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지혜로웠던 것은 자연과 하나였기 때문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2.14. 00:00
너희들 도시의 길은 너무 밝다! 너희는 별이 겁나느냐? 너희 음악 소리는 너무 크다! 너희는 바람의 속삭임이 두려우냐? 혹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냐? --크소코노쉬틀레틀(Xokonoschtletl Gómora) |
[서울톡톡] 정복자들의 착각에 의해 얼토당토않게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리게 된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북미 원주민)'들에게 예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코끝에 새벽바람 냄새가 느껴진다. 싸하고, 찡하다. 촉촉하면서도 웅숭깊어서, 호들갑스럽게 감탄하기보다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예를 들면 시쳇말로 '인디언 달력'이라 불리는 각 부족이 달(月)을 지칭하는 고유의 이름이 그러하다. 온 세상이 추위와 눈으로 뒤덮인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천지간이 생령으로 가득 차는 5월은 역설적으로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태양이 들끓어 세상이 불타는 8월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다시 겨울이 다가와 나무들이 헐벗고 숨탄것들이 움츠러드는 11월은 그러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린다. 그 이름으로 붙은 말과 그 이름을 부른 마음이 올올이 아름답다.
그들이 지혜로웠던 것은 자연과 하나였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신비와 자유, 야생의 존재로서의 자신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인간 중심적 종교관을 가졌던 그들에게는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자연의 모든 것이 저마다의 신성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했다. 대지를 어머니로 여기고 태양을 아버지로 삼았기에, 구름과 새들과 강물과 물고기와 산들과 바위들은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비롯된 형제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용기와 기쁨이 삶을 벅차게 했다.
현대의 밤에는 더 이상 어둠이 없다. 거리거리마다 인공의 빛이 보무당당하게 번쩍거리고 있다. 그 불빛에 가려 별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어둠을 물리친 것일까? 문명은 어둠과 함께 침묵을 몰아냈다. 소음을 쏟아내는 기계들이 발명되어 끊임없이 음악을 재생한다. 그런데 그 잡다한 소리들을 흡수하는 우리의 귀는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듣고 있는가?
멕시코 아즈텍족의 후예로서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전통춤을 계승하고 있는 크소코노쉬틀레틀은 어둠과 침묵을 몰아내고 우쭐해하는 우리에게 묻는다. 혹시 내리비치는 별빛이, 바람의 속삭임이 겁나는 게 아니냐고. 어쩌면 어둠과 침묵 속에서 더욱 명백해질 우리 자신의 비밀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냐고. '시큼하고 매운 열매 선인장'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크소코노쉬틀레틀의 질문은 언젠가 '인디언'에게 그러했듯 자연을 '정복'했다고 믿는 현대인들의 급소를 시고 맵게 톡 쏜다.
별에게 길을 묻던 때에 어둠은 상상과 이야기의 너른 배경이었다. 바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던 때에 침묵은 성찰과 예지의 보물창고였다. 밝고 시끄러운 현대의 도시에 꿈과 지혜가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웅크린 괴물과 마주보기에 너무나 두려운 겁쟁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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