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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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7.01.11. 00:00

수정일 2007.01.11. 00:00

조회 1,781



시민기자 이혁진

도산공원이 조성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야말로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풍상의 세월 속에 공원도 변모를 거듭했다. 그간 동상을 교체했고 도산의 어록과 주옥같은 말씀들이 비석형태로 공원곳곳에 들어섰다.

이 뿐 아니다. 공원의 조경과 수목들이 연륜을 더하며 볼거리와 배경이 좋아져 야외결혼 촬영명소로도 소문이 났다. 도산공원 개원당시 주변에는 허허벌판이었지만 지금은 공원이 빌딩숲과 대로사이에 끼어있으니 정말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도산공원이 개원한지 25년 만인 도산 탄신 120주년 되는 1998년에 도산 안창호 기념관이 공원 내에 별도로 조성됨으로써 도산공원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그간 도산공원은 여타의 공원처럼 계절에 따라 관람객의 발길이 많았다가 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념관이 들어섬에 따라 이제는 도산공원이 명실 공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산 교육장으로서 한 차원 승화됐다는 지적이다. 도산기념관은 도산선생 생전의 유품들과 활약상을 담은 자료와 기록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엊그제 방문했던 기념관은 때마침 특색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미주 이민 1세의 삶과 애환 그리고 희망’이라는 제하의 특별기획프로그램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도산 안창호선생은 민족운동을 위해 해외에서 특히 미국에서의 독립운동과 활동은 지대했다. 임시정부수립과 독립자금지원을 위한 거점이 거의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도산선생의 미주 이민 1세들과의 교류와 연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산이 바로 미주 민족동포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전시물을 통해 도산이 화와이 등 미주 곳곳에 산재한 이민동포들에게 민족의 자부심과 조국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힘을 모으고 단체를 결성하는 등 그의 발자취를 살필 수 있다. 미주 1세대 코메리칸들의 힘겨운 노동조건과 생활상을 몸소 체험하면서 도산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동포들에게 단결을 호소하고 민족애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도산선생은 안타깝게도 조국독립과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8년 일본경찰의 고문후유증으로 서거했다. 하지만 도산의 유지와 활동이 밑거름 돼 조국광복과 정부수립에 초석이 됐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역사기록이다. 도산의 생애와 업적을 도산기념관에서 항시 우리가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위대한 선각자의 말씀과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즈음 도산공원을 찾아 민족과 국가에 대한 도산어록을 한번쯤 음미해보는 연초의 시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도산기념관 안내

▷ 도산기념관 관람시간 : 10:00-16: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관람료 : 무료
▷ 단체관람문의 :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 54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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