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초입에는 지금 벼가 익어갑니다

admin

발행일 2009.09.23. 00:00

수정일 2009.09.23. 00:00

조회 3,524

2008년 9월 세운상가~2009년 9월 도시농장까지, 1년새 이뤄진 녹색 변화

작년 12월 17일, 세운상가 내 현대상가 건물이 헐렸다. 그 자리는 지난 5월 20일 공사가 마무리되어 잔디광장으로 탈바꿈했다. 길이 70m, 폭 50m의 공간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세운 초록띠 공원’이라는 예쁜 이름도 붙었다. 이후 잔디광장은 공연과 전시회가 몇 번 열리더니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또 한번 변신하여 계절에 따라 벼, 보리 등을 재배하는 ‘도시 농장(City Farm)’으로 바뀌었다.

기자는 세운상가가 허물어지기 전인 작년 9월 17일, 1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이곳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기록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되는 올 9월 17일, 이곳을 다시 찾았다. 우중충한 색깔의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녹색광장은 다시 찾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듯했다.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운상가 건물 앞은 노점상과 이곳을 오가는 시민들에다 상가로 드나드는 차들로 무척 혼잡한 모습이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만 해도 종로4가와 퇴계로4가를 공중 보도로 연결하는 건축물로 서울을 찾는 사람들의 관광코스였고,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서 한때는 호황을 누렸던 시절이 있었지만, 기자가 찾아 갔을 때의 세운상가의 모습은 과거의 명성과 영화는 찾아 볼 수 없이 쇠락한 모습으로 힘겹게 서 있었다.

“1987년에 용산전자상가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되었지. 그때는 돈도 많이 벌었는데 건물이 사라지게 되어 한편 섭섭하기도 하다네!” 곧 건물이 헐리게 되어 많은 상가가 문을 닫았지만, 혹시라도 찾아 올 단골손님이 헛걸음을 할까봐 가게 문을 열었다는 한 상점 주인은 장사가 예전만 못한 세운상가가 없어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원함도 있지만, 그래고 섭섭한 마음이 더 크다고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세운상가의 공중 보도를 걸어보았다. 과거의 유명세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오가는 사람도 좀처럼 만날 수 없고, 팔려도 좋고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듯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은 손님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난간에서 보이는 상가의 지붕은 말이 없지만 카메라에 담겨진 모습은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아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1년 만에 찾아간 세운상가의 모습은 완전히 새롭게 변해 있었다. ‘도시 농장’에 심어진 옥수수, 수수, 벼, 메밀, 해바라기 등이 가을이 되면서 풍성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네. 해바라기는 해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잖니? 해바라기 속을 보렴. 열매가 가득 차 있지?”

“고향이 농촌인데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벼와 수수, 옥수수를 보니 너무 반갑네요. 고향에서의 수수도 이곳의 수수처럼 여물어 가겠죠? 계절에 따라 농작물이 심어진다고 하던데, 고향이 그리울 때면 이곳을 찾아와 향수를 달랠 생각입니다.” 양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신사가 도시농장의 매력에 푹 파진 모습으로 한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옥수수를 만져보기도 하고 참깨 꽃의 향기에 취한 모습이었다.

‘도시농장’은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법을 부리는 듯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어머니는 아이에게 벼와 메밀 등을 설명해주는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었고, 고향이 시골인 시민들은 도심에서 만난 농장이 신기한 듯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곳 벼에도 잡초가 있네!”라며 고향에서 했던 대로 벼 사이의 잡초를 직접 뽑아주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보면서 나머지 구간의 완성을 기다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민기자/정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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