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을 찾아

admin

발행일 2006.12.29. 00:00

수정일 2006.12.29. 00:00

조회 1,600



시민기자 이혁진

서울광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바뀌면서 시민들의 시선이 온통 한곳에 집중되는 가운데,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시청 맞은편에 보일락 말락한 팔각정이 홀로 서있다. 유심히 살펴야 볼 수 있는 이 곳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서울시 사적(제 157호)이지만 사실 이 곳만큼 시민의 관심이 부족한 곳도 드물다. 빌딩 숲에 자리한 팔각정은 바로 환구단(원구단이리고도 함)을 지키는 황궁우(皇穹宇)이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환구단의 유래는 오랜 상고시대부터 매년 10월 상순에 둥근 단을 쌓고, 단군께서 친히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세조 10년까지 왕이 친히 하늘에 제사를 주관하는 천제(天祭)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중국은 사대주의 입장에서 천자가 아닌 왕이 천제를 지내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천제는 중단되고 말았다.

고종 때에 이르러 천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상소에 따라 팔도의 명당인 소공동에 환구단을 세우고, 천제 회복과 함께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 즉위의식을 올리며 자주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천황만이 천제를 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환구단을 헐고 이곳에 철도호텔을 지었다. 그 후 그 자리에 조선호텔이 들어서고 환구단의 흔적은 거의 없어지고 팔각정 모양의 황궁우와 석고(돌북)단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제를 올리는 국가의 행사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바라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당시의 관점에서는 환구단의 역사적 의미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구단의 평가가 아무리 퇴색됐을지라도 환구단이 마치 호텔의 뒷 정원쯤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소식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환구단의 원형회복과 천제의식의 복원을 주장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민족의식의 회복과 외세 침탈에 대비하는 역사 바로세우기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환구단이 새삼 우리 민족정기의 산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최근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동북공정 계획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사적과 전통을 보호하고 아끼는 것은 결국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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