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이어폰이 말을 하네!

시민기자 고은빈

발행일 2010.12.10. 00:00

수정일 2010.12.10. 00:00

조회 2,252

대세는 융합이다. 기술, 산업 등 많은 것들이 융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예술과 기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이 만난다면 어떨까? 9일 해질녘,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금천예술공장 3층에서 예술과 기술의 13일 간의 만남의 서막이 올랐다.

예술과 기술의 조화라니 딱딱하고 차가워 보일 것만 같지만 전시회는 감각적이면서도 따스했다. 전시장 초입을 메우고 있었던 기다란 민들레 같은 조형물들이 제일 먼저 이런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사람들은 작품의 머리 부분을 두드리며 귀를 기울였다. 기자도 궁금해 머리 부분을 두드려 보고는 흠칫 놀랐다.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다른 머리 부분들도 두드려 보았다. 여러 사람들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이 작품은 김동조 작가의 ‘Record of the Capsule’이라는 작품으로,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캡슐에 담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해 커뮤니케이션이나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머리 부분의 캡슐에는 녹음기, 스피커, 사진 슬라이드, 프로젝터 등 다양한 기계 장치들이 들어있지만 그 외형은 딱딱하지 않다. 흔들리는 갈대 같기도 하고, 민들레 같기도 해 외적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자도 빨간 버튼을 누른 뒤 '안녕'이라는 인사를 전해보았다.

그 다음으로 기자를 사로잡은 것은 전시장 한 쪽의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라디오 소리다. 그러나 라디오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저항, 콘덴서 등 전자 부품들만이 가느다란 동선에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리가 났다. 작품 제목은 ‘먼지’, 이 작품의 작가인 김진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먼지가 떠다니는 것을 보고 먼지에 잠시 빠져들게 되었고, 그 순간 먼지와 교감, 소통하는 느낌이 떠올랐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 느낌이 다시 생각났고, 먼지의 감성을 다시 느끼기 위해 드러나지 않던 전자제품의 내부 구조, 전파를 끄집어내 재조립했죠. 먼지의 감성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작품을 살펴보니 작은 전자부품들이 먼지처럼 느껴졌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었다.

기술의 집합체인 기계를 통해 현대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작가도 있었다. 바로 ‘백색표정’의 장성욱 작가였다. 이어폰들이 콩나물처럼 꽂혀있다. 그리고 그 이어폰들은 가까이 다가가야 들릴 만큼의 소리를 내고 있다. “이어폰은 말을 한다는 모티브로 만들었어요. 상자 위에 무수히 꽂힌 이어폰에 다가가면 소리가 끊기죠. 상호작용, 소통의 단절입니다. 일정 수준의 관계만을 요구하고,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이 이어폰은 현대인과 비슷하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생동감이 없고, 똑같으며, 여러 소리를 하다가, 누군가 소통하기 위해 다가오면 소리를 꺼 버린다. “다가서는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무표정하고, 경계한다는 뜻을 잘 표현하기 위해 ‘흰색’ 이어폰을 골랐고, ‘백색 표정’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전시장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안경을 쓰고 그림을 감상 중이었다. 호기심에 기자도 직접 체험해보았다. 무채색의 해바라기와 보랏빛 나비가 등장한다. 모니터를 터치하면 나비가 그 부분으로 날아가기 시작하면서 해바라기의 빛깔이 채워진다. 해바라기는 본연의 색을 얻으며 일렁이고, 색이 다 채워지면 나비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해바라기의 노란빛 꽃잎은 흩날리며 눈앞을 덮친다. 사람들은 잡힐 것만 같은 환상이 끝난 후 여운에 잠시 말을 잃었다. 기자 또한 잠깐의 침묵 후 이 작품을 만든 김영은 작가를 만났다. “저는 사실 예술과 기술과의 결합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기술은 뭔가 차갑게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서 ‘기술이 예술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쉽지는 않았지만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기술 속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발견해서 기쁘고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이 작품들은 미래 사회를 잠시나마 보여주는 것 같다. 기술과 감각, 감성의 융합, 따뜻한 기술이 함께하는 사회, 작가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미래 사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흥미로울 이 전시회를 적극 추천한다. 잠들어있던 어른들의 감성과 호기심을 일깨우기에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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