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복지, 꿈이 아니다

admin

발행일 2010.05.10. 00:00

수정일 2010.05.10. 00:00

조회 2,882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 도대체 그 실체는 무엇일까? 2010년 들어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그물망' 복지의 핵심 본부,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를 방문했다. 충정로의 한 빌딩 8층 구석을 점하고 있는 센터 사무실은 의외로 작고 소박했으며, 불과 10명 남짓한 인원들이 분주하게 근무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하루하루는 대한민국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지도 모를 엄청난 행보란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인터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계속 되는 전화 상담 속에서 김남식 센터장과 김용구 매니저를 간신히 만났다.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의 영어 이름은 'Seoul Welfare Net Center'다. 복지와 그물은 무슨 관계일까. 생업에 종사하느라 혹은 장애나 지병 등으로 직접 센터로 찾아올 여력이 없는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서 상담하고, 자신이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인 줄도 모르고 있는 시민들을 촘촘한 그물로 엮듯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발굴해내고, 자신에게 맞는 복지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물어오는 시민들에게 일일이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엮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통합'과 '네트워크'의 그물이다.

전화 한 통이면 알려주고 찾아가준다! 다산120 등 서울시의 대 시민고객 서비스를 통해서 익숙해진 개념이긴 하지만, 복지 분야에서 볼 때는 다소 공격적인 경영방식이며, 일대 혁신에 가깝다. "새벽 4시에 일터로 가면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여성 가장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 모르는 건 당연하죠." 33년간 공무에 종사하면서 유독 복지 쪽과 질긴 인연을 맺었던 김용구 센터장은 사회복지에도 엄연히 정보취약 계층과 사각지대가 존재해 왔다고 설명한다.

"오랜 기간 이 쪽에 종사하면서 사회복지에도 물이 새는가 하고 의심을 가져봤습니다. 수혜를 받는 사람은 여러 가지 수혜를 동시에 받기도 하지만, 반면 아닌 사람들은 항상 소외된다는 것을 느꼈죠. 예를 들어 고시원을 얘기하자면, 무늬만 고시원이지 실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엔 노숙인들과 가정이 해체된 사람들이 삽니다. 그 중에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분들도 있죠. 가령 남편이 가출한 뒤 어린 자녀 셋을 평생 책임져온 여성이 있습니다. 언젠가 남편이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린 세월이 20년. 그런데 지금 장성한 자식들은 그 누구도 어머니를 돌보지 않습니다. 서류상으로는 남편도 있고 자식들도 셋이나 있지만 현실은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24만원의 생활비도 감당하기 어렵구요. 현재 제도적으로는 이 여성을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일을 그물망복지센터에서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과 소통하고 풀어낼 것인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매니저와 현장상담가들이다. 복지기관에서 다년간 실무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매니저들은 현재 총 8명. 이들은 4대 권역별로 2명씩 배정되어 자신의 권역에 접수된 상담건들을 처리하는 한편, 찾아가는 상담이 필요한 경우 현장상담가들을 배정하여 투입시킨다. 현장상담가들은 자원봉사 체제로 매니저로부터 '오더'가 떨어진 현장에 찾아가 상담을 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한편 현장상담가들은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복지 서비스의 예비 수혜자들을 발굴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매니저와 현장상담가의 이원적 체제를 통해 기존의 복지제도가 간과했던 틈새가 하나하나 노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매니저들은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의 핵심축이다. 상담을 요청해온 시민들 하나하나에게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조사해서 통보하고, 때로는 그러한 서비스를 직접 연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본인이 장애가 있으셔서 기초장애수급권자 혜택을 받고 있는 한 시민이 전화를 해오셨죠. 고등학교 1학년인 자녀를 학원에 보내면 좋겠다구요. 마침 서울복지재단에서 디딤돌 사업을 하고 있어 인근 거점기관을 찾아봤더니 그 지역에 연계된 학원들이 있었고, 담당 선생님과 연결해서 상담을 받으실 수 있도록 했어요. 대기자 명단에 오를 수도 있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죠." 제4권역을 책임지고 있는 김용구 매니저는 방금 이 상담건을 처리하고 왔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이것은 행복한 경우다.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가 만능해결사인양 알려지는 바람에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생활비도 필요하고, 내 아들 학원도 보내주고 싶고, 병원도 가야 하고, 나 집도 힘들어, 하는 식으로 호소해오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매니저들은 영구임대아파트 신청요건과 시기 및 희망플러스통장 신청요건을 조사하기도 하고, 고용으로 풀어볼 수 있는지 혹은 디딤돌사업이나 보육 쪽을 타진해보기도 하고, 아이사랑카드 안내를 하기도 하고, 장기요양보험 혜택 등도 뒤져봐야 한다. 이미 제도권 복지제도에서 어떤 기준에 의해 제외되었거나, 이미 특정 서비스의 혜택을 받고 계신 분들이 상담해올 때도 있는데,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없다고 통보하는 순간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온갖 욕설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병원비가 없으니 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병원비가 없으니 병원비를 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병원 같은 경우는 디딤돌사업과 연계해서 지역 의원을 연결해드리거나 협회를 연결해드리기도 합니다. 장애인협회의 경우 치과진료비 지원제도도 있거든요. 하지만 후자의 경우 접근방법이 다릅니다.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서울시의 긴급의료비지원이라고 해서 300만원 이내에서 저소득층 대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케이스별로 다르기 때문에, 매 상담은 새로이 접근해야 합니다."

