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노면전차를 아시나요?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승철

발행일 2012.01.30. 00:00

수정일 2012.01.30. 00:00

조회 4,618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맞아요, 종로 한복판을 느릿느릿 달리던 전차차고가 바로 여기 있었지요” 동대문 근처 청계천 도로변에 있는 ‘전차 차고 터’ 표지석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70대 할아버지가 불쑥 말을 붙여왔다. 전차를 타보셨느냐고 물으니 “그럼요, 참 많이 탔지요. 전차로 통학하고, 회사 출퇴근도 전차 타고 했는걸요” 한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시내 대중교통은 노면전차가 큰 몫을 담당했었다. 당시엔 차량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종로나 을지로 도로한복판에 깔린 전차 궤도를 따라 “튀~익~ 튀튀튀~익~” 하는 목쉰 경적 소리를 울리며 전차가 달렸다. 그 양쪽으로 드문드문 시내버스와 승용차, 화물차가 운행되었다. 전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도로 한복판에서 타고 내렸으니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게 운행되던 전차가 도로 위에서 사라진 것은 1968년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교통수요가 증가하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많아지면서 전차는 더 이상 대중교통의 명맥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도로 위에서 전차가 사라진 6년 후인 1974년에 서울역과 청량리 사이의 종로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그렇게 사라진 전차의 추억을 더듬어보기 위해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있는 ‘서울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서울 역사박물관 입구 한쪽 도로변에는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전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차 안에는 마침 수원에서 역사박물관 견학을 온 어린이들 30여명이 홍순옥 안내도우미 아주머니의 전차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전차는 여러분처럼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도 이용했고, 아빠들이 출퇴근 할 때도 많이 이용했답니다” 어린이들은 관심 깊게 전차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재미있어했다.

서울전차의 부설은 1898년에 경성(지금의 서울) 일대의 전력공급권 사업권을 취득한 한성전기회사를 통해 계획되었다. 전차의 도입 과정에서는 놀랍게도 고종황제의 홍릉 행차를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교통수단임을 내세웠다고 한다. 황제의 홍릉행차는 다수의 신하들이 수행해야 함으로 재정 낭비와 불편함을 전차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황제의 허락을 받은 이들은 계약이 체결되자 일본인 기술자를 불러들여 공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1899년 5월 17일(음력 4월초파일) 서대문에서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약 8km 길이의 첫 번째 노선이 성대한 개통식과 함께 개통되었다.

처음 보는 전차구경에 가산을 탕진하기도

당시 서울전차의 개통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교토에 이은 두 번째이며, 수도에 부설된 것으로는 최초의 것이었다. 전차는 40인승 차량 8대와 황실전용 귀빈차 1대로 구성되었다. 개통식 후 시승한 고종황제도 신기하고 좋다고 만족해했으며 도성 주민들로부터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개통 후 며칠간은 난생 처음 보는 구경거리에 몰려든 주민들 때문에 운행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특히 생업을 포기하고 전차만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문을 듣고 지방에서 상경하여 전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그 중에는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전차로 인한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차운행이 시작된 후 10일째 되는 날, 종로2가 근처에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전차에 치어 죽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아이의 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전차에 달려들었다. 그러자 일부 주민들이 여기에 합세했다. 당시 도성에는 전차운행 때문에 가뭄이 심해졌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있었다. 이로 인해 도성주민들이 민감해진 것이다. 결국 전차차장과 운전수는 다행히 도망쳐 나갈 수 있었지만 전차는 완전히 파괴되고 불타버렸다.

그러나 대한제국 말기를 거치고 일제의 강점기, 그리고 해방 후에도 전차선로의 증설과 차량의 증가는 계속되었다. 서대문-종로-청량리 구간에서 전차운행이 처음 개통된 후에도 4대문 안을 중심으로 확장 연결되었다. 1910년 이후에는 용산, 원효로, 왕십리, 영천, 노량진 등 외곽지대로 확장되었고, 1941년에는 창경원~돈암동 네거리까지 연장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제성장에 따른 교통량의 증가로 1968년 노면전차는 폐기되기에 이르렀고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68년 11월 29일 전차운행이 완전히 폐기되기 전 운행구간은 11개 노선으로 총 연장은 40,6km였다. 전차를 유치하고 유지 보수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전차차고지는 마포, 동대문, 삼각지, 영등포 등 4개소였다. 처음 운행을 시작했을 당시의 서울전차는 별도로 정거장을 설정하지 않고 지금의 택시처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편의에 맞춰 운행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거장을 두는 일반적인 노면전차 영업 방식으로 바뀌었다. 운임 역시 승차 전에 매표소에서 미리 표를 사 승차하거나, 차장이 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1960년 당시 전차요금은 2원 50전이었다.

서울의 도로 위에서 전차가 사라진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수십 년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전차는 유물로 남은 차량 몇 대와 함께 작은 차고지 표지석만 남아있을 뿐이다. 서울 역사박물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박물관 마당 한켠에 조용히 서있는 전차 한 대를 잊지 말고 따뜻한 눈으로 한번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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