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침소 위에 또 다른 용을 둘 수 없다

시민기자 하이서울뉴스 이승철

발행일 2011.05.06. 00:00

수정일 2011.05.06. 00:00

조회 6,553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위해 건축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건축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인류가 가장 먼저 세우기 시작한 건축물은 삶의 공간인 집이다. 원시시대의 동굴이나 움막 형태를 벗어나 번듯한 집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농경사회로 진입한 후 안정된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해 세우게 된 집의 형태는 기후와 환경, 그리고 문화에 따라 저마다 모습과 구조가 다르게 발전해왔다. 인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가옥의 형태는 편리성 안전성과 함께 시각적인 멋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은 저마다 독특한 형태의 전통가옥을 갖고 있다.

우리민족이 오랜 옛날부터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모아 발전시켜온 가옥 형태가 바로 한옥이다. 전통한옥은 외형이 조금 닮은 듯한 일본이나 중국의 집과는 기능이나 구조, 멋스러움이 전혀 다르다. 민족적인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한옥의 멋스러운 모습은 먼저 지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붕의 재료는 볏짚을 이용한 초가지붕과 얇은 돌조각과 목재를 이용한 너와지붕, 그리고 기와지붕이 일반적이다. 이런 재료를 사용한 지붕들은 저마다 다른 멋이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지붕은 아무래도 기와지붕일 것이다. 지붕의 형태는 대개 ‘우진각 지붕’, ‘팔작 지붕’, ‘맞배 지붕’, ‘모임 지붕’ 등 네 가지로 분류한다.

우리 한옥의 지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멋스러움을 찾아 철쭉과 연산홍이 흐드러진 따뜻한 봄날 창덕궁을 둘러보기로 했다.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귀중한 문화유적지로 국내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서울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려 창덕궁을 향해 7분 쯤 걷자 길 건너 눈앞에 웅장한 돈화문이 나타난다.

우진각 지붕 형태의 돈화문

돈화문은 지붕이 2층 구조로 지붕의 맨 꼭대기를 가로지른 용마루에서 곧바로 추녀마루가 흘러내려 추녀의 귀퉁이 끝에 이르는 구조다. 이런 모습의 지붕 형태를 ‘우진각 지붕‘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지붕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이 직사각형으로 보이는데 창경궁의 홍화문도 같은 형태다. 이런 지붕 형태는 궁궐뿐만 아니라 일반 가옥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다.

돈화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궁궐을 관리하던 관원들이 근무하던 궐내각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홍문관과 예문관, 규장각, 내의원 등이 있던 곳이다. 오른편으로 금천교를 건너면 양쪽에 기다란 회랑이 이어진 ‘진선문’이 역시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팔작 지붕 형태의 부용정

그런데 진선문은 지붕 형태가 돈화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붕을 가로 지른 용마루 끝에서 흘러내린 ‘내림마루’ 그리고 그 내림마루에서 다시 ‘추녀마루’가 이어져 흘러내리는 형태다. 이런 형태의 지붕을 ‘팔작 지붕’이라 하는데 팔작 붕을 정면이 아닌 옆쪽에서 바라보면 양쪽 추녀마루가 흘러내린 모습이 한문자의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보이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팔작 지붕 형태의 건물은 창덕궁 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정전인 ‘인정전’처럼 규모가 큰 건물은 물론, 규모가 아주 작은 후원의 '부용정'과 '사정기 비각'도 같은 형태의 지붕이었다.

맞배지붕 형태의 창덕궁 회랑

세 번째 지붕 형태인 ‘맞배 지붕’은 진선문에서 이어진 화랑들과 인정전 주변을 에워싼 회랑들이 대표적인 건물들이다. 회랑은 기다란 형태의 통로로 폭이 좁아 맞배 지붕이 적합한 형태의 지붕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맞배 지붕은 용마루와 내림마루만 있고 추녀마루가 없는 형태로, 지붕의 면은 직사각형이고 측면의 지붕 선은 사람인(人)자 좌우 대칭형이다. 대체로 폭이 좁은 건물의 지붕 형태이긴 하지만 예외로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같이 폭이 넓고 규모가 큰 건물도 있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서면 멋진 연못들과 아담하고 예쁜 정자들을 만날 수 있다. 부용지에 반 쯤 걸쳐 세워져 있는 부용정은 앙증맞게 작고 귀엽지만 팔작 지붕 형태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마루가 열십자(十)형이며 사면에 출입문이 있는 아주 특이한 모습을 한 정자다.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다른 지붕 태를 보여주는 몇 개의 정자들은 ‘모임 지붕’ 형태다. 애련지 옆에 세워진 ‘애련정’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마루가 없이 내림마루가 꼭대기 꼭지점 한 점으로 모여 있는데 이런 지붕을 ‘모임 붕’이라고 부른다. 옥류천의 ‘상림삼정’으로 불리는 존덕정과 소요정, 그리고 초가지붕인 청아정도 모임 지붕 형태다.

모임지붕 형태의 초가지붕. 청아정(좌), 용마루가 없는 왕실의 내전 대조전(우)

창덕궁 안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지붕 형태는 후원 연못가에 서있는 ‘관람정’이다. 이 정자는 부채살처럼 생긴 지붕 형태에서 비롯된 ‘선자정’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데 일반적인 지붕 형태가 아닌 특별히 변형된 지붕이다.

왕과 왕비의 사적 공간인 대조전도 아주 특별한 지붕이다. 대조전은 지붕 맨 위를 가로지른 용마루가 없어서 조금은 기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유가 매우 상징적이다. 용마루는 글자 그대로 건물에서 용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용으로 상징되는 왕의 침소 위에 또 다른 용을 둘 수 없기 때문에 용마루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역사와 문화, 건축, 예술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자랑스러운 창덕궁은 우리 전통 한옥의 다양한 지붕 형태를 모두 볼 수 있는 전시장과 같은, 참으로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다.

#창덕궁 #돈화문 #한옥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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