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업을 설계해 드립니다

admin

발행일 2010.08.05. 00:00

수정일 2010.08.05. 00:00

조회 2,629

“당신의 취업을 도와드립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중복이었다. 이 따가운 날에 그것도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 두 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올라오고, 습도 높은 날씨 덕분에 살짝 불쾌지수도 오르려는 그때.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더운데 힘드셨죠? 커피 드세요. 더우실 것 같아서 냉커피 준비했어요.”
약속장소인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에 들어서니, 조미숙(47.여) 씨가 눈에 보였다. 냉커피가 반가웠는지(?)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여성취업 상담버스인 ‘일자리부르릉’에서 취업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이제 막 적응을 시작한 새내기였지만 그녀는 그 일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제가 하는 일이 구직자에게 원하는 직업을 골라주거나, 교육을 추천해주는 일이에요. 하지만 다른 데와 달리 상담하는 곳이 버스라는 점이 특이하죠.”

일자리부르릉 버스는 낮에 여성들이 많은 아파트 단지, 대형마트, 행사장 등을 찾아가 맞춤형 취업지원을 해준다. 주로 경력단절 여성이나 전업주부들이 대상이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이래, 10,000여 명이 상담을 받았고, 700여 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2010.7 기준)

“저도 아이를 낳고 주부로만 살던 때가 있어서, 누구보다 주부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어요. 때로는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사람한테 자기 얘기를 편안히 하기도 하잖아요. 상담을 하다가 속 깊은 얘기까지 하는 건 그런 이유일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직업이나 교육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그럴 때는 친구나 언니 같은 마음으로 대합니다.”

열교환기 설계 → 부동산 중개업 → 취업설계사까지

다양한 취업상담 얘기를 듣고 있다가, 문득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예전에도 상담을 해봤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기계과를 졸업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제가 83학번이에요. 어쩌다 보니 기계과에 들어갔고, 졸업하고 나서는 회사에서 열교환기를 설계하고, 파지압축기를 개발했어요. 나름 바쁘게 살았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마자 상황이 바뀌었지요.”

28살에 결혼하고 30살에 첫 아들을, 35살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많은 여성이 그렇듯 육아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취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틈나는 대로 책을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둘째 아이가 4살 때인가, 공인중개사를 공부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그때 책을 펴 놓고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것도 아이가 오면 하지 못해서 자격증을 따는 데 2년이나 걸렸어요.”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친구들과 부동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경쟁업체도 많았고, 그만큼 부지런해야 밥그릇을 챙길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다. 가정생활을 하는 중에도 자신을 좀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몇 년 뒤, 그녀는 여성능력개발원에서 경력개발설계사 양성과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교육을 받았던 여성능력개발원에서 취업설계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아이들 때문에 내 일을 못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얻었죠. 다만, 고민만 하고 있는 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 마음을 먹었으면, 실천하는 게 중요해요. 일단 도전하면 길은 열리게 마련이죠.”

아들의 꿈은 보안전문가

그럼, 그녀의 아들은 어떤 길을 가고 싶어할까. 왠지 취업설계사의 아들은 부모로부터 남다른 조언을 받지 않았을까.
“지금 큰아이가 인터넷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학교는 아니지만, 저는 이 아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분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에 비하면 아들의 꿈은 확실하죠.”

큰아이는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어했다. 많은 이들이 그게 안정적일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일까를 생각하는데,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학교 가는 데 그러더라고요.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그만큼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게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직업이라는 게 돈과 연관되는 거라 많이 벌면 좋긴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 오래 할 수 없죠. 그렇게 보면, 꿈을 정하고, 달려가는 아이가 대견해 보여요.”

누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겁을 먹기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하면, 항상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는 길. 어느덧 한낮의 무더위도 누그러져 있었다. 머릿속에는 그녀가 건넨 한마디 말이 맴돌았다.
“도전하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죠.”

■ 일자리부르릉 서비스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현장(대형마트, 아파트단지 등)을 직접 방문하여 취업상담을 제공하는 서비스. 자신의 적성, 필요한 교육 및 취업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 여성능력개발원 홈페이지 : http://wrd.seoulwomen.or.kr/index.jsp
- 문의 : 여성능력개발원 ☎ 02-460-2300

하이서울뉴스/조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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