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택견 수련터, 감투바위
admin
발행일 2007.10.16.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
“이크~!! 에크~!!” 독특한 기합소리와 함께 택견꾼의 발따귀가 상대의 턱을 날려버린다. 인사동 마당에서 열린 택견꾼들의 시합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택견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앞뒤로 몸을 굼실거리며 춤을 추듯 품을 밟는 택견 고유의 몸짓은 일반인에겐 무술이라기보다 전통예술로서 잘못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택견의 본 모습을 알게 되면 현존하는 어떤 무술보다 가장 실전적이면서 가공할 파괴력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택견은 보여주기 위한 무술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전무술로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다. 구한말 격동기에 민족의 슬픈 운명을 같이한 조선의 마지막 택견꾼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자. 종로도서관을 지나 인왕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황학정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국궁인들을 쉽게 보게 된다. 황학정에서 산비탈로 좀 더 오르다 보면 낮은 암반들이 나타난다. 발품을 팔아 좀 더 오르다 보면 정상에 작은 평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대한제국 시절 택견꾼들이 수련을 하고 기량을 겨루던 곳이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안내판이 없어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선의 마지막 택견 수련터"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이곳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강제로 외교권이 박탈되던 시기를 기점으로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에 의해 사대문 안에서 무술수련이 금지된다. 택견은 특이하게도 서울을 기반으로 사대문 안에서 주로 수련되었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다. 당시 아이들이 하던 택견을 ‘애기택견’이라 했는데 골목에서 택견을 하던 꼬마들을 순사들이 잡아가는 소동이 벌어지곤 했으니 얼마나 당시의 분위기가 냉랭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보름이나 단오 때 씨름을 하듯 택견은 사직골, 필운동, 누상동 등을 대표하는 윗대 무인들과 왕십리, 살곶이다리 쪽을 대표하는 아랫대 무인들로 나뉘어 마을 대 마을끼리 대결을 하곤 했다. 철저한 실전 무술이었기에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살수 또한 주 기술로써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상자는 물론, 죽는 사람도 속출했다고 한다. 일제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택견수련을 금지했지만 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시의 택견꾼들이 1910년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의병활동에 적극 가담했기 때문이다. ![]() 안내판 뒤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 보니 이정표도 없이 수풀만 무성한 이곳에 당시의 택견꾼들이 남긴 발자취가 남아있다. 조선시대 관료들이 쓰던 감투와 닮았다 해서 붙여진 감투바위 표지석에는 "구한말 택견꾼들이 국력이 기울어 가던 조선의 심장, 서울 장안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장소..."라고 쓰여있다. 그렇다. 감투 바위에 올라가 보면 바로 앞 경희궁과 경복궁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다. 감투바위에 여기저기 움푹 패고 들어간 흔적들이 쉽게 눈에 띈다. 단단한 바위가 마치 떡 주무르듯 곰보가 되어 있다. 처음 볼 때는 머리를 갸웃거릴 수도 있지만 발을 그곳에 대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와 싸우게 될 때 "밟아버리겠다"라는 격한 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택견의 기술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택견은 타격기술도 발전되어 있지만 다른 무술과 독특하게 구별되는 것이 밟기 기술이다. 앞뒤로 굼실거리는 특유의 몸짓도 이 밟기 기술을 강하게 하기 위한 동작들이다. 상대의 허벅지를 밟고 등을 때리는 전광석화 같은 기술이나 오금을 밟아 상대를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 밟기 기술은 실전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택견꾼들은 감투바위를 발로 밟으며 발심을 억세게 길렀다. 감투바위에 남아있는 이 흔적들은 오랜 세월 택견꾼들이 수련을 하며 만들어 놓은 흔적들이다. 감투바위에 올라 경복궁을 훑어보다 저 멀리 광화문 길가로 우뚝 솟은 빌딩들을 바라본다. 일제강점기는 끝났지만 하늘로 솟구치며 발질하던 인왕산 호랑이들의 모습을 더는 이곳에서 볼 수 없다. 비밀스럽고도 미스테리한 그들의 자취는 이렇게 감투바위에 남긴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여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바위에 새겨진 100년 전 택견 고수들이 남긴 흔적에 발을 대보고 기합 한번 넣어보자. 아랫배에 꽉 힘을 주고 "이크~!! 에크~~!!" 세상의 묵은 때를 한 방에 날려버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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