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건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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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2.17. 00:00

수정일 2008.12.17. 00:00

조회 3,244

1981년, 미국의 의학잡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건강한 미국의 동성연애 남성들에서 폐포자충에 의한 폐렴, 거대세포바이러스 감염, 카포시육종 같은 특이한 암 등 일반인에게 발생하지 않는 일련의 질환군이 보고되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혈액 질환이나 암과 같이 면역력이 약해질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면역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질환은 에이즈,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2년 뒤 뤽 몽타니에와 바레 시누시 박사는 이들에게서 한 바이러스를 분리해내어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의 원인체라고 발표하였고, 이것이 바로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다. 중요한 발견의 공로로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두 박사에게 돌아갔다. 원인체의 발견 이후 지난 스물일곱 해 동안 질병과 원인체에 대한 이해와 진단법, 다양한 종류의 치료 약제들이 개발되면서 감염인들의 생존 및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대유행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08년 국제연합 에이즈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007년 감염인의 수는 3천 3백만 명이었고, 국내에서도 1985년 처음으로 감염인의 발생이 보고되었고, 약제의 보급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국내 감염인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질병관리본부 보고에 의하면 2007년 내국인 에이즈 감염인 744명이 새로이 발견되어 보고된 누적 감염인수는 총 5,323명이었다.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는 성 접촉(정액, 질분비액), 혈액, 모유 등의 체액을 통해 전파될 수 있는데 그 중 주된 전파경로는 성 접촉인데 동성애자들의 질환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나 세계 전체에서 이성간의 성 접촉이 가장 중요한 전파 경로다. 둘째, 감염인에게서 온 혈액제제를 받을 때에 전파될 수 있으며, 셋째로 의료 종사자들이 의료 행위 중에 감염인에게 사용한 주사 바늘에 찔리게 될 때 천 명 중 3명 꼴로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넷째, 감염인 엄마로 부터 아기로의 전파로, 주로 출산 전후와 모유 수유를 통해 감염될 수가 있다. 그 밖의 다른 체액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지만, 눈물, 땀, 소변으로 감염되는 경우는 없다. 다시 말해, 감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과 달리 일상적인 접촉, 악수, 가벼운 포옹, 식사 등을 같이 한다고 해서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3에서 6주가 지나면 발열, 인후통, 임파선이 붓는 등 급성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증후군이 50%에서 발생하나, 대부분 일반적인 감기 몸살과 비슷하여 진단이 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후 8~10년간 몸속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는 동안 밖으로는 나타나는 증상은 없지만 면역 조절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CD4 임파구를 비롯한 면역계 세포들을 감염시켜 서서히 파괴된다. (이러한 잠복 기간 동안에도 다른 사람에게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는 두꺼운 당화 단백질이라는 옷을 입고 있어 우리 몸에 외부 침입자들이 들어올 때 내부적으로 만들어지는 항체를 피할 수 있으며, 이렇게 들어온 바이러스는 사람의 몸에 들어온 지 수일에서 수주 이내에 자신의 유전정보를 사람 세포의 유전자 속에 끼워 넣으면서 영구적으로 잠복한다. (일단 잠복하게 되면 환자가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바이러스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또한 돌연변이와 재조합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아형과 재조합형을 만들어내면서 분화 된다. (다른 여러 감염 질환에서 효과적으로 예방했던 백신, 즉 예방주사의 개발이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의 경우에 아직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시기가 지나게 되면 세포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CD4 임파구가 일정한 숫자 이하로 감소되거나,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군(에이즈 정의 질환들)이 발생하는 데 이 상태를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한다. 에이즈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첫째, 바이러스 감염 자체에 의한 증상인 지속적인 발열, 설사, 체중 감소 등과 둘째, 면역력의 저하에 따라 건강할 때는 별로 문제되지 않던 감염병들의 공격, 셋째로 암의 유발이 억제되지 않아 악성 임파종, 자궁 경부암, 피부에 붉은 반점의 형태로 나타나 초기 에이즈로 인한 공포심을 자아내게 했던 카포시육종 등의 발생이 그것이다.

1985년 지도뷰딘이라는 항암치료제로 폐기되었던 약제가 처음으로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것이 밝혀진 이래, 1995년에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약물의 병합요법)가 사용되었고 이후 치료 성적은 크게 향상되었다. 이제 더 이상 에이즈는 그 병 자체로 죽는 질환이 아니다. 바이러스 생활사의 다양한 단계를 막기 위한 다양한 기전의 치료제들이 개발되어 미식약청에서 승인된 약만해도 6가지 기전의 20개 약제가 되고 지금도 개발 및 임상연구 진행 중에 있다.

치료의 목적은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고, 면역기능을 호전시키고 보전시켜서 기회 감염증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고, 감염인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최근 들어 바이러스가 약제에 대해 저항성을 갖게되는 문제와, 약제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들(심혈관계 질환, 지방질의 변화로 인한 외모의 심각한 변화 등)에 대한 논의와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는 다국적 회사들을 통해 약이 공급되고 있지만 보험 가격 등의 이유로 주요한 약들이 시판되지 못하고 있어 감염인들의 치료 선택의 폭이 좁은 현실이다.

2008년 국제에이즈치료의사협회의 조사 결과 중 한국 에이즈 환자의 응답을 보면, 정규직 고용상태가 19%로 전체나라 조사 평균인 28%인 것과 비교할 때 낮았고, 감염사실을 알리는 것이 두려운 이유로는 차별, 가족을 잃게 될 두려움, 향후 대인관계 형성에 영향,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의 순으로 응답하였다. 2007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행한 일반인의 에이즈에 대한 행태조사 에서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외국에 비해 에이즈에 대한 지식수준은 여전히 낮고 차별의식은 높아 36.5%의 응답자가 에이즈 감염인을 격리수용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에이즈가 우리에게 알려진지도 스물일곱 해가 지났다.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와 에이즈에 대한 많은 이해가 생겼지만, 20년 전 수잔 손택의 지적는 지금도 유효하다. “…에이즈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해 내려진 심판이며, 무고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역병이라는 은유를 통해 나타난다….”
2008년 9월 새로 개정된 후천성면역 결핍증 예방법에서는 피검자가 원하는 경우 익명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였고,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이나 차별 대우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최재필_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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