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발행일 2013.04.30. 00:00
[온라인뉴스 서울톡톡] 작년 5월에, 참 감동 깊게 관람한 연극 한 편이 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푸르른 날에>가 그것이다. <푸르른 날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역사를 재조명해서 2011년에 초연된 작품이다. 리포터가 관람했던 지난해는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공연이 열렸던 곳은 남산자락에 위치한 남산예술센터. 당시 오랜만에 남산자락을 오르는 기분도 새로웠던 기억이 난다. 연극이야 재미있든지 없든지, 감동적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저 연극을 보러 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설레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있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싹튼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그 역사적 아픔을 이야기한 내용이기 때문에 다소 무거울 거라는 짐작을 하고 갔었다.
적막한 불당 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승려가 홀로 불공을 드리고 있는 가운데 객석을 가로질러 한 사내가 달려온다. 그리고 속사포 같은 대사를 쏟아내는 사내. 헛기침까지 하며 자신의 방문을 알리지만 승려는 묵묵부답이다. 이것이 푸르른 날의 시작이자 도입부분이다. 이 연극을 보는 관객이라면 처음에는 이들의 과장된 행동과 변사 같은 우스꽝스런 말투, 속사포처럼 빠르게 쏟아내는 대사들을 적응하느라 혼을 빼고 만다. 내용이 진행되다보면 우울함과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에게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반전의 내용들이 숨어 있다. 리포터 역시 그러했다.
극중 인물 중에 가장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배역은 역시 주인공 유정혜와 민호였다. 1980년, 당시 대학을 다니며 야학선생을 하던 민호는 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정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정혜의 남동생 기준은 그런 민호를 친형처럼 따른다. 하지만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터지자 정혜와 민호는 떨어지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한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된 민호는 고문을 당하고 정신이상자가 된다. 결국 민호는 현실의 삶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된다. 이후 정혜는 홀로 딸 운화를 낳아 어렵게 홀로 키운다. 암자에서 수행 중이던 민호는 자신의 딸 '운화'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부분에서 그는 다시 30여 년 전 자신이 대학을 다닐 무렵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는 딸의 결혼식장에 나타나 정혜와 다시 만나게 된다.
마지막 결말에서 연극 <푸르른 날에>는 주인공 민호처럼 역사 앞에 자신의 비겁함이나 나약함 때문에 상처 받은 이가 있었다면 그 죄책감은 이제 그만 내려놔도 좋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도 좋다'고 그렇게 위로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어울리듯, 그래서 공연 끝머리에 민호와 정혜가 함께 부르는 '오월의 노래' 가 더욱 감동적으로 울려온다. 30여 년간 이뤄지지 못한 남녀의 사랑은 이렇게 5·18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올해 5월에도 남산예술센터에서는 <푸르른 날에>가 공연될 예정이다. 1980년대 5.18 당시를 공감하지 못하는 신세대들도 볼 만한 연극이다. 또 당시 광주의 아픔을 생생하게 겪은 세대들에게도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듯 그때의 역사적 사건을 잔잔하게 상기하며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시대적 아픔이지만, 그 아픔을 그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의 시와 송창식의 노래로 여는 마지막 장면은 '푸르른 날'이 개인과 역사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기억함과 동시에 푸르른 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펼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암시해 준다. 그래서 관람을 끝나고 남산 길을 밟아 돌아오는 동안에도, 꽤 오랜 시간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느끼게 해 주는 연극이다.
■ 연극 '푸르른 날에' ○ 장소: 남산예술센터 ○ 일정: 5월 4일(토)~6월 2일(일) ○ 시간: 화·수·목·금 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월요일 휴무) *단, 5/17-3시, 7시 2회 공연 ○ 러닝타임: 120분 ○ 공연등급: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중학생 이상 권장) ○ 주 최: 서울특별시 ○ 주 관: (재)서울문화재단, (주)신시컴퍼니 ○ 제 작: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 (주)신시컴퍼니 ○ 문의: 02-758-2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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