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 약현성당

admin

발행일 2008.06.17. 00:00

수정일 2008.06.17. 00:00

조회 1,944



시민기자 최근모




늦은 오후, 소나기가 내린 거리는 조용했다. 약현성당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에 비안개가 자욱하다. 그 길을 오르고 있자니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경건한 마음이 든다. 물기를 머금은 석축 사이로 초록빛 이끼가 세월의 테를 말해주는 것 같다.

1892년 지어진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사적 제252호다. 성당 근처에 한국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의 집이 있었고,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44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과 가까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므로 이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언덕길 사이로 성당 첨탑만 보인다. 길의 끝에 도착하자 빨간색 벽돌로 쌓아올린 독특한 모습의 성당이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다. 높게 솟은 첨탑을 자랑하는 명동성당과 아기자기한 멋을 자랑하는 덕수궁 근처 성공회 성당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성당 옆에 마련된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옆으로 "드르륵" 미는 미닫이 문이었다. 서양식 외투를 입었지만, 안에 한복을 받쳐 있은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의 조합이 훌륭하다는 것. 조용히 쉬었다가 가기에 좋은 소박한 성당이다. 언덕 위에 숨겨진 듯 자리 잡고 있어 고요하다.

종교의식을 막 끝낸 사람들이 성당 안에서 나온다. 한쪽에서 따뜻한 음료수를 대접하고 있다. 서로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평화롭다. 크게 소리를 내는 이 없이 미소를 나누며 소박한 담소가 이어진다.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왠지 그들과 성당의 느낌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들의 쫑긋 세워진 귀 모양의 아치형 창문과 주위 풍경을 구경하다 열려진 문 쪽으로 다가갔다. 나오시는 수녀님과 살짝 고개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종교의식이 끝난 성당 안은 차분하다.

성당 옆으로 중림동 골목길들이 이어져 있다. 예전 80년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간판 없는 동네 슈퍼와 오래된 문구점,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 한 꼬마 아이가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몰려 있던 아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친다. 숫자를 세는 아이의 속도가 빨라진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을 하면서 노는 아이들이 있는 곳. 중림동 골목길, 그곳에 약현성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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