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의 지하철 기관사
admin
발행일 2009.08.31. 00:00
열차가 생명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 결심하다 양천구청역에 위치한 신정차량기지는 2호선 열차가 출발하고 또 도착하는 곳이다. 기자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힘차게 출발하는 열차를 볼 수 있었다. 신승국 기관사는 정확한 약속시간에 나타났다. 윤기 나는 곱슬머리와 밝은 표정이 마치 소년처럼 느껴졌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94년도에 입사했는데, 일한 지는 그보다 좀 오래되었죠.”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는 첫 질문에 신승국 기관사(44)는 아리송한 대답을 한다. 신승국 기관사는 어린 시절부터 열차를 좋아했고, 막연히 열차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꿈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메트로에 입사하면서 이뤄지는 듯 보였다. 처음 입사해서 맡았던 보직은 차량정비. 그의 전공인 전기전자를 살린 선택이었다. 그런데 차량정비업무를 하면서 조금씩 열차가 생명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문득 ‘살아있는 거대한 덩치의 열차를 직접 운행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직서를 냈어요. 그리고 다시 시험을 봤죠.” 기관사가 되기 위해 다시 시험을 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그를 만류했다. 어찌될지도 모르는 꿈을 위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린다는 게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듬해 공채시험에서 신승국 씨는 당당히 차장으로 입사를 하게 되고, 기관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전직 같은 제도가 없어서 그랬지만, 요즘에는 그럴 필요가 없죠. 기관사 교육기관에서 수료하고 일정자격만 갖추면 보직을 변경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재입사한 신승국 기관사는 성수승무사업소에 발령을 받았고, 97년 지금 일하고 있는 신정사업소로 옮겨왔다. 그리고 2007년에는 13년 간의 차장생활을 마치고 기관사가 되었다. "차장 중에선 대장인데, 기관사 중에선 중간 정도에요. 기관사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다 선배님들이죠." 지금도 운행시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무래도 기관사가 제겐 천직인 것 같아요.” 열차와 1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온 신승국 기관사는 최근에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그는 승객들이 열차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을 할 때,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이 그들의 중요한 삶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미끄러지듯이 레일 위를 달릴 때, 그리고 열차에 승객이 타고 내릴 때마다 그는 그저 마냥 기쁘다.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늦은 밤 동료와 술 한 잔도 할 수 없는 생활이지만, 다음날 운행시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기관사는 사회의 기상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 기관사는 조심스레 기관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사회의 기상도'란 그의 스승인 홍순상 수석차장의 표현인데, 사회의 행복지수를 지역별로 나타낸 가상의 지도를 말한다. 편안하고 안전한 출근길을 도왔다면 그 구간은 '맑음 또는 행복 가득'이고, 승객에게 불편을 주었다면 그 구간은 '천둥번개 또는 우울, 슬픔' 등으로 표시를 할 수 있단다. 신승국 기관사는 '오늘도 모두 행복'이라는 기상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실제로 상관관계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비효과라고 있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거죠.” 그런 작은 노력들과 낙천적인 생각 때문에, 신승국 기관사는 13년 간의 차장생활 동안에 친절방송왕으로 뽑히기도 했고, 사내 열차운전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기관사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서울메트로 안전홍보대사, CS패트롤강사 등을 맡아오고 있으며, 틈틈이 공부도 해 기관사 연구발표에서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졸음은 최대의 적, 시계 보는 게 직업병 “가장 위험한 건 졸음운전이죠.” 열차 운행의 경우에는 사소한 실수가 바로 대형 참사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달리는 중에도 계속해서 선로를 확인하고, 승강장에 들어설 때는 승객들을 살펴야 한다. 가장 경계하는 것은 졸음이다. 열차의 경우 승용차와 달리 ‘졸음’이 오기 시작하면 어디 세울 수도 없고, 대신해서 운행해줄 사람도 없다. 열차가 달리는 동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담당 기관사의 몫인 것이다. “기관사라면 누구나 충분히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잠을 청하곤 하죠.” 많은 기관사들이 껌을 씹거나, 또는 감기약을 먹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졸음이 오는 것을 막고 있다. 신승국 기관사의 경우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나와도 적당량 이상 먹지 않는다. 