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고태윤

발행일 2013.01.15. 00:00

수정일 2013.01.15. 00:00

조회 2,603

[서울톡톡] 서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고스란히 보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서울역사박물관'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의 세시 풍속 중 하나로 일년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 정초에 일년 열두달의 신수를 알아보는 토정비결이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흔히 재미삼아 또는 소일 삼아 세시에 종로 일대 길거리에서 봐오던 토정비결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품으로 전시돼 있다 하니 몰랐던 사실에 놀라움은 물론 '이렇게 가까운데 그 유명한 토정비결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일반인이 쉽게 한 해 운수를 점쳐 볼 수 있도록 고안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 선생이 지은 일종의 예언서로 일년을 매달로 나누어 열두달의 신수를 보게끔 되어 있는데 전체가 144괘의 4구로 되어 있어 내용이 쉽고 다른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두루뭉수리하게 해석되게끔 되어 있다.

이지함 선생은 주역이 4주(생, 년, 월, 시)와 8자로 되어 있는 괘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를 축약하여 3주(생, 년, 월)와 6자로 되어 있는 괘를 사용하게끔 토정비결을 만들었다.

게다가, 주역을 이용한 일반 역술과는 달리 4구로된 신수 내용은 대부분이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조선 시대 어렵게 살았던 민중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토정비결을 고안한 토정 이지함 선생은 어떤 분일까? 이하에서는 이지함 선생에 대해 알아보고 토정비결에 숨어 있는 이지함 선생의 애민정신을 살펴본다.

성리학의 대가 목은 이색 선생의 후예로 명문가 출신

이지함 선생은 고려말 대유학자였던 목은 이색 선생의 후예로 대를 이어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조선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조선 선조대의 유명한 관료학자였던 영의정을 역임한 이산해가 바로 이지함 선생의 조카가 된다. 이렇듯 대를 이어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고 고위 관료에 제수되는 인사를 배출한 당대 명문가 출신인 이지함 선생은 집안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특이한 인생길을 걷는다.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

점잖은 사대부 집안 출신 인사가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밥을 해먹는 다는지 부랑민과 스스럼 없이 어울린 다는지 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마포 합정동 인근 나루에서 살았는데 당시 그곳은 비가 오면 물이 차는 곳이라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었지만 이지함은 인근 주민을 모아 그곳에 치수대책을 마련하고 땅을 메워 토옥을 짓고 일반 백성들과 어울려 살았고, 흙으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는 의미로 그의 호가 토정(土亭)이 되었다. 지금도 합정동 인근엔 그의 호에서 유래한 토정동이 있고 그 일대 도로도 토정로로 명명되어 있어 아직까지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목민관

당시 사대부들과는 판이한 삶을 살았던 이지함은 지금 견주어도 상당히 늦은 나이인 56세에 이르러 포천현감이 되어 목민관이 되었는데 현감 재직시에도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진력을 다했다. 그리고 곧이어 제수받은 아산현감 시절에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을 최우선의 정책으로 삼아 민생을 강조하고 백성의 자급자족을 강조해 조정에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정책을 많이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그가 올린 장계를 보면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어 그의 애민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지금의 위정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한 토정은 아산현감 재직시 사망했는데 그가 보여준 백성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얼마나 넘쳐나고 진실성이 있었는지 그의 죽음을 알게 된 당시 아산 백성들이 모두 나와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토정비결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지함 선생의 깊은 뜻

이렇듯 백성을 사랑했던 이지함 선생은 앞서 말한 것처럼 토정비결을 지어 일 년 운수를 살필 수 있게 했는데 토정비결에 나오는 내용은 일반인이 알기 쉽게 되어있고 대부분이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것들이어서 일각에서는 토정비결을 지은 이유가 당시 어려운 삶을 살았던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토정비결은 백성을 사랑하는 선생의 깊은 뜻에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싶다.

계사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지금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고 민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이지함 선생의 흔적을 찾아 서울역사박물관에 가 보자. 참고로 토정비결은 서울역사박물관 3층 상설전시 1존에서 만날 수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이용안내
 ○ 관람시간  
    · 3월~10월 - 평일 09:00~20:00, 토·일·공휴일 09:00~19:00
    · 11월~2월 - 평일 09:00~20:00, 토·일·공휴일 09:00~18:00
 ○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 시장이 정하는 휴관일(관장에게 위임)
 ○ 관람료 : 무료 (일부자체기획전과 대관전은 유료일 수 있습니다.)
 ○ 문의 : 20)724-0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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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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