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주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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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6.11.02.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가을이 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이 노래는 시인 박인환이 명동의 한 주점에서 즉석에서 지은 시(詩)에 함께 있던 작곡가와 가수가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불러주자, 곧 사람들의 입과 입을 타 이내 명동의 샹송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가면’이란 명곡은 이렇게 우연하게 탄생을 한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처럼 박인환은 세상을 오래전에 떠났고, 그의 시만이 가을이면 우리의 정서를 그리움으로 가득 채운다. 궁금해졌다. 1950년대 중반 그가 있었던 명동의 술집이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감성이 물씬 풍겨 나오는 시를 즉석에서 지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바로 딱 들어맞는 곡을 붙여주는 작곡가와 노래를 즉석에서 불러주는 가수가 함께 있었던 곳. 아직 있다면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미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말이다. 몇몇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인 작곡가는 이진섭이였다고 한다. 자리를 함께 한 가수 나애심이 이곡을 불렀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은성(銀星)이라는 술집에서였다. 은성은 1950~60년대 명동의 예술인들이 자주 찾던 주점이었다. 바로 옆에 국립극장이 있어서 이곳의 연극인들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 주점의 주인은 탤랜트 최불암씨의 어머니인 이명임씨가 운영을 했는데 주인의 넉넉한 인심 때문이었는지 많은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가을의 석양이 지는 명동으로 은성을 찾아 나섰다. 롯데백화점에서 길을 건너 유네스코회관으로 걸어가니 노란색 맥도날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밑으로 서울시에서 세운 은성주점 위치를 나타내는 표지석을 발견했다. 내용은 이곳에서 10m 앞에 은성주점이 있던 터라는 것이다. 오기 전, 찾아냈던 자료를 참고로 표지석 근방의 건물들을 찾아보았다. 쉽지 않았다. 오십년이 훌쩍 지난 명동은 옛 은성의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높은 건물과 새로 짓고 있는 빌딩. 옷가게와 패스트푸드 점만이 은성이 있었을법한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발걸음은 실패를 했다. 표지석에 씌어진 대로 10m 앞에 은성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만 한 채 아쉽게 돌아왔다. 그런데 우연히 음악다방 돌고래에 관한 기사에서 은성의 흔적을 찾게 되었다. 70년대 명동의 음악다방에 대한 기사였는데 당시의 음악다방 돌고래가 은성의 자리에 둥지를 텄다고 한다. 전축의 보급으로 이곳도 문을 닫았다가 몇 해 전, ‘돌고래 2004’라는 카페로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름은 같은데, 같은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다시 명동으로 향했다. 점점 짧아지는 가을 해가 일찌감치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명동의 화려한 네온과 쉴 새 없이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표지석 앞에서 10m 가량을 어림짐작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곳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신기하게도 ‘돌고래 2004’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개양빌딩 지하에 위치한 카페였다. 이곳이 바로 오십년 전 은성이 있던 자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그렇지만 확실히 이곳이 은성주점 이였다는 표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인환이 바로 이 자리에서 ‘세월이 가면’을 짓고 나애심이 노래를 불렀을까?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박인환이 올라오고 있다. 그 뒤로 김수영, 전혜린, 명동백작이라 불리던 이봉구와 수많은 명동의 예술가들이 얼큰하게 취한 채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밤하늘에 명동샹송으로 통하는 ‘세월이 가면’이 불려진다. 돌아오던 길에 난 마치 은성에서 취한 듯 가을에 취해가고 있었다. 명동샹송이 내 입가에 맴돈다. 가을이다. 낭만과 그리움의 계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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