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간다] 미술관 가는 길
admin
발행일 2008.09.16.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
| |
이정향 감독의 98년 작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보면 두 남녀가 한쪽은 미술관으로 또 한쪽은 동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은 갈림길처럼 두 장소는 상반된 느낌을 갖지만 대상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돌아온다는 점에선 결국 같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원을 가는 날은 사이다와 김밥을 먹으며 온종일 즐겁게 뛰어놀던 추억이 잔향처럼 남아있다. 이제는 사자가 무섭지도 코끼리가 산만큼 커 보이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동물원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어떤 추억으로 다가오는가? 아무리 뒤져보고 복기를 해보아도 어린 시절 미술관을 갔던 기억이 없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미술관을 찾는다. 더욱 부러운 것은 미술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고흐나 렘브란트의 작품을 네덜란드나 파리가 아닌 바로 서울에서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즐기는 것은 틀리다. 지금은 부모의 손을 잡고 미술관을 갈지 몰라도 아이의 눈에 뭉크의 그림들이 동물원의 기린처럼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흐가 느닷없이 귀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자화상이라고 그린 고통에 대해 아이의 언어로 아름답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로댕의 지옥의 문 맨 위에서 오늘도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우리는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은 단지 지식에서 그친다. 즐거움이란 지식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만나고 싶어지기에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미술관의 용도이다. 어린 시절 동물원에 가졌던 판타지처럼 미술관도 그런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야한다. 미술관을 동물원처럼 즐겁고 행복한 놀이터로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할 필요도 매진을 걱정하며 인터넷 예매를 서두를 필요도 없다. 화가의 연표를 외우고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더 어려워지는 작품해설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좋다. 고전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즐거움의 대상으로 미술을 보게 된다면 그 순간, 무겁던 미술관은 이국의 밀림 속 원시림이 될 것이다. 미술을 좀 안다고 자부했던 이들도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해왔던 우리 안의 지식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그런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현대미술은 참으로 난해하고 어려운 정의 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실상은 가장 쉽고 접근하기 용이한 것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먹고 버린 깡통 통조림을 가져다 단번에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앤디 워홀이 증거이다. 현대미술이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 가득한 생명 속에서 미술관에 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결국은 고전까지 제 발로 찾아가게 된다. 의무감으로 가던 미술관 속 죽은 고전이 진정 벅찬 감동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바로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 아이들은 성장해서 분명 미술관을 찾아간다. 동물원에 가는 설렘을 안고서 말이다. 인사동에 있는 골목마다 작은 갤러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속에 수많은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뿜어내고 있다. 일주일 내내 새로운 전시회가 열린다. 굳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가서 보면 된다. 자세히 보면 한 집 건너 크고 작은 갤러리가 문을 열고 있다. 대부분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술관 가는 행위의 가장 큰 매력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일상 속에서 쌓였던 억압들이 자연스럽게 정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 가는 길은 중요하다. 미술관 가는 길이 동물원 가는 길처럼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날을 꿈꿔본다. |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