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인생이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때...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3.21. 00:00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시간이여, 매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 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의 시 작은 별 아래서> 중에서 |
[서울톡톡] 갑자기, 인생이 터무니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뭔가 아는 체하며, 쥐뿔도 없이 있는 체하며,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해 꿈속에 살고 죽는 듯 흐리멍덩하게 살면서, 몽중몽설(夢中夢說),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듯 횡설수설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것 같기도 하다. 삶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고 그 속에 못 박힌 내가 불현듯 헐겁게 덜그럭거릴 때, 두려움과 쓸쓸함이 물밀어든다. 그럴 때 감정에 붙매이면 고스란히 우울과 허무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삶의 허방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는 진솔한 고백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침몰하지 않기 위한 비상!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끊임없이 '나는 모른다'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고 밝혔다. "흔히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거나, 보편적인 기준으로 널리 공인되어진 당위성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놀라움을 느끼게" 되며, "우리가 준거의 틀로 삼을 만한 지극히 '당연한' 세상은 실제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모른다"는 고백은 아름답다. 그것은 무지에 대한 겸허한 인정임과 동시에 무언가를, 아마도 어딘가에 오롯이 존재할 삶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일단 "모른다"고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쥐꼬리만큼 아는 것을 움켜잡고 전부를 아는 체하며 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바보 같아 보여도 좋다. 나잇값 못하고 철없어 보여도 좋다. 내가 걸어온 길, 살아낸 일 모두가 정당하다고 핏대를 세울 필요도 없다. 후회하는 일은 후회한다. 잘못한 일은 뉘우친다. 그리고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무지로부터 비롯된 숱한 오만과 편견과 나태에 대하여.
행운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우연히 찾아오는 좋은 운수일 뿐이다. 시간은 매순간 귀중한 선물을 주지만 우리는 따분해하거나 지루해하며 겉눈으로 세상을 흘려보낸다. 지나간 옛 사랑 역시 언젠가는 새로운 사랑이었음을 깜박 잊고, 새로이 홀린 사랑만이 처음이자 끝이라고 착각한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살육이 단지 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피비린내를 잊고 꽃향기에 취한다. 때로는 아물어가는 상처를 스스로 헤집어 고통을 확인한다. 어리석게도, 어리석게도.......
어쩌다 기적처럼 등장하는 성인(聖人)을 제외하면, 인간은 끝내 삶의 비밀을 모르는 채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이 모든 어리석음은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했기에 비로소 알아낸 진실이다. 삶에는 어느 하나도 '당연한' 것이 없기에, 오직 끊임없이 "나는 모른다"고 되뇌어야 마땅하다. 그것만이 작은 별처럼 잠시 반짝였다 스러지는 진실을 감지할 유일한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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