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이들의 영원한 안식처
admin
발행일 2010.01.28. 00:00
북한산에 다시 올랐다. 수없이 오르고 또 올라 20개가 넘는 등산로마다 안 간 곳이 없는 것 같건만, 매번 갈 때마다 비경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곤 한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 숨가쁘게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산마루. 바위와 벼랑 사이 수풀을 보면 그 속에 오랜 산장이 하나 있다. 아직 눈이 쌓인 산장은 한없이 고요한 매력을 가진 무릉도원이다. 인수의 거대한 화강암 암벽을 곁에 두고 있는 그곳은 또한 이영구 씨의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영구 씨는 아름다운 산수와 더불어 심신을 닦고 순화하는 심성으로 3대째 산장을 지키는 산사나이다. 산장의 세월을 말해주듯 이끼 낀 선돌의 모습이 펼쳐 있고, 집터 근처 양지 바른 곳에는 삽살이가 졸고 있다. 오늘도 산장지기는 80년 평생을 함께 한 북한산 자락을 매만지며 살아간다. 산장지기에게는 정년이 없다. 그 옛날 등짐을 지고 우이동 입구에서부터 져날랐듯이 아직도 주 1, 2회는 40kg의 생필품을 1시간 30분 정도 나르고 있다.
등불 밝힐 기름이 없던 시절, 겨울이면 눈이 반사되는 달빛에 의지해 살았다.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등에 업고 우이동 병원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지금은 이승을 떠나셨지만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는 것이 효행이라 생각하고 일찍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도를 한다. 눈 덮인 산장에는 잔치국수와 두부요리가 일품이다. 이곳에서 산객들은 손님 또는 친구가 되어 머물다 떠나간다. 등산객들은 격없고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구척단신의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주말에는 8만여 명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산장. 산장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간 산악인들은 부지기수다. 산장의 거실은 산(山) 사람들의 담소의 장이며, 오래 못 만난 친구의 손을 잡고 우정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북한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오르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영구 씨가 거기 있기에 산을 타는 이들은 그곳을 안식처로 떠올리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산장지기답게 가장 좋은 기억을 꼽으라면 그건 단연 산과 관련된 것들이다. 인수봉 C코스를 자일과 홀드로 붙던 시절, 한국산악회 등반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한일 합동 등반으로 3,000m 넘는 고산준봉인 후지와 야리아다께를 종주등반 하던 일, 지리산 뱀사골에서 경남 진주까지 2월 겨울산행을 14시간 50분에 종주하던 기억들, 아마 이것이 지금 그와 함께 건강을 유지하는 보탬의 기회가 된 것 같다. 병들어 가는 자연을 살리고자 가꾸는 일에 앞장을 서서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다.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마음 아파 조난구조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계곡 암벽을 타는 암벽 등반가를 위해 새벽을 준비하던 때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한 편의 드라마를 써도 되겠다고 할 정도로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인간이기에 거짓 없는 자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늘도 이곳 백운 산장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만경대 800m, 인수봉 804m, 백운대 836m를 병풍처럼 두르고 앉은 산장 툇마루에는 가을의 결실인 온갖 나물들이 짚타래에 묶여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산장 세월의 잔상을 채색한다. 날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면 밥짓는 냄새가 구수한 부엌에는 삶의 하루가 시작된다. 산의 꿋꿋한 기상을 배우고 세수한 물로 발도 씻고 걸레 빨고 화초에 물도 주며 물의 공덕을 느낀다. 그는 북한산 백운대에서 오늘도 발 아래, 구름 아래, 서울 도심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를 안 지 벌써 40년이 다 되어간다. 70년대 이영구 씨와 함께 102번 오른 기록의 등산일지를 매만지며 세월의 무상함을 돌이켜 본다. 그가 더욱 건강하게 오래도록 산장 지킴이로 남도록 그의 거친 손을 매만지며 인사를 건네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설경과 산세를 촬영하느라 어깨의 배낭과 카메라는 점점 무거워지고 힘은 들지만, 한 백발 산지기의 인생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산길을 재촉한다. 시민기자/이종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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