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의 거리에서 프랑스를 만나다
발행일 2010.11.15. 00:00
구로구의 거리에서 프랑스와 한국의 주민이 화합하고 소통하고 교감을 나누는 장이 마련됐다. 구로구 자매도시인 프랑스의 이씨레물리노 시와의 문화교류를 통해 수준 높은 프랑스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제3회 프랑스문화축제가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이씨레물리노 공원(구로아트밸리 앞)과 구민회관, 신도림역, 구로역, 오류역 등 구로구 일대에서 개최됐다.
프랑스 문화축제는 2006년에 처음 열렸으며, 2008년에 이어 올해 3회째다. 해외에 대한민국과 구로 알리기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구로구는 프랑스 이씨레물리노 시와 협약을 맺고, 해마다 번갈아가며 상대국가의 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프랑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와 문화공연이 다양하게 마련됐는데, 문화공연으로는 도미니크 우다르의 꼭두각시 인형극 ‘빠독스’, 코믹연극인 ‘빠사쥬 데졍부아떼’, 무용수들이 줄을 가지고 공연하는 ‘비드아꼭데’, 르큐브 작품전시전, 프랑스 락그룹 ‘요르단’과 ‘23H17'의 락페스티벌 등이 펼쳐졌다.
첫날 개막식에서 이성 구로구청장은 2002년 프랑스 이씨레물리노 시에 직접 가서 자매결연을 했는데, 그 때 ‘이씨가 이씨에 왔다’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로 개막인사를 열어 구민회관 식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씨레물리노 시(市) 시장의 영상인사와 무대에 오른 부시장의 인사 역시 마치 한 집안 사람처럼 친근하여 식장은 사랑방 같았다. 개막식 이전에 이미 ‘비드아꼭데(허공과 하나되어)’를 구로역에서, ‘빠독스’를 오류역에서 관람했기 때문에 개막식장에서 만난 프랑스 관계자들과도 익숙해졌다.
그밖에도 13일 구로근린공원에서 열리는 ‘이씨레물리노 시의 날’ 선포식에서는 지역주민과 국내거주 프랑스인이 참여하는 와인파티가 열렸다. 구로근린공원에서는 축제 3일간 11개의 부스에 캐리커쳐, 화장품, 초콜릿, 와인, 바비큐 등 프랑스의 생활과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조금도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13일 영서중학교에서는 한국과 프랑스의 어린이 및 어른이 축구경기를 하며 함께 땀 흘리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12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구로역에서 열린 ‘비드아꼭데(허공과 하나되어)’는 3명의 무용수가 20m 상공에서 창조해낼, 존재와 부재를 관통하는 공중에서의 대화가 구로의 창공에서 무한한 확장과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비행기까지 자연스럽게 배경이 돼줬다. 광장에 쭈그리고 앉은 어린 꼬마들의 환호와 탄성으로 땅과 하늘이 하나 됨을 느끼며, ‘유형과 무형의 어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연출자의 말을 떠올려 봤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시선을 끌었고, 매스컴에서 관심 갖고 보도했던 것은 도미니크 우다르의 '빠독스' 퍼포먼스였다. 서울광장에서 첫 선을 보이고, 구로구에서는 3일 연속 장소를 옮겨 다니며 5회나 관객들과 함께하여 흥미롭고 정겨웠다. 역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내리는 주민들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하고, 광장 조각 작품을 깨끗이 닦아주고, 승용차의 먼지를 닦고, 차를 밀기도 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처음에는 갸우뚱하며 피했던 주민들은 말이라도 걸 것처럼 가까이 가기도 했다. 오히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은 할로윈데이 때 무서운 가면을 쓰고 축제를 해봤기 때문인지 거부감 없이 다가가며 킥킥거렸다. 빠독스에 대해서는 사전에 알았기 때문에 마치 어린 시절 서커스단이 출몰하여 잔칫날마냥 뛰어다니며 좋아했던 것처럼 그들을 뒤좇았다.
빠독스(PADOX)는 ‘괴물’이라는 뜻이다. 괴물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상징한다. 우다르가 빠독스를 기획할 당시, 프랑스에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이상한 외모, 이상한 말, 이상한 문화특성을 지닌 이들 이주노동자들을 자기네보다 못한 미개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이들과 함께 하기를 거부한다. 우다르는 이런 프랑스인들의 마음이 괴물과 같다고 생각하고, 모습이 이상하지만 더 인간다운 빠독스를 만들어낸다. 괴물 모양을 한 그들은 오히려 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고(빠독스는 늘 얼굴을 닦고, 손을 닦고, 앉을 때도 손수건으로 의자를 턴다), 예의 바르며(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감사할 줄 안다. 심지어 사진을 찍어준 카메라 기자에게 감사의 의미로 렌즈를 닦아주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한다(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함께 어울리고자 한다). 이렇게 귀엽고 친근한 괴물이 또 어디 있을까.
프랑스 최고 권위의 서커스팀인 ‘레자뽀스트로페’의 한국 최초 내한공연인 ‘빠사쥬 데졍부아떼(소란스런 행인)’는 익살스런 거리공연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3회 공연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한산했다가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역으로 가는 사람들, 한눈 팔다 약속시간 잊은 것은 아닌지……. 역시 최초 내한공연이면서 단 한 차례만 보여줬던 ‘여인 상주(上柱)들의 춤’은 이번 프랑스 축제의 피날레인 것 같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 상주(喪主)로 알고, 달빛까지 분위기를 잘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윗 상(上)'에 '기둥 주(柱)'자가 들어간 상주였다. 그래서 건물이 통째로 무대가 됐나보다. 반달이 떠있는 어둑한 저녁시간에 구로아트밸리 건물 벽, 줄 위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는 ‘벽에 투영된 영상과 공중에서의 배우들의 실루엣이 몽환적인 분위기어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킬 것’이라는 해설처럼 관객들은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박수갈채를 수차례 보냈다.
주말 사흘 동안, 평소 가보지 않았던 동네까지 찾아가 프랑스 길거리 문화에 동참하여 함께 즐기고, 젖어보는 동안 어느 새 프랑스와 친해지게 되었다. 여고 3년 동안, 그리고 대학 교양과정에서조차 제2 외국어로 불어를 했음에도 지금껏 프랑스 사람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축제에서는 머리가 새하얀 빠독스의 연출자 도미니크 우다르 씨, 체구가 건장하고 편안해 보이는 이씨레물리노 시 부시장, 장비들을 꾸리는 프랑스인 기술자들, 배우들, 와인에 훈제연어와 치즈 카나페를 정성스럽게 내놓은 인심 좋아 보이는 아저씨, 나이든 사람들도 많이 찾는 크레이프 전문점 라쎌틱 주방장, 종일 따라다녀 배고프다고 했더니 크림수프를 리필해 준 청년 등 프랑스 사람들이 모두 가깝게 느껴졌다. 축제란 이런 것이 아닐까? 축제가 열렸던 사흘은 참 여유로웠다. 바로 옆에 있는 프랑스에 발을 푹 담그고, 다음 해에 펼쳐질 새로운 프랑스 문화를 기대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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