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처럼 작고 친근한 공원들

시민기자 이승철

발행일 2010.11.09. 00:00

수정일 2010.11.09. 00:00

조회 4,366

옛날 가난하고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시절에 공원이란 그저 사치스러운 공간이었다. 생산과 관계없이 놀고 있는 땅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쩌다 마을 근처에 있는 공원에는 꽃과 나무 대신 여기저기 상추나 고추 등 채소를 심어 가꾸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언제부턴가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푸른 숲으로 뒤덮인 공원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공원은 교통소통의 기능을 담당하는 도로와 함께 쌍벽을 이룰 만큼 대도시 환경과 삶의 질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도 옛날에는 없던 대형공원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공원으로 올림픽공원과 월드컵공원을 꼽을 수 있지만, 근래에 조성된 서울숲 공원이나 북서울꿈의숲 공원도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답고 멋진 공원이다. 그러나 새롭게 조성된 도시가 아닌, 우리 서울처럼 오랜 역사가 깃든 도시에서 대형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원조성에 수반되는 엄청난 예산과 드넓은 토지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대형공원이 아닌 주택지나 아파트 단지 그리고 사무실 근처에 접근하기 좋은 작은 쉼터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쌈지공원’이다.

'쌈지'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종이나 헝겊, 가죽 등으로 조그맣게 만들어 담배, 부시 따위를 담는 용도로 사용했던 작은 주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주머니처럼 작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쌈지공원은 외국의 소공원을 지칭하는 포켓파크(Pocket Park)를 순수한 우리식 표현으로 만들어낸 이름이다. 마을마당, 또는 어린이공원 등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쌈지공원‘이 등장한 배경에는 서양식 소공원의 좋은 점을 수용하면서 우리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담으려는 배려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쌈지공원들은 도심의 빌딩 숲 사이 작은 공간들과 산동네 한복판, 그리고 도로 옆 공터나 새로 개발된 아파트 단지에 어김없이 만들어져 있다.

옛날에는 볼품없이 성냥갑처럼 단순하게 주거공간만을 위주로 건설되었던 아파트 단지들이 근래 들어 도시디자인 개념이 도입되면서 스카이라인이 달라진 것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개념도 새롭게 달라졌다. 예전에 보아왔던 삭막한 개발로 인한 회색 콘크리트 도시가 아닌 친환경 도시로의 탈바꿈을 새로 조성된 대형공원들과 더불어 쌈지공원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쌈지공원은 좁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공원을 만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토지이용의 극대화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매우 효율적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더구나 도심의 빌딩이나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를 아기자기하게 꾸며주어 도시 경관의 향상과 생활의 편리성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옛날에는 숨 쉴 틈조차 없이 빽빽했던 도심 빌딩 숲들 사이와 주택지, 그리고 아파트단지에 작고 희미하지만 작은 숲과 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회색빛 시멘트로 뒤덮였던 현대 도시인들의 삭막하고 답답한 일상, 그 숨 막혔던 공간에서 여가와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쌈지공원은 한 마디로 도시생활의 차갑고 딱딱한 감성을 조금은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도시 속의 작은 녹색공간인 것이다.

특히 근래 몇 년 동안 쌈지공원이 더욱 많이 늘어나고 기존 공원들도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씨가 서늘한 오후, 서울시내 몇 군데 쌈지공원을 찾아보았다. 강북구와 성북구 일대에서 만난 쌈지공원들은 그늘을 드리운 나무들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서늘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은 놀이시설에서 매우 즐거운 표정이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온 꼬마들은 근래 새로 만들어 놓은 놀이시설이 재미있다고 좋아한다. 쌈지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쌈지공원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할머니·할아버지들도 군데군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간선도로 옆에 있는 쌈지공원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 일과에 바빴던 근로자 한 사람이 잠시 숨을 돌리며 쉬고 있었다. 여름동안에는 많은 노인들이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아파트 단지 쌈지공원은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건물에 햇빛이 가려 그늘을 드리운 탓이기도 하지만 날씨가 서늘하여 노인들이 앉아 있기에는 너무 춥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 안에 마련된 운동시설은 동네 아주머니들 몇몇이 이용하고 돌아간 후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모두 돌아오고 엄마·아빠들이 퇴근하여 저녁을 먹은 후 초저녁이 되면 쌈지공원은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공놀이와 엄마들의 배드민턴 놀이가 열기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과 어린이들의 쉼터와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나, 찾아온 사람 없이 텅 빈 곳이나, 쌈지공원은 도심의 늦가을 햇살에 곱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인근 주민들과 지나가던 시민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쌈지공원은 우리 서울 시민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정다운 작은 쉼터요 놀이터다.

#쌈지공원 #포켓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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