하는 단원을 따라하거나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의식하고 있다면, 자신이 직접 그것을 깨닫고 자신만의 웃음을 스스로 찾아나가도록 하는 거죠. 이 같은 과정에서 그들은 개인적 성취감과 공동체적 만족감을 배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는 저희 같은 구조가 아니잖습니까? 저희가 잘하는 친구들만을 따라하려는 학교 현실을 개선해보겠다는 것은 만용일 수 있지요.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하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을 보급시키겠다는 시도 자체가 또 하나의 굴레가 될 수도 있구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처럼 혁신적인 공연, 창의력을 심어주는 워크숍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각 지역마다 제2, 제3의 노리단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현지의 청소년들의 삶에 에너지를 심어주는 부분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아무나(Anybody)가 아닌 특별한 그 누군가(Somebody)가 되라던 피터 드러커의 권유처럼, 신도림역 교각 아래 노리단의 노란 컨테이너에는 아무나 하지 않을 일을 하는 그 누군가가 오늘도 또 다른 내일을 꿈꾸고 있다.

시민기자/안혜련
gardencir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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