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자체가 작품인 전시
발행일 2010.11.10. 00:00
유난히 단풍이 짙게 물든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벌써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을 싹싹 비로 쓸고 있어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움마저 감돌지만, 화려하게 도색도 안하고 오래된, 묵은 건물냄새가 나서 더 고풍스럽고 정감이 간다. 지하철 타러가는 길에, 시장가는 길에 언제든 시간만 내면 불쑥 들어가 귀한 전시물과의 조우가 가능하다. 이번 전시 역시 뜻밖에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들을 보여주는 전시인 '서울의 초상 The Portrait of Seoul'전이다.
31명의 작가들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여 만들어진 서울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추억을 조명해 보는 서울의 초상이 양화, 한국화, 미디어아트, 판화, 조각, 공예, 사진 작품 등 46점으로 표현된다. 이번 전시회는 서울의 풍경과 추억, 2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서울의 초상을 조명해 본 것이다. 이것은 남서울분관이라는 2층 건물의 특성을 바탕으로 1층에서는 회색빛 대도시이면서도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을 전시하고, 2층에서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올려봄직한 추억들을 제시한다.
1층 전시실 '서울의 풍경'에서는 서울의 아침, 서울의 산, 서울의 빌딩, 한강 등 다양한 서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안개 자욱한 서울의 아침, 봄에 바라본 고 건축물, 아름다운 한강변 풍경과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길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 시절의 애환을 잘 담아내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의 '피'로 상징되며 생명 순환의 원천인 한강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볼 수 있는 미디어아트도 선보인다. 김명식, 김원, 박득순, 박상옥, 심철웅, 안석준, 오병욱, 오승우, 유근택, 이마동, 이수억, 최낙경, 최덕휴 등 13명의 작가들이 유화와 수묵화 등으로 서울의 풍경을 보여줬는데, 심철웅은 '한강 in Red'라는 7분 30초짜리 미디어 영상물을 설치해 놓아 마치 한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은, 한강이 마당에서 넘실대고 있는 것 같은, 역동의 한강을 실감나게 했다. 그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한강은 오래전부터 서울의, 서울시민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자리하며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정신적 평안과 위로를 받는 장소로 곁에 있어왔다는 작가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2층 전시실 '서울의 추억'에서는 1950~1970년대의 서울모습을 촬영한 사진작품을 비롯하여 서울의 추억이 어린 정경을 다양한 매체로 담아낸다. 노점상, 빨래터 등은 그 시절 가난했던 우리의 추억을 애잔하게 보여준다. 한때는 기피시설로 전락하기도 했다가 복원공사 이후 시민의 사랑을 받게 된 청계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판잣집들, 또한 봉천동, 신림동 등을 소재로 하여 어제의 우리 동네 초상을 화폭에 담은 작품들도 정겹게 와 닿는다. 김관수, 김상섭, 김승연, 원종철, 이병용, 이은주, 전뢰진, 전민조, 정재호, 정직성, 조승환, 최호철, 한애규, 한영수, 홍순태, 안세권, 그리고 일본인 쿠와바라 시세이 씨의 작품들까지 아주 다양하게 선보였다.
전뢰진의 ‘정’, 조승환의 ‘가족’은 조각 작품이며, 한애규의 ‘한양 옛지도’와 김관수의 '(서울) metro.seoul.kr'은 작품재료부터가 판이하게 다른 작품이어서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다. 안세권의 9분짜리 비디오 작품 ‘청계 Scape'는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청계고가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여주는 단순한 작품이지만, 복원 전 청계천의 난개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사라진 현장의 추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한영수의 ‘중랑천 빨래터’ 사진은 50~60년대 전국 어느 냇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고, 한영수의 '물지게' 역시 물이 귀해서 고지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작품이어서 향수에 젖게 했다. 홍순태의 ‘서울 신세계백화점’과 전민조의 ‘롯데백화점’ 사진에 동시에 등장하는 각선미는 미니스커트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었다. 정재호의 '아! 청계천'은 당시 지방에 살아서 도저히 상상해 볼 수 없었던 청계천의 전체를 이제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은주의 '퇴색 남대문'은 숭례문 화재 때문에 더욱 값져 보였고, 울컥한 마음으로 그립게도 했다.
100여 년 전 준공되어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재탄생된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1층과 2층 11개의 전시실을 오르내리는 공간들마저도 마치 작품 속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곳의 초겨울로 가는 풍광에 잠시 머물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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