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받은 아이만이 공감할 수 있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4.04. 00:00
공감은 정신의 성장에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공감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죽는 것이다.
--하인즈 코헛(Heinz Kohut) |
[서울톡톡] 공감하면 좋은 게 아니다. 기왕이면 공감해야 하는 게 아니다. 공감하지 못하면 죽는다.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단 4분 만에 뇌세포가 파괴되어 몸이 죽는 것처럼, 공감을 느끼고 공감을 얻지 못하면 마음이 죽는다.
공감(共感)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어떤 견해나 의견에 같은 생각을 가짐. 또는 그 생각'을 일컫는 동감(同感)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얼마간 다르다.
한마디로 동감이 상대와 내가 통한다고 느끼는 감정이입이라면, 공감은 나와 상대의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하고 느끼는 역지사지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헷갈린다면 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예를 빌어 와 보자.
하지현은 거지가 불쌍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동감이라면, 자신의 운명이 언젠가 거지처럼 불우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하는 것이 공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적선을 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동감에서 비롯된다면, 어쩌면 위험이나 두려움을 느껴 피하고 외면할 수도 있는 것이 공감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감이 공감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선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리의 문제를 떠나 생각해 보면, 동감은 나를 중심에 두고 상대를 판단한다. 반면 공감은 나와 상대가 같은 선상에서 평등하다. 누가 누구보다 더 불쌍하지도 않고 누가 누구보다 더 불행하지도 않다. 진정한 공감 속에서 모두 다 같이 어리고 어리석은 인간이다.
공감 능력이 없으면 남의 고통에 둔감하다. 따돌림을 받는 친구가 왜 괴로워하는지, 폭력이 왜 나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공감 능력이 없으면 나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혀 관심이 없는 대신, 심하게는 남의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작게는 눈치가 없고 소통 능력이 부족한 것부터 크게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까지, 공감의 부족은 반드시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성장기, 스스로 가장 공감이 필요한 시기에 형성된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아는 것처럼, 공감 받은 아이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공감 능력 향상이니 공감 지수(EQ)니 하여 여러 가지 테스트와 코칭 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거창한 이론들이 밝힌 이치는 기실 하나다.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양육자들이 아이에게 공감하는 방법은 어른의 감정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고, 들어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충분히 공감해주는 상대만 있으면 시나브로 사그라진다. 함께 화내주는 사람, 함께 눈물 흘려주는 사람, 함께 웃고 기뻐해주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마음을 다친 아이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 마음을 다친 어른들로 넘치는 세상이다.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먹이듯 마음이 고픈 아이를 공감으로 다독일 일이다. 나는 너와 함께 느낀다. 나는 너다.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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