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초 전성시대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3.07.02. 00:00

수정일 2015.11.17. 19:12

조회 1,941

별 생각 없이 TV를 보고, 노래를 듣는 것 같지만, 그럴싸한 해석을 달아 놓고 보면 대중문화 속에서는 사회의 현주소가 보이고 사람들의 인식이 보고, 심리가 보인다. 별 생각 없이 접하는 것 같은 대중문화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별 별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그걸 콕콕 짚어내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의 '컬쳐 톡'이 매주 수요일, 여러분을 찾는다.

[서울톡톡] TV 토크쇼에 재난이 닥쳤다. <무릎팍도사>, <화신>, <힐링캠프> 등 지상파에서 하는 토크쇼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일제히 하락했다. 심지어 국민MC라는 유재석의 <놀러와>는 시청률 부진 때문에 아예 폐지됐을 정도다. 대신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초 전성시대가 열렸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는 처음에 <무한도전>에 의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게 워낙 화제가 되다보니 다른 방송사에서도 그런 포맷을 이어받아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새롭게 편성했다. 이 흐름이 <천하무적 야구단>, <남자의 자격>, <오빠밴드> 등으로 이어지며 리얼버라이어티 전성기가 전개된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유재석과 강호동이었다. 그 이전에 스튜디오 토크에 강점을 보이던 MC들은 리얼버라이어티의 야생성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외에서 펄펄 날았던 유재석과 강호동이 야생의 왕자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유강천하'라 일컫는다. 뒤늦게 <남자의 자격>으로 리얼버라이어티 대열에 합류한 이경규는 이로 인해 연예대상을 거머쥐는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유강천하, 리얼버라이어티의 호시절이 계속 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정도의 리얼리티에 곧 싫증이 났고 더욱 강한 리얼리티, 더욱 센 리얼리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에 부응해 나타난 것이 바로 <정글의 법칙>이다. <정글의 법칙>은 연예인들이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아주 힘들게 고생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연예인 같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워낙 고생이 심하기 때문에 연예인으로서의 꾸밈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시청자는 이렇게 강화된 리얼리티에 환호를 보냈다. 그러자 <1박2일>같은 기존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리얼버라이어티와 함께 등장했던 유강천하도 결국 더욱 강해진 리얼리티의 도전으로 붕괴된다.

리얼리티가 끝없이 강화되다보니, 이젠 기존 인기 예능인이 아닌 사람들이 더 환영받는 분위기가 됐다. 그런 이유로 올 상반기 한국사회를 강타한 것이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 신드롬이다. <아빠 어디가?>는 7살, 8살인 아이들이 주역인 프로그램인데, 이 아이들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꾸밀 능력 자체가 없다. 행동 하나하나가 100% 리얼인 것이다. <진짜 사나이>는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군생활에 임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현재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군림하고 있다.

예능스타 하나 없이, 오로지 리얼리티만 있는 예능의 전성기. 이런 분위기에 따라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같은 리얼리티 관찰 예능프로그램도 속속 생기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토크쇼가 약세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시청자는 이제 연예인 신변잡기 토크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 속에서 인간미와 우애가 느껴지고 예기치 않은 돌발웃음까지 터지는 생생한 상황. 인간의 진심이 전해지는 이야기. 그런 것에 재미와 위안을 느낀다. <아빠 어디가?>나 <진짜 사나이>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온갖 일들로 들끓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미, 진심, 생생한 웃음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리얼리티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 같다.

리얼리티 전성시대는 코미디 퇴조기와 맞물린다. 사람들이 생생한 것, 날 것을 좋아한다는 건 꾸민 것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된다. 코미디는 철저하게 대본으로 꾸며진 꽁트이기 때문에 리얼리티와 같은 생생함, 돌발성이 없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성은 바로 그런 꾸밈에서 나온다. 날 음식만 먹으면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없듯이, 날 것 리얼리티만 좋아하면 창조적인 예능문화도 발달하기 힘들 것이다. 리얼리티 초 전성시대의 그림자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