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들아, 미안하다!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4.22. 00:00

수정일 2014.04.22. 00:00

조회 1,756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 시민들이 적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기원글

[서울톡톡]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SNS를 통해 온갖 루머가 퍼져나갔다. 주로 생존자들이 배 안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정부가 늑장대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민간 잠수부를 사칭하며 방송 인터뷰에 나와, 정부가 민간 잠수부의 구조 활동을 막고 있다는 허위주장을 한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런 주장에도 인터넷은 뜨겁게 반응했다. 가수 이정이 연예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정부에 대해 격한 비난을 한 것에 대해서도 네티즌의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왜 일어나는 걸까?

세월호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선장 이하 선박직 승무원들의 전원 탈출 소식이 국민의 상처를 건드렸다. 임진왜란 땐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한국전쟁 때는 대통령이 서울시민에게 안심하라고 하고는 한강다리를 끊고 서울을 이탈했다. 외환위기 때 서민들은 금모으기를 하며 나라살리기에 동참했지만 그후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가난해졌다.

또 당시 좌초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다 함께 희생해 회사를 살리자며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등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일반직원들만 추락하고 오너와 경영자들의 소득은 더 올라갔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한국인에겐 버려졌다는 상처, 사회지도층이 서민을 책임져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생겼다. 이번에 배가 위험에 처하자 선장이 먼저 배를 버리고 이탈한 사건이 한국인의 그런 상처를 건드린 것이다.

한국인은 계속해서 의심해왔다. 이 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사회지도층이 서구 선진국 지도층처럼 일선에서 싸우며 희생할까? 평소 국회의원, 장관 등이 '신의 아들'로 채워지는 것을 보며 한국인은 그런 기대를 접었다. 사회지도층은 평소엔 일반 서민들에게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하면서도 그들은 초법적인 특권을 누리며 치부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번에 선장이 학생들에게 질서를 지키며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탈출한 사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만 참변을 당한 사건을 보며 한국인은 우리 사회의 비정함을 새삼 상기하고 있다.

'그래 이 나라는 서민을 챙겨주는 나라가 아니었지. 서민은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존재야. 우리 삶은 누가 챙겨준단 말인가.'

이런 생각과 함께 우리 국가, 공적 시스템에 대한 울분이 들끓었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나 루머가 환영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루머와 불신 때문에 빚어지는 사회혼란,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두 번 당하는 셈이다.

이번에 나타난 일부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그렇게 희생자를 만들고,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데 이어, 외신의 주목을 받으며 국격까지 실추시켰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세월호 선장의 행동이 역사적인 차원의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100년 전 영국 여객선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 때 승무원들은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하고 자신들은 아무도 구명정에 타지 않았다. 반면에 이번 세월호 사건에선 선장, 항해사, 조타수 등 선박직 승무원이 100% 생존한 반면 학생들은 23%만 구조됐다. 한국이 영국의 100년 전만도 못하다는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압축성장했지만 한 사회의 문화는 압축성장이 어렵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후진국형 문화가 빚은 참사다. 세월호 해운사는 안전 연수비엔 연간 54만 원을 쓴 대신 접대비로는 6,060만 원을 썼다고 한다. 윗사람에게 접대만 잘 하면 만사형통인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선박 안전관리 민간단체가 하는데, 그 단체엔 주로 해양수산부 전관(퇴직 관료)이 이사장으로 부임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 덩어리로 돌아가는 사회에선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이건 꼭 해운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금융사고가 터져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외적 성장에 비해 지체된 문화가 민낯을 드러낸 것이고, 이런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시민들의 격렬한 분노로 터져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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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단원고 #진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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