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이 자금성보다 작은 진짜 이유?
발행일 2011.03.03. 00:00
국립중앙도서관 이기봉 고서전문원은 우리의 궁궐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나라마다 다른 권위의 표현방식이 건축물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 얼마 전 ‘서울에서 세계문명을 보다’라는 주제로 국립중앙도서관이 강좌를 열었다. 이 전문원은 “서울이란 도시가 어떤 곳인가 잘 알아야 지도가 잘 보인다. 대부분의 문명권 지도는 궁궐을 화려하게 부각시키지만 우리나라 지도는 건축물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산을 부각시킨다. 왜 산을 강조하는가? 풍수 때문이다”라고 서두를 풀어나갔다. 시각을 달리하면 서울이 달리 보인다. 풍수의 관점에서 서울을 보는 방법을 소개한다. 왕조국가에서 수도는 왕의 도시이다. 따라서 왕의 권위를 표현하는 방식이 수도건설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신성한 핏줄을 강조하려 왕의 권위를 하늘의 권위와 연결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연결 방법은 지역과 시대마다 달랐다. 조선은 왕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하여 서울에 풍수를 적용했다. 풍수는 산을 생명력 있는 유기체로 본다. 따라서 왕의 권위와 하늘의 권위를 연결할 때 우리나라에서 산은 중요한 매개체다. |
왕의 권위를 하늘-산-궁의 3단계로 표현
많은 나라들은 평지에 수도를 만들었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일본의 오사카 성은 평지에 세워졌다. 이것은 하늘과 왕을 직접 연결하는 2단계 표현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늘과 왕 사이에 산이라는 매개체를 둔다. 3단계 표현법이다. 세종로 끝에서 북쪽을 보면 하늘-산(북악산. 북한산)-경복궁의 3단계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경관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3단계와 2단계의 구조는 다르지만,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늘-궁궐의 2단계 표현법에서는 건축물이 크고 웅장하다. 최대한 웅장한 느낌을 주려 주변에 높은 자연지형을 피한다. 건축물의 위용으로 왕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려는 목적이다. 하늘-산-궁궐의 3단계 표현법에서는 궁궐 뒤의 산이 크고 웅장하다. 경복궁과 근정전의 규모는 하늘, 산과의 조화를 고려해 결정했다. 여기서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은 궁궐이 아니라 하늘, 산이다. 궁궐을 자금성처럼 웅장하게 짓지 않는 이유다.
경복궁은 세종로에 들어서야 보인다
대부분의 문명권 궁궐은 수도 어디에서나 잘 보이도록 지었다. 시각적인 규모로 권위를 자연스레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간선도로인 숭례문에서 경복궁으로 이어진 길은 직선이 아니다. 숭례문을 지나 경복궁 쪽으로 간 뒤 서쪽으로 꺾었다. 세종로 끝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경복궁이 등장한다. 이것은 동대문 서대문으로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도성 안에서도 경복궁은 세종로에 들어서지 않는 한 보이지 않도록 도로를 설계했다. 그 이유는 하늘-산-경복궁의 3단계 상징적인 경관을 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시각적 비율이 세종로 끝에서 바라본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도성의 핵심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다른 기능들이 배치되고 간선도로망이 짜여졌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 종묘와 사직이다. 사직은 토지신과 곡식신 등 땅의 대표신에게 제사하는 곳이므로 하늘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지 않았다. 종묘는 왕의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다. 현재의 왕뿐만 아니라 왕실과 왕조 전체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곳이어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위가 표현되어야 하는 제사터다.
종로에서 종묘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바라보면 세종로 끝에서 바라본 것과 구도가 동일한 하늘-북한산-종묘가 하나가 된 풍경이 나타난다. 다만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건물의 배치와 방향은 경복궁과 다르다. 창덕궁 역시 돈화문 길에서 바라보이는 기본 구도는 경복궁과 동일하다. 서울의 궁궐은 산과 하늘과 함께 볼 때 비로소 제 모습이 드러난다. 경복궁으로 진입하는 세종로, 종묘로 진입하는 길, 창덕궁으로 진입하는 돈화문길을 되살릴 때 고려해야 할 점이다. 경복궁과 자금성의 건축물 크기 비교는 부질없다는 걸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롭다.
사진제공: 이기봉(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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