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왜 무거워지나?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5.08. 00:00

수정일 2014.05.08. 00:00

조회 1,674

드라마

[서울톡톡] 한국 드라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존 드라마는 거의 다 멜로였다.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는 불륜멜로를 주로 다뤘고, 주중 미니시리즈는 젊은층의 멜로 특히 재벌과 신데렐라의 멜로를 주로 다뤘었다. 가끔 전문직 드라마가 나와도 결국 러브라인이 강조되기마련이어서, '한국에서 의학드라마를 하면 병원에서 연애하고, 수사드라마를 하면 경찰서에서 연애하고, 정치드라마를 하면 국회에서 연애한다'는 자조가 나왔었다. 그런데 최근 멜로적 설정이 배제되거나 매우 약화된 작품들이 잇따라 나왔다. 이전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한때 방송 콘텐츠 파워지수 1위에까지 올랐던 <신의 선물-14일>은 주인공이 납치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내용이었다. <쓰리데이즈>는 대통령 암살범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골든크로스>는 여동생의 살인범을 추적하는 오빠의 이야기다. 이런 드라마들은 멜로적 성격이 강했던 기존 한국드라마와 구분해 '장르드라마'라고 불린다.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장르적 설정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왜 이런 작품들이 일제히 등장하게 된 걸까?

우리 드라마의 자기복제와 획일성에 대한 비난이 워낙 거셌다. 비슷비슷한 설정의 불륜, 신데렐라 멜로가 이어지며 결국 한국드라마가 자멸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특히 미국드라마의 장르물에 익숙했던 젊은 네티즌이 한국드라마를 앞장서서 성토했는데, 드라마 산업계 젊은 인재들의 심정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한국드라마가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라는 데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사회의 기득권 구조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워낙 커져서 대중문화가 그것을 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데에 있다. '사랑타령'만 할 만큼 호시절이 아닌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새롭게 등장하는 한국형 장르물들의 성격을 규정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성과 무거움이다.

일본엔 그전부터 장르물이 발달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있는데, 대체로 개인들간의 문제를 다를 때가 많다. 누군가가 살인을 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인 것이고, 주인공이 치밀한 추리를 통해 그 사람을 잡으면 사태는 그것으로 해결된다. 작품은 치밀한 수사과정이 주는 긴장감과 미스터리 풀이의 쾌감에 집중한다.

반면에 한국형 장르물에선 살인범 개인의 성격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한 사람을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범죄를 쫓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드러나고, 범죄의 실체를 풀어내도 미스터리가 해결됐다는 쾌감보다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로 인한 답답함이 시청자를 감싼다. 그래서 한국형 장르물은 지독히도 무거운 사회물의 성격을 띠게 된다.

<신의 선물-14일>은 단순한 아동납치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시작됐지만 결국 대통령 일가의 비리와 그것을 감추려는 권력기관의 압력이 드러나는 것으로 끝났다. <쓰리데이즈>에선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어 돈을 벌려는 재벌, 정당대표, 고위 공무원 등의 음모가 그려졌다. <골든크로스>에선 한국을 움직이는 최상층 권력자들이 작당해 살인을 숨기고 은행을 팔아넘기는 설정이 그려진다.

한국형 장르물이 이렇게 무거운 사회드라마가 된 것은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도 확인된 우리 사회 거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해수부 마피아'라는 말이 떠오르며 상층부가 한 통속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짬짜미 사회'라는 것이 드러났는데, 장르물에서도 권력자들이 한 통속으로 작당해 국민을 속이고 이권을 챙긴다는 설정이 반복된다.

단순한 사건 같았지만 알고 보니 그 배후에 거대한 실체가 있다는 설정은 음모론의 사고방식과 일치한다. 음모론은 언제나 배후를 의심하게 마련인데, 요즘 인터넷에 만연하고 있다. 그러한 사회분위기가 결국 드라마에 반영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는 원래부터 컸던 분노와 불신을 더욱 키웠다. 이 상처가 언제 회복될지 가늠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 장르드라마는 앞으로도 무거운 사회물의 성격을 띠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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