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그림자, 내시들의 분묘
admin
발행일 2007.10.25. 00:00
시민기자 이혁진 | |
내시 총책인 판내시부사가 내시의 횡포를 따져 물으러 온 판의금부사를 나무란다. 그리고 판내시부사는 내시의 죄를 묻는 것은 판내시부사의 권한이지 의금부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내친김에 판내시부사는 의금부의 비리와 무능을 왕에게 고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이 장면은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왕과 나’에서 내시의 우두머리 판내시부사 조치겸(전광렬 분)이 하는 말이다. 조선시대 위세 높은 내시의 일면을 보여 준다. 조선시대 내시는 원칙적으로 정치에 관여할 수 없고, 오로지 임금을 모시는 일에 종사하는 특수한 직업군을 말한다. 하지만 왕들은 내시를 앞세워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내시들 중 일부는 왕과의 친소에 따라 왕명을 받들고 3정승과 6조를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고 전한다. 다소 드라마적 요소가 있지만 사극 속에 그려지는 내시들의 생활상과 신하들 간의 권력 암투가 흥미를 더하고 있다. 실제 역사상 내시의 신분이지만 충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다. 비운의 단종을 몸으로 막아내며 세조의 칼을 받은 내시들을 비롯, 연산군의 충직한 내시였지만 직언을 한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는 김처선의 일화는 유명하다. 문제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내시들은 죽어서 어디에 묻히며 그들도 자식과 처를 두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극에서도 나오지만 품계 높은 내시들은 비록 거세된 남성이지만 부인과 자식을 두어 대를 잇는다. 그리고 자식은 아버지 내시를 위해 묘를 만들고 제사도 드렸다. 다만 그들은 일반 신하와 달리 그들만의 분묘를 집단적으로 형성했다. 이 점에서 도봉구와 노원구 경계에 있는 초안산 내시 분묘군이 최근 눈길을 끌고 있다. 흔히 내시네 묘로 알려진 이 무덤군에는 내시들의 무덤뿐 아니라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더러 있어 조선시대의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안산은 해발 1백여 미터에 불과한 야트막한 야산으로 거의 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1천여 기 이상의 묘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후손들이 없는 묘지의 특성상 봉분이 훼손되거나 없어진 것이 많다. 그나마 널려있는 문인석 등 각종 비석들이 그 자리가 묘터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로 남아있다. 최근 초안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운동시설을 갖추고 생태학습장 코스를 개발하는 등 근린공원으로 단장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명소로서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최근 사극 열풍으로 주목받는 왕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내시들의 묘지와 흔적을 탐방해보는 것도 뜻깊은 추억이 될 듯싶다.
|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