김용구 매니저에게 지난 1달여를 지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최근 사례를 하나 들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작년까지 혜택을 받다가 올해 복지 행망 조사검색이 바뀌는 바람에 차량 소유가 걸려 수급권자에서 탈락된 분이었다. "과거에 사업을 해보려고 중고차를 구입해두셨던 모양인데, 이미 10년이 넘었고 심지어 면허도 없고 현재 차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차량을 말소하자니 돈이 없고 압류가 걸려 있고 저당까지 잡혀 있었어요. 저당 80만원이 있는지는 모르고 구입하셨고, 건강보험이 연체돼서 압류가 180만원 가량이 걸려 있었구요. 한부모가구인데 자녀가 둘 있으니 수급권자가 되야 그나마 월세 20만원이라도 낼 수 있는 형편이었죠." 알고 보니 차량소유는 인천계양구였고, 자동차회사, 건강보험공단과 돈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러면서 '차량초과말소'라는 제도의 존재도 알게 됐다고 한다. 통화한 시간만으로 따져도 3일이 꼬박 소요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김매니저는 건강보험공단하고 몇 차례 언쟁도 감수해야 했다. 지금은 인천 계양구에 발송할 공문을 처리 중이다. 매니저는 복지의 수퍼맨일까? 매니저의 재량과 의지가 때로는 법과 제도의 장벽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매니저의 대답은 달랐다. "과찬이시구요. 그 금액을 다시 받으신다 해도 사실 많은 액수는 아닙니다. 안타까운 건 그거죠. 해결해드린다 해도 이 사람의 생계가 확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 워낙 저소득층인데다 월세도 두 달치 밀렸구요. 하지만 이 사람이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싸우는지도 모르겠어요. 싸운다고 해도 저한테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요." 어쩌면 그물망복지센터가 추구하는 것이 그의 말에 모두 함축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물망복지센터가 당장 복지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며칠의 고민과 수십 통의 전화가 한 사람의 인생 또는 그 가족의 삶을 구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1644-0120.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에 연결되는 복지콜 번호다. 복지콜 번호가 점점 알려지다 보면 전화 횟수가 늘어날 것 같은데 8명의 매니저는 너무 버거워 보였다. "서울 인구가 1,000만 시민이라고 하는데 이 중 단 5%가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엄청난 전화거든요. 실제로는 더 될 겁니다. 그리고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보육, 노인, 여성 등 복지 대상은 다양한데, 8명이 다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죠." 그래도 이들은 하루 20~30건의 신규 전화상담건을 받아들인다. 1주일이면 100건이 넘는 숫자의 상담건수가 누적되기도 한다.

두 달이 채 안 된 그물망복지센터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김남식 센터장에 따르면, 한 축은 공공자원을 경감하는 자원봉사를 활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 축은 복지공공망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복지공공망은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큰 틀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2중, 3중 수혜를 받는 분들은 걸러지고, 어느 정도 편중과 불균형이 해소될 것입니다. 복지공공망이 왜 필요하냐구요? 가령 제가 나이가 들어 노인전문요양시설에 들어갈 때가 된다면, 제 아이디와 소득을 치면 어느 요양시설에 침대가 비어 있다고 나오게 되는 거죠. 지금 현재는 요양시설이 100군데 있다면 100군데 다 전화를 해봐야 하거든요.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는 그러한 공동망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또 중요한 다른 축으로 민간 나눔이 연계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금전적이고 물적인 네트워크만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도 엄청나게 중요한 자원입니다. 현재 그물망에서 무급으로 일해주시는 전문 자원봉사자들이 그런 대표적인 분들인데, 나중에 데이터베이스가 되고 결국은 마일리지 제도로 환산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하여 젊어서 자원봉사를 한 걸 가지고 미래에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국가의 자원도 아낄 수 있겠지요."

하이서울뉴스/조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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