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간이역에 바침

admin

발행일 2010.07.08. 00:00

수정일 2010.07.08. 00:00

조회 2,097

2006년 서울시 근대 건축물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화랑대역이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는 올해 말경 폐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랑대역은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의 정취를 느끼려는 사람들이 서운함과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찾던 곳이다.

화랑대 역사 안엔 늘 잔잔한 음악이 흘렀고 악보가 펼쳐져 있는 피아노와 기타가 있어 이용객 모두가 즉흥연주자가 되기도 했다. 책이 가득 든 책장과 푹신한 의자가 있고, 두 개의 나무 원탁 위엔 즉석에서 물을 끓여 기호에 맞는 차를 먹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은 화랑대역의 이러한 정취를 한껏 느끼려 방문을 했고, 그 감흥은 방명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화랑대역의 명물이 되어버린 방명록은 이미 백장씩 묶어 다섯 권을 넘기고 있었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천천히 들춰 보노라면 다녀간 이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정겨운 기록물들이었다.

화랑대역의 멋스러운 혹은 소소한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다시 한 번 화랑대역 맞이방을 떠올리게 했다. 육군사관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는 간이역 화랑대역으로 가는 길은 늘 호젓했다. 키 큰 플라타너스는 뜨거운 한여름의 햇빛을 가려주느라 잎을 더욱 풍성하게 키우는 중이었고, 그 그늘진 가로수 길을 따라 얼마간 들어가자 지붕이 비대칭인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전을 알리는 역사 앞 입간판엔 ‘우리가 사랑한 화랑대역’이란 글귀가 먼저 반겼고, 지역주민이면서 인근 대형마트 강좌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회원들이 다양한 모습의 화랑대역을 사진에 담아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37개의 이젤 위에는 계절별 혹은 시간대별로 화랑대역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 그 안의 사람들 모습, 그리고 선로와 들풀 등 소박한 모습들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작은 스냅 사진 140여 장도 함께 전시되어 화랑대역 구석구석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전을 준비한 양상우 강사는 “우연히 회원들과 함께 화랑대역으로 출사를 나왔었는데 권재희 화랑대역장님께서 이곳을 사진에 담아 전시회를 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고, 160여 일 후면 문을 닫게 되는 간이역의 모습을 오래도록 담아 두고 싶은 마음에 회원들과 사진을 찍게 됐다”며 전시회를 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성옥현 회원은 “이 풍경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전시회를 앞두고 많이 서운했어요. 엎드려서 찍거나 누워서 찍기도 했어요. 머리로, 눈으로 담아두지 못하는 것들을 담아 놓고 싶었거든요”라며 없어지게 될 간이역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20여 명 회원들 모두는 사진전을 통해 자신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화랑대역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냈다.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를 모습들에 카메라의 렌즈를 맞추고 생기와 의미를 불어 넣었던 이들의 애정으로 화랑대역은 다시 한 번 소중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사진전은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계속 되었고, 주말인 4일 저녁엔 회원들과 지인들 50여 명이 화랑대역 앞마당에 모여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웃한 군부대에서 간이 의자가 공수되어 앞마당에 펼쳐지고 속속 사람들이 모였다. 해가 넘어간 고즈넉한 여름날 저녁 간이역 화랑대역엔 통기타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졌고, 피아노의 선율이 화랑대역을 감쌌다. 화랑대역의 면면을 담아낸 사진반 회원들뿐 아니라 음악회에 참석한 지역 주민들은 간간이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벗하며 화랑대역에서 오래 남을 추억들을 만들고 있었다.

● 미니 인터뷰 … 권재희 역장

우리나라 어느 철도역이 이리 소박하고 아름다울까. 이런 모습을 갖추기까지 누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까. 화랑대역을 찾을 때마다 애정으로 역사를 가꾸는 역장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더욱 궁금하게 했다. 사진전이 개최되던 일요일 오후 평상복 차림의 권재희 역장은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손에 들고 역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녁에 있을 음악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나눠 먹을 것이라며 말이다.

그가 화랑대역에 오게 된 것은 작년 9월. 부임해 온 화랑대역은 남춘천행 3번, 청량리행 4번 등 하루에 7개의 열차만이 정차하는 한적한 간이역이었다. 하루 이용객 20~30여 명인 화랑대역이 철도의 수입을 올리지는 못해도 간이역으로서 간직한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그는 아름아름 찾아오는 이들이 마냥 고마워서 역사 한 쪽에 100원 찻집을 시작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차를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화랑대 직원 일동’이라는 글귀와 함께 통나무 테이블에 물을 끓일 수 있는 포트와 커피와 녹차, 물 그리고 컵을 준비했다. 반향은 컸다. 실제로 남춘천, 김유정역, 강촌, 백양리, 경강, 가평, 상천, 청평, 대성리 등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에 내리는 이들과 동네 주민들,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작가들에게 화랑대역의 100원 커피는 간이역의 정취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는 지인을 통해 피아노도 기증 받아 역사 안에 놓았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뿐만 아니라 방명록을 비치해 방문자들의 방문사연과 감흥을 방명록 안에 고스란히 담아 놓고 가게 했다. 지난 가을엔 떨어진 낙엽을 태우며 시낭송회도 열었다. 화랑대역을 알리기 위해 철도 동호회에 가입해 화랑대역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화랑대역에 대한 그의 애정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간이역 화랑대역에 계신 분들은 꽃을 심으신다. 그 꽃을 보고 벌과 나비가 찾아온다. 그리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화랑대역을 발견한 건 감동이었다. 밥 때라며 밥 먹고 가라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다. 큰 오빠가 엄마 집을 지키는 친정 같다’ 등의 사연으로 남아 있다.

문의 : 화랑대역 02) 978-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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