그렇게 적게 먹고 약간 허기진 상태라야만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도 많이 먹으면 안돼요(웃음)." “또 기관사들에게는 무엇보다 시간관리가 중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신승국 기관사는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시계를 살핀다.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뭔가에 몰두한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시계를 들여다보는 거였다.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직업병이란다. “지하철은 우회도로가 없어요.” 시간이 기관사들 생활의 중심이 된 이유다. 한 곳에서 지체가 이어지면 다음, 그리고 다음 기차까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의 전동차 때문에 모든 시스템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원활한 지하철 운행을 위해서는 기관사들이 기계처럼, 어떨 때는 기계보다도 더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야 한다. “고객님들이 조금만 여유를 가져주셨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죠.” 특히 아침 출근길의 경우 위험한 순간이 더 많다. 승객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시간에는 더욱 많은 열차가 배정돼요. 1~2분만 기다리면 다음 열차가 도착하죠. 다들 바쁘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어요.” 서울이 막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지하철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에요.”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이 하나씩은 있다. 출근하는 사람,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사람, 일을 하는 어르신, 서울의 축제를 즐기러 가는 사람, 외국인 관광객, 여행을 가는 사람, 퇴근하는 사람, 술 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서울 시민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다. “서울은 정말 아름다워요. 특히 아침 강변역에서 잠실역 사이를 지날 때면 장엄한 감동을 느끼게 되죠.” 신승국 기관사는 2호선을 운행하다보니, 시간에 따라 노선이 어떻게 다른지 느끼게 된다. 그는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가장 사랑하게 된 공간으로, 강변역에서 잠실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꼽는다. 특히 새벽녘 일찍 일터로 가는 사람들과 함께 멀리 한강 끝자락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 순간은, 서울이 막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신승국 기관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꺼낸다. "또 열차에 연관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제 동생들이 모두 기관사가 됐다는 거죠." 신승국 기관사는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젊은 시절 동생들에게 자주 했다고 한다. 단순히 열차에 푹 빠진 형의 이야기였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동생들을 세뇌시킬 정도였던 거 같다고. 매일 열차 이야기만 들었던 동생들은 어찌된 일인지 모두 기관사가 됐다. 현재 그의 동생들은 3호선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집안 행사 때 만나면 모두들 열차 이야기만 하면서 밤을 새운다고 한다. 신승국 기관사는 형제들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승객의 안전을 넘어, 승객의 편의를 생각한다
그는 출발하기 40분 전부터 열차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곳곳의 장비들을 확인한다. 열차를 점검하는 모습을 소개해주던 신 기관사는 문득 차량 위에 쓰여 있는 열차번호를 보더니 말을 꺼낸다. “예전에는 기관사들도 기관차의 번호를 헷갈릴 정도였는데, 이제는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편해요. 각 량마다 고유번호가 있어서 번호만 말하면 그 열차가 어디에 있는지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게 됐죠.” 차량의 온도가 알맞지 않은 경우,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그 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열차의 앞 뒤 문 위에 쓰여 있는 고유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하면 불편사항이 바로 해결된단다. “목표는 무사고 40만 킬로, 60만 킬로를 이어가는 거예요.” 신승국 기관사의 목표는 당연히 안전운행이다. 하늘의 파일럿들이 무사고를 축하하는 것처럼, 땅 속의 기관사들도 무사고 운행을 그 어떤 명예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안에서는 엄청난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승국 기관사는 큰 의미의 무사고는 위험한 순간은 물론이고, 승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활기찬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어둠 속을 달리고 있을 신승국 기관사, 그리고 고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이름 모를 수많은 기관사들. 그들 모두가 하루하루 무사고라는 작지만 큰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뤄나가길 바라며, 지하철을 통해서 서울시민 모두가 신바람 나는 날도 기대해본다. 시민기자/김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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