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영화, 초호황의 그림자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3.07.23. 00:00
[서울톡톡] 올 상반기에도 영화계의 기록적인 상승세가 이어졌다. 2004년 상반기 총관객수가 2,100만 명 정도였던 것이 2년간 가파르게 상승한 후 안정기를 맞아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7,000만 명 내외의 선을 유지했었다. 그랬다가 2012년에 다시 상승세가 시작돼 총관객 8,000만 명 선을 돌파, 영화계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런데 올 상반기에 약 9,850만 명이란 수치가 나왔다. 상반기에만 총관객수가 1억 명에 육박한 셈이다. 이대로 가면 연말엔 1년 총관객수가 2억 명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연 총관객수는 한동안 1억 5,000만 명 정도를 유지했다가 2012년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객층도 넓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화를 많이 봤던 20~30대 관객층은 여전히 극장을 자주 찾고 있다. 거기에 최근엔 40~50대 중년 세대가 주 관객층으로 가세했다. <7번방의 선물>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에는 중년 관객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 중년 관객은 요즘에 90년대 명작들의 재개봉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예술영화관의 흥행에도 힘을 보태면서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거기에 한동안 소외됐던 10대들까지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흥행에 가세했다. 이 작품이 개봉 초기 기록적인 흥행가도를 달린 데에는 10대 관객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영화관으로 몰림에 따라 영화계의 기록적 전성기가 열리게 된 것이다.
왜 모든 세대가 극장으로만 몰리게 된 것일까? 사실 최근에 갑자기 영화들의 질이 좋아졌다거나, 우리 국민들의 문화생활에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발전이나 영화계 발전으로 인해 이런 호황이 나타났다기보다는, 경제적 불황이 영화 호황의 근본적인 동력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가장 저렴한 서민의 오락이다. 시내에 외출해서 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두 시간 이상의 문화생활을 안락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은 영화관 말고는 딱히 없다. 공연예술은 아무리 싸도 몇 만 원씩 한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졌을 때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배경에서 국민들의 문화소비 형태가 영화 관람으로 일원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문화적으로도 가난해지고 있다. 지나친 입시교육으로 인해 독서라든가 다양한 문화적 취미가 계발될 여지가 없다. 사회에선 절박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기 때문에 역시 다양한 문화적 취미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래서 화려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 쪽으로 문화소비가 몰리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영화계 호황이 일차적으로 반갑긴 하지만 이것을 한국사회의 문화적 향상으로 해석하기가 힘들다.
올해도 어김없이 '몰아주기', '싹쓸이'의 관행이 나타났다. 극장에 관객들이 많이 몰리긴 하는데 그것이 취향의 다양성에 따라 다양한 영화들을 살리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영화에만 몰리는 악습이 반복되는 것이다. 관객이 몰리니 극장에선 스크린 '싹쓸이' 현상이 나타난다. 몇 개의 대박영화와 수많은 쪽박영화가 양산되는 불안정한 시장이 돼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산업은 점점 도박과 같아진다.
최근 들어 할리우드 스타의 방한이 잦아지고 있는데, 이것도 몰아주기와 관련된 현상이다. 몇몇 영화에 몰아주는 관행이 지속되다보니 이따금씩 놀라운 흥행이 터진다. <트랜스포머>나 <아이언맨> 시리즈의 흥행은 한국의 경제규모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그런 대박이 터지는 곳이다 보니 그들에게 한국시장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할리우드마저도 놀라게 하는 엄청난 몰아주기, 싹쓸이, 그로 인한 대박이 주기적으로 터지는 한국 영화계. 이것은 아무리 총관객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도 그 이해가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구조에서 장기적인 발전이 가능할까? 영화계 호황은 반갑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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