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왜 사랑받나?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4.08. 00:00

수정일 2014.04.08. 00:00

조회 2,248

정도전

[서울톡톡] KBS 사극 <정도전>이 조용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조용하다고 한 것은 시청률이 16~17% 수준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다고 한 것은 화제성이나 열성팬들의 열기가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여타 드라마에 비해 더 높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언론의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갤럽 3월 조사에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 드라마 부문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시청률 수치 이상으로 사랑받는 것일까?

<정도전>은 정통 정치사극이기 때문에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한 정통사극팬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TV 시청자층의 주류는 여성이기 때문에 정통 정치사극은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받아도 시청률면에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래서 정말 공들여 만든 정치사극이 평범한 주말 막장 가족극보다도 못한 시청률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선호도와 화제성은 시청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한동안 사극은 사료를 완전히 무시하고 역사를 비트는 쪽으로 갔다. 그런 역사의 전복이 처음엔 신선했지만 도가 지나치다보니 과거 <조선왕조500년> 시리즈처럼 사료에 충실한 정통역사물에 대한 요구가 커져가고 있었는데, <정도전>이 바로 그 응답이었다.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정통사극팬들의 기대가 컸다.

그런데 막상 시작한 이후 정통사극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젊은 네티즌까지도 <정도전>에 열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동안 젊은 연기자들 중심의 퓨전사극에선 보지 못했던 중년연기자들의 카리스마가 육박해오기 때문이고, 둘째, 드라마의 이야기가 현재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젊은 네티즌이 <정도전>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있다.

때는 고려말이다. 권세가의 창고엔 곡식이 썩어나지만 일반 백성은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어죽어갔던 시절이다. 일반 백성에겐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지만 권문세가의 땅은 하도 넓어 산과 강으로 그 경계를 삼았다던 시절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서민들이 길바닥에서 굶어죽어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자산(부동산) 격차를 비롯한 양극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88만 원 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빈곤과 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네티즌은 이런 현실에 분노하고 있고, 그래서 고려말 젊은 지사 정도전의 분노에 네티즌이 공감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정도전>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 것은 악인의 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권문세가의 중심 이인임이 단지 탐욕스런 악인이 아닌,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지닌 고단수의 정치거인으로 묘사됐다. 그 때문에 극이 유치한 선악구도 그 이상으로 비상할 수 있었다.

이인임은 "정적이 없는 권력은 고인 물과 같소이다. 권세와 부귀영화를 오래 누리고 싶으면 정적을 곁에 두세요"라고 했다. 극중에서 권문세가는 최영과 사대부라는 양대 정적을 실각시키고 독주했을 때 마침내 무너진다. 상대를 배제하려고만 하는 우리 정치풍토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무고한 사람을 역적으로 몰자 난색을 표하는 동료에게 이인임은 "어거지니까, 그래도 밀어붙이니까 사람들이 더 겁을 집어먹지 않겠소이까!"라고 한다.

이것은 유서대필 등 황당한 공안조작 사건으로 국민을 통제해온 우리 현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현대정치에도 그대로 대입할 수 있는 명대사가 넘쳐나며 양극화 현실에 대한 분노까지 대변하기 때문에 중년 정통사극팬과 젊은 네티즌, 그리고 매체 비평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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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 #시